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8일(월)



[이슈&인사이트]그들만의 조지 오웰식 ‘국어사전’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4.11.18 11:01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성일권

▲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그가 '짠'하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을 때 이름의 발음을 놓고 많은 혼선이 있었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의 '참여'란에는 한 네티즌이 그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정중하게 물었다. “대통령의 이름을 부를 때에 '윤서결'이 아닌 '윤성렬'로 불러도 '학문적' 국어에 아무런 '결함'도 발생치 않는지를 물으니 답변을 바라겠습니다. 현재 거의 모든 방송에서 대통령에 대해 '윤서결 대통령'이 아닌 '윤성렬 대통령'으로 바보처럼 부르고 있습니다."


이에 국립국어원은 답변했다. “개별 인명의 표준 발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문의하신 인명은 일반적인 발음 규정에 따른다면 '윤서결'로 발음할 수 있겠고, 관행적으로 '윤성녈'로 발음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후 국립국어원의 답변에 따라 어떤 이들은 그의 이름을 윤서결로, 또 어떤 이들은 윤성녈로 부르게 되었다. 국립국어원의 솔로몬식 답변 덕에 최고 권력자의 이름이 두 가지로 불리게 되었으나, 일반 국민은 늘 혼란스럽다.


그에서 헷갈리는 것은 그의 이름뿐 아니다. 그가 화려한 화술로 즐겨 사용하는 용어들의 진의(眞意)도 아리송하다. 검찰총장 사직의 변(辯)에서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그가 부르짖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헷갈린다. 끄떡하면 검경 권력을 동원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사상의 자유를 짓밟으면서도, 자유민주주의에 도전하는 악의 무리를 응징한다고 강변한다. 입만 열면 그가 강조하는 공정과 정의, 카르텔 해체와 민의중시도 그와 그의 휘하들에게는 기이하게 적용된다. 공정과 정의를 명분으로 내세우며 공권력을 총동원해 반대세력에겐 온 집안 식구와 친척 일가를 풍비박산하는 멸족지화(滅族之禍)를 일삼으면서도 정작 자신과 휘하 사람들의 불법에 대해선 끝까지 엄호한다. '오로지 조직에만 충성한다'는 그의 멋진 수사(修辭)는 조폭의 언어가 분명함에도 마치 그를 공정과 정의의 화신처럼 보이게 하는 주술적 언어로 작용했다.


그와 같은 조직의 '짠밥'을 먹은 집단은 검찰과 법원, 법무법인, 기타 온갖 국가권력 기관의 책임자로 견고하게 엮여 사리사욕을 채우는데도, 그가 그토록 핏대를 올리며 강조했던 카르텔 해체의 대상이 아니라, 중용의 인재들이다. 국가권력과 자본의 독점세력을 가리키는 카르텔이라는 결과적으로 권력의 기침 소리만 들어도 깜짝 놀라는 LH 같은 산하기관 직원들을 때려잡는 용어로 변질된 셈이다. 그는 또한 얼마 전 대국민 사과에서 국민의 뜻을 중시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진솔한 사과 한마디 없이 쩍벌남의 거만한 자세로 2시간 이상, 숱한 변명과 자기 자랑으로 일관했다. 기자회견장이 끝날 무렵에 “무엇을 사과하셨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한 어느 기자의 푸념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정치 지도자들이 권력유지를 위해 애매하거나 모순된 표현을 흔히 사용한다고 풍자했다. '불경기' 대신 '경기 순환'으로, '가격 인상' 대신 '가격 현실화'로, '지구온난화'는 '기후변화'로 둘러대는 게 바로 '오웰식' 언어라고도 불리는 이중화법이다. '오웰식' 언어는 그의 화법에서도 자주 발견되지만, 특히 최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절정을 이룬다. 아내 김건희 여사에게 제기된 의문에 대해 “(부인이) 남들한테 좀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그런 일들을 국정농단이라 그런다면 그건 국어사전을 좀 다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한 것은 평소의 그다운 화법이다. 궁금증이 많은 한 네티즌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정말 김건희 여사의 행동을 국정농단으로 칭할 수 없는 것인지 공식입장을 요청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 질문은 진지했다. “표준대사전에 따르면 '국정'은 '나라의 정치', '농단'은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헌법상 어떤 지위도 가지지 않은 영부인이 선거와 국정에 개입한 행위는 '국정농단'이 아닌가요?"




하지만 며칠 뒤에 달린 국립국어원 답변은 최고 통치자의 발언만큼이나 모호했다. “온라인 가나다는 어문 규범, 사전 내용, 어법에 대하여 간단히 묻고 답하는 곳이므로 어떤 특정 행위가 문의하신 표현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답변드리기가 어렵습니다." 표준대사전을 편찬하는 국립국어원이 침묵하는 가운데, 갈수록 기이한 '그들만의 국어사전'이 만들어지고 있다. 조지 오웰식 이중화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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