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정책은 국가 안보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정부의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 루스벨트 연구소의 토드 터커는 산업정책을 '투입 비용이나 산출물 가격의 변화 또는 다른 규제적 수단을 통해 유한한 자원을 하나의 섹터나 산업으로부터 다른 쪽으로 넘기는 모든 정부 정책'으로 정의했다. 이처럼 산업정책은 국가 발전을 위해 정부가 차별적으로 시장에 개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정책이 바람직한가? 답하기 어렵다. 특정 산업에 혜택을 준다는 것은 그 범위밖의 다른 산업에 불이익을 준다는 것과 같다. 게임의 룰을 어기는 행위인 것이다.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산업정책은 기존 거래의 판을 깨는 행위에 해당한다. 특정국이 자국의 산업을 발전시켜서 교역조건의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므로 내가 가지는 만큼 남의 것이 줄어드는 Zero Sum적인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국제사회는 교육, 연구개발, 사회문제 해결의 범위를 넘어서는 각국 정부의 인위적 시장개입을 극도로 경계해 왔다. WTO, TRIPs 등 각종 국제 조약을 얼개로 각국의 차별적, 개입적 산업정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래서 지난 수십여년간 산업정책은 다들 하면서도 대외적으로는 안한 척 하는 것이었고, 상대국이 알게 되면 박 터지는 무역분쟁의 대상이 되곤 했다. 산업정책을 국가경제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의도적 개입이라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그 대표적 성공 사례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가난했던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 정부의 집요한 산업정책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 산업정책은 언제 시작되었을까? 보통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출발점으로 본다. 그러나 산업정책의 주체를 '정부'에서 '공동체'로 완화해 준다면 조금 더 시기를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921년 9월 일제 총독부가 조선산업조사위원회를 열었다. 당시 우리 기업인들은 조선인을 위한 산업정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했지만 일본정부는 제국 방침에 맞추어 한반도에서는 산미 증식과 철도 건설에 주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때 동아일보가 이 조치를 '조선 경제를 일본에 완전히 예속시키려는 것'이라고 직격하면서 1920년대초부터 1930년대 말까지 물산장려운동이라는 공동체 차원의 경제자립운동이 벌어진다.
이 운동은 당시 한국인들을 대표할 정부가 없었음에도 놀라울 정도로 산업정책의 본질을 그대로 담았다. 조선인의 산업적 지능을 계발, 단련하고, 조선인이 만든 상품을 애용해서 시장을 창출하며, 조선인의 경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조사, 연구, 지도활동을 수행한다는 내용은 기술개발, 인력양성, 시장창출, 조사연구, 현장 애로지원 등 지금 우리의 정책과 흡사하다.
21세기 이후 세상의 물길이 바뀌고 있다. 과거 자유무역을 선도했던 미국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를 필두로 지금의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노골적인 미국 우선의 산업정책을 전개하고 있다. 제조업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오기 위해 철강, 알미늄, 세탁기, 태양광 패널 등에 고율 관세를 매기고 기업 인수합병 규제 등을 통해 중국의 기술 경쟁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반도체법, IRA 등 공세적인 보조금으로 반도체, 전기차, 2차전지 등 외국의 첨단 산업을 미국으로 가져가고 있다.이전의 반칙이 이제는 일상이 되고 있다.
일본도 다를 바 없다. 2017년 우리나라에 대한 반도체 소재부품 수출 규제에서 보이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기술 분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EU 등 세계 각국들도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전 세계가 산업정책의 본격적 재림을 목도하고 있다.
코로나 종식선언 이후 지금까지 고금리, 경기 침체,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사태, 공급망 애로, 무역규제, 내수 위축 등 무수한 어려움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기업들은 '앞이 안 보인다'는 말을 자주 한다. 당장 미국 대선의 향배만으로도 환율과 이자율이 출렁거리고 있다. 각국의 거세진 압박으로 우리 아이들의 일터가 되어야 할 공장들이 남의 나라에 지어지고 있다.
과거 정부가 없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자주적인 산업정책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 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무언가 준비되고 있지 않다면 100년전의 선배들 볼 낯이 없다. 물론 지금의 복합 위기는 과거 고도성장 초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다. 젊고 근면하며 우수한 노동력, 효율적인 의사결정시스템, 기술을 공여하고 시장을 열어주던 우방국들... 모두 지나간 이야기다. 사회시스템은 경직되고, 노동시장은 갈등과 대치를 못 벗어나고 있으며, 국민들은 늙어가는 나라. 새로운 산업정책의 처방 또한 극히 복합적이어야 할 것이다. 외교, 국방, 재정, 금융, 노동, 복지, 세제, 중소기업 등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메타플랜이 아니라면 답도 없을 것 같다.
“수출도 잘 되고, 부동산 경기도 회복되고 있으니 안심하라"는 말보다는, 피부로 체감하는 위협과 다가올 시련을 냉철하게 진단하고 뼈를 깍는 대안과 비전을 내놓을 수 있는, 우리 정부의 통찰력과 진지함이 과거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