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8일(일)



[이상호 칼럼] 인니 KF-21 전투기 사업 철수로 보는 한국 방위산업의 미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7.29 11:02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이상호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한국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반도체, 자동차, 조선 등은 꾸준히 한국을 먹여 살리는 기반 산업이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정말 국밥 같은 존재로 항상 국민의 굶주린 배를 풍족하게 채워줬다. 이들 산업은 우리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었고 지금도 계속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그러나 과거 한국의 핵심 산업이던 석유, 화학, 가전 등은 경쟁력을 상실하여 하향 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힘든 환경에서 최근 방위산업이 한국의 새로운 먹거리로 부상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적인 군비 확충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의 방위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2022년에는 약 173억 달러(약 22조 5천억 원), 2023년에는 130억 달러(약 16조 9,000억 원), 그리고 2024년에는 200억 달러(약 28조 원)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짧은 기간 이룩한 눈부신 성장이다.


방위산업은 보기에는 제조업 등 전통 굴뚝 산업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종합체로 앞으로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되는 분야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이 확실한 경쟁력을 가진 부분은 자주포, 전차, 장갑차 등 주로 지상군 장비 분야로 아직 한국을 방위산업 선진국으로 볼 수는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 유럽 등의 방위산업체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고부가가치 항공우주산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한국은 아직 이 분야의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상군 장비에 비해 전투기 등 항공우주 장비는 국가나 기업에 엄청난 수익을 가져다주는 방위산업의 최고봉으로 볼 수 있다.


첨단 다목적 전투기가 이 분야에 단연코 정점이다. 한국은 부족한 실력이지만 한국형 전투기인 KF-21 개발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 KF-21 사업은 1999년 최초 개발 결정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20년 이상의 논란과 지연 끝에 올해부터 제한적인 생산에 돌입한다. 공군이 총 120대를 도입할 예정이지만, 개량형 및 스텔스형 등을 포함하면 최종적으로 더 많은 수량이 배치될 것으로 전망한다.


국내의 많은 반대와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제 KF-21 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배경에는 인도네시아의 사업 참여가 있었다. 총 8조 원 정도의 사업비가 드는 사업인데 정부는 예산 절약과 위험 분산 차원에서 이를 국제 공동개발 방식으로 추진했고 2015년 인도네시아가 1조 6천억 원을 투자해 지분 20%를 확보하여 참여한다는 결정을 한 후 사업이 시작되었다. 실제 KF-21 사업을 추진할 동력을 인도네시아가 제공해 주었다고 할 만큼 인도네시아의 참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인도네시아는 20%의 지분 참여 이외 향후 50대의 KF-21 전투기를 도입할 예정이어서 KF-21 사업 성공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파트너가 되었다.


그러나 최초의 협력 분위기와 달리 현재 인도네시아는 KF-21 전투기의 개발 분담금을 1조 원 이상 연체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지만 이미 약 1조 3천억 원에 달하는 한국산 잠수함 3대 수입 계약도 파기하면서 한국과의 방산 협력을 줄이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인도네시아는 총분담금 1조 6천억 원 중 약 30%인 6천억 원만 납부하고 기술도 원래 수준의 30% 정도만 받아 가겠다며 사업 조기 종료를 제안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측 파견 기술자가 관련 기술을 유출하는 사건까지 벌어져 양국의 갈등이 증폭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사업 철수는 확정적이다. 한국이 당장 인도네시아 이외 다른 파트너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결국 독자적으로 사업을 마무리할 것으로 예상한다. 비록 금전적 손실은 보겠지만, 사업은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인도네시아에 대한 한국의 여론은 싸늘하다. 이런 와중에 지난 6월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중고 호위함을 기부하기로 하는 결정을 하면서 또 논란이 되었다. 왜 한국이 인도네시아에 이렇게 휘둘리는 거냐는 거다.


인도네시아는 전통적으로 한국의 우호 국가이며 한국 방위산업의 큰 시장이다. 2029년이면 인구 3억에 한국의 GDP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신흥 경제 대국이기도 하다. 장차 한국과 인도네시아 사이 협력은 계속 확대될 것이며 한국 방위산업의 중요 시장으로 남을 것이다. 더군다나 KF-21 전투기 최초 해외 도입국으로 한국이 드디어 대망의 방위산업 선진국으로 도약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는 파트너이다.


전투기 등 첨단 항공우주 장비 분야는 아무나 쉽게 진입할 수도 없고 또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산 전투기나 항공기들이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는 시장이다. 한국은 후발 주자로 기술이나 성능은 물론 가격에서 확실한 경쟁력을 가져야 생존할 수 있다. 만약 한국이 이 분야에 성공적으로 진출한다면 방위산업은 향후 반도체, 자동차 못지않은 한국의 핵심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하다.


방위산업은 한국의 외교 능력 강화에도 큰 도움이 된다. 국가 간 방산 거래는 단순한 수출입 거래가 아닌 수출국이 수입국에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미국, 러시아, 중국 등이 무기 수출을 중요한 외교 및 국방정책 도구와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특정 국가의 무기를 수입한 나라는 그 국가에 정치적, 군사적으로 종속되는 경향을 보이고 우방으로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체급에 비해 국제 외교 무대에서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지만, 방산 수출 확대를 통해 한국의 국제 영향력 재고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향후 한국의 방위산업은 경제만 아니라 국익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분야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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