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2038년에는 재생에너지, 수소, 원전, ESS 등 무탄소 발전원을 통해 생산한 전력이 전체 발전량의 70%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국내 전력시장은 화력발전에 최적화되어 이러한 무탄소 전원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를 지니고 있다. 즉 지금과 같은 도매시장 체제가 지속될 경우 무탄소 전원이 시장에 진입하더라도 투자비를 모두 회수할 수 없는 리스크가 존재하며, 무탄소 전원의 낮은 변동비가 소비자 가격에 모두 반영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한편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이 증가함에 따라 이를 완화할 수 있는 시장제도가 필요하며, 유연성 자원의 가치를 반영한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처럼 CBP 기반의 하루 전 시장만을 통해 전력거래가 이루어지는 현행 체제는 급격하게 변화하는 전력산업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기에, 우리 정부는 미래지향적으로 전력시장 개편을 추진 중이다. 실시간 시장과 예비력 시장을 개설하여 실시간 수급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민중이며,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된 비용평가 방식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단계적으로 가격입찰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또한 대규모 신규 발전설비가 전력시장에 진입할 충분할 유인을 제공하기 위해 저탄소 중앙계약시장을 개설하고, 시장원칙에 따른 발전설비 진입을 유도할 목적으로 신규 LNG 발전을 대상으로 용량시장 개설방안을 논의 중이다.
고도화 및 선진화로 알려진 이러한 개편방향은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다소 경직적인 체제로 운영 중이던 우리 전력시장에 큰 변화를 주게 될 것이며, 성공적으로 제도가 도입 및 운영된다면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도매시장에서 이처럼 큰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것과는 달리, 소매부문의 전기요금은 여전히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기요금 체계의 변화 없이 도매시장의 개편만으로는 효율적인 전력사용을 기대하기 어렵다. 도매시장의 가격 변동이 소매요금에 반영되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전력사용을 조정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며, 이는 전력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이다. 전기요금 개편은 단순히 요금수준을 올리거나, 요금체계를 바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전력 사용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과정이다.
전력시장 개편방향은 신규 무탄소 발전원 확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얼마나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생략하고 있다. 최근에는 전력망 보강 및 신설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하나, 역시 비용 부담 방안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분산형 전원, 에너지효율 향상,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만, 소비자의 전력소비 패턴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합리적 요금체계 수립의 필요성에 대한 고민은 같은 비중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해외의 경우 이미 수년 전부터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변화를 시도 중이다. 총괄원가 규제방식에서 벗어나 성과기반 규제를 도입한 성공적 사례들을 여러 나라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ICT 기술과 접목한 수요관리형 요금제의 확대 적용을 통해 변동성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영향을 완화시키려 노력 중이다. 또한 전력산업 환경변화에 따라 증가하고 있는 정책비용의 합리적 회수방안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전기요금과 관련한 논의는, 과연 몇 원이나 올리는 것이 적당하냐에 대한 것이 전부일 뿐이다. 이제는 도매시장뿐만 아니라, 소매부문에서도 선진화된 논의를 할 시점이다. 전력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요금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