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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인텔의 몰락, 삼성전자는 안녕하십니까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09.18 10:41

산업부 박규빈 기자

산업부 박규빈 기자

▲산업부 박규빈 기자

영국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콜드 플레이'의 명곡 '비바 라 비다(Viva la Vida)'의 가사는 몰락한 왕이 화려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비참한 최후를 맞는 내용으로 구성돼있다.


이는 과거 '외계인을 고문해서 신제품을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았던 미국 종합 반도체 기업(IDC) 인텔의 모습과 판박이다.


인텔은 개인용 컴퓨터(PC)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고, 코어 시리즈를 출시하며 AMD를 압도하며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했다. 당시 인텔은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세계 최고의 반도체 생산·설계 기술력을 자랑했다. 인텔은 PC 시장에서의 절대적인 점유율을 바탕으로 훨씬 많은 칩을 꾸준히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최신 제조 공정 경쟁에서 경쟁 우위를 다져나갈 수 있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했고, '내 손 안의 PC'인 스마트폰과 같은 모바일 기기 시장이 급성장하는 동안 PC 시장은 정체기를 맞았고, 이와 동시에 인텔의 아성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텔에는 과거의 찬란했던 유산들이 있어 타사 칩을 위탁 생산할 기회가 있었다. ARM 명령어 셋을 기반으로 한 모바일 칩을 설계해 판매했더라면 여전히 시장 내 인텔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인텔은 자체 설계한 x86 아키텍처 칩으로 모바일 시장에 뛰어드는 최악의 수를 뒀고, ARM 아키텍처 대비 성능과 전성비 면에서 모두 처참히 깨지는 모습을 보였다.




또 인텔 제국을 확실히 나락으로 보내버린 6대 최고 경영자(CEO) 브라이언 크르자니크는 6년의 재임 기간 중 원가 절감을 통한 단기 성과에 집착하며 2016년에는 전체 인력의 10%에 해당하는 1만2000명을 해고했다. 해고 인력 대부분은 연구·개발(R&D) 부서원이었고, 이들은 경쟁사로 이직해 인텔은 기술력 격차·규모의 경제 2개의 해자를 모두 상실했다. TSMC와 AMD는 엄청난 반사 이익을 보며 인텔을 제쳤다.


앞으로도 인텔의 미래는 밝지 않다. ARM 아키텍처가 PC 시장에 침투하기 시작했고, 퀄컴도 이를 기반으로 출사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또 서버 시장에서도 점유율을 잃어가고 있고, 고부가가치가 기대되는 AI 서버 영역에서도 인텔이 잘 만드는 중앙 처리 장치(CPU)가 아니라 그래픽 처리 장치(GPU)에 집중돼있다는 점도 악재다.


팻 겔싱어 인텔 CEO는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타사 칩도 생산하는 파운드리 사업을 확대하겠다고 천명했지만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규모의 경제'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와 TSMC도 채택한 전략이어서 이제는 오히려 인텔이 넘어야 할 벽이 돼버렸고, 야심차게 추진했던 1.8나노(18A) 공정은 브로드컴의 반도체 제조 테스트에서 실패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다.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로고 박스. 사진=박규빈 기자

▲서울 서초구 서초동 삼성전자 로고 박스. 사진=박규빈 기자

인텔의 몰락이 삼성전자에 시사하는 바는 매우 크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은 첨단 기술 패권 다툼으로 번졌고, 삼성전자는 '칩4 동맹'의 질서 속에서도 줄타기를 하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형국이다. 이 가운데 인공 지능(AI)·그래픽 처리·데이터 센터 등의 필수 요소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에 뒤졌고, D램과 낸드 플래시 분야에서는 거센 도전을 받고 있어 과거의 삼성전자가 아니라는 비평도 쏟아진다.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고 해체한 HBM 전담 부서는 전영현 부회장이 부랴부랴 부활시키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격차'에서 '추격자'가 됐다는 말이 뼈 아프게 들리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생존을 위해 혁신 기술 개발과 투자 확대에 있고, 무엇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변화 속에서 방향성을 잃지 않고 추진해 나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로 반도체 사업 50주년을 맞는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분야에 업계 최초로 게이트 올 어라운드(GAA) 기술을 도입했고, 3나노 공정에서 시장을 선도할 경쟁 우위를 확보해 TSMC에 열세인 상황 역전극을 모색하고 있다. 파운드리가 걸음마 단계라서 TSMC에 밀리는 건 사실이지만 이를 당연시 해서는 안 된다.


'칩워'의 저자 크리스 밀러는 “관료제에 가까운 인텔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설명하려는 노력 조차 기울이지 않아 혁신과 멀어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삼성전자 경영진은 인텔로부터 무슨 교훈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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