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화재로 인한 '전기차 포비아'가 극심해지자 정부가 나섰다. 배터리 인증제를 시행해 전기차 탑재 배터리에 더욱 깐깐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발표에도 소비자들의 민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검사한다고 불이 안날 것도 아니며, 만약 정부 인증 배터리서 불이 나도 정부는 책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터리 인증제의 기준도 부실해 '유명무실한 정책'이 될 것이란 우려가 쏟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15일 국토교통부는 전기차 배터리 안정성 인증제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이 사업엔 현대자동차, LG에너지솔루션 등 여러 전기차 관련 기업들이 참여한다.
배터리 인증제의 목적은 단순하다. 배터리의 안정성을 정부가 직접 검사해 화재 위험을 낮추기 위해서다. 그간 제조사 자기인증으로 이뤄지던 절차에 정부가 개입해 보다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제도는 다소 허점이 많다. 첫 번째로 '정부 인증' 마크를 단 배터리를 정부가 책임 지냐는 것이다.
기존 자기인증 방식에선 온전히 자동차 회사가 책임을 져왔다. 차를 잘못 만들었으니 제조사가 당연히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이에 정부가 낀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정부에서도 안전하다고 했는데 불이 난다면 정부도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과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심화된다면 전기차 화재 발생이후 책임을 묻는데 시간이 전보다 더 지체될 것이며 애꿎은 소비자만 전전긍긍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 분명하다.
두 번째로는 배터리 인증 기준이 팩이 아닌 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자동차 회사와 배터리사의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다. 반면 대부분 관계자들은 '셀 단위' 인증을 강조하고 있다.
배터리는 셀을 모아 팩으로 구성된다. 보편적으로 소비자들이 알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는 '팩'이라고 불린다.
현행대로라면 전기차 화재 발생시 '배터리팩'을 조사하기 때문에 셀을 만든 배터리 회사는 책임에서 자유로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전기차 화재는 배터리 오류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 배터리를 만든 제조사는 수사망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배터리 인증제도 발표 당시 '셀 단위' 인증에 대한 기대가 있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해당 내용은 빠져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제도가 허점이 많은 유명무실한 정책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전기차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불이 나지 않을 것이란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를 받기 위해선 이를 뒤받쳐 줄 믿을 수 있는 국가 정책이 필요하다. 그저 보여주기식 제도가 아닌 정말 국민들을 위한 전기차 화재 대책이 나오길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