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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아시아나항공 조종사·일반직 노조의 자가당착과 당랑거철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7.15 09:18
박규빈 산업부  기자

▲박규빈 산업부 기자

뇌피셜(腦+official)


[명사] 객관적인 근거 없이 자기 혼자만의 생각을 공식적인 사실인 양 주장 또는 추측하는 행위.


지난 11일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이하 APU)과 일반직으로 이뤄진 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하 노조)의 공동 기자 회견을 관통하는 단어다.


두 노조는 지금껏 그래왔듯 거친 어조로 “합병 결사 반대"를 외치며 한국산업은행·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을 성토했지만 '뇌피셜'에 따른 불확실성과 불안감이 역력해보였다.


이들이 실낱 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것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후보는 홀로 화물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유리한 역량을 갖춰야 하며, 합병 회사와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 짤막한 한 줄 뿐이다.




과연 이들이 원하는대로 될까. 사실상 자살 골이나 다름 없고 오히려 무효타에 해당할 것이다. 필자는 “이전에도 EC에 합병 반대 서한을 발송할 수 있었을 텐데, 왜 9부 능선을 넘은 현 시점에 보냈느냐"고 최도성 APU 위원장에게 질의했다.


최 위원장은 “EC가 (독과점 문제를 들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간 기업 결합) 허가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고, 고용 문제를 중요시 하는 집행 기관이라는 믿음이 있어 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또 “(에어인천으로의) 화물본부 매각에 반대해 조종사들의 집단 사직서를 받고 있다"며 “우리와 만나줄지는 모르겠지만 EC에 직접 찾아가 당국자와의 면담을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원 면직 형식으로 회사를 떠나겠다는데 상식적으로 전세계 그 어디에도 이를 만류할 행정 기관이 있을리 만무하다. 또 이것을 이유로 EC가 성사 단계에 가까워진 인수·합병(M&A)을 무를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 자체가 순진무구한 발상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 일러스트. 사진=연합뉴스

앞서 대한항공은 독과점 논란 해소 차원에서 티웨이항공에 기재와 운항·객실 승무원을 '웻 리스(wet lease)' 형식으로 전폭 지원한 바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한항공이 에어인천에 대한 방책을 찾아서 EC의 요구 사항을 해결한다면 사직서를 제출한 APU 조합원들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할 게 명약관화하며, 당랑거철(螳螂拒轍) 국면을 면치 못할 것이다.


권수정 노조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이 사라지면 대한항공에 의한 시장 독과점이 심화될 것"이라면서도 “항공권 가격은 고정값이 아니어서 경쟁 체제 안에서 만들어진다"며 자가당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실로 인천국제공항은 '제5자유 운수권'이 적용돼 대한항공이 함부로 가격 조정을 하려 들면 80여개 외항사들이 귀신 같이 좌석 공급에 나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유일한 국적 풀 서비스 캐리어(FSC)로 남을 경우 경쟁 상대가 없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올해 안으로 들여오기로 한 A350 여객기 2대를 대한항공에 사전 이관하기로 했다며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이사(사장)를 배임(背任)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겠다는 입장도 납득할 수 없다. 설령 영업이익을 벌어다주는 수단을 넘긴 게 사실이라 해도 현 시점에선 정리 해고의 불안감이 사라지도록 M&A가 잘 되는 게 중요하다.


APU의 집단 사직으로 EC가 조건부 M&A 승인을 뒤엎는다 치자. 그러면 7900여명의 아시아나항공 구성원 모두의 생계가 흔들리고 회사는 더욱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이야말로 사실상 배임 행위일진대 후사를 책임 질 수 있나?


약 4년을 끌어온 대한항공과의 M&A가 APU와 노조 소원처럼 무산된다면 모든 절차를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

▲지난 11일 서울 중구 정동 경향신문사 12층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아시아나항공 노동조합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 반대' 기자 회견을 열고 집단 행동에 나선 모습. 사진=박규빈 기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연결 재무제표상 아시아나항공 부채는 총 12조7739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4.65% 늘었고, 부채 비율은 2006.94%로 항공기 리스료·유류 헷징을 감안해도 고도 비만이다.


그럼에도 권 위원장은 “아시아나항공은 지금까지 살아 남았고, 최대 매출·영업이익을 계속 갱신하고 있다"며 “수년 간 임금도 2.5%만 올리고 잘 버텨왔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회계사를 대동해 계산해보니 실제 부채 비율이 500%대로 나타났다"고 첨언했다.


어느 나라식 기적의 셈법인가. 아직까지도 회생이 가능하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자기 객관화가 안 됐나. 아시아나항공은 산업은행과 대한항공의 하드 캐리 덕에 숨통이 겨우 붙어있어 언제 파산해도 이상하지 않을 기업이다.


영업이익으로 빚 갚기에도 벅찬 상황에서 독자 생존을 외치며 제3의 인수자를 찾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건 뜬구름 잡는 소리다.


같은 직급이어도 일반직 기준 대한항공 대비 아시아나항공 근로자의 연봉은 1000만원 가량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PU와 노조 모두 M&A에 훼방 놓을 생각을 접고 지속 가능하며 윤택한 생활을 이어갈 방법을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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