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융당국이 보험업계에 새 회계제도인 IFRS17 아래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계산하는 원칙 모형을 내놨다. 무해지 상품은 해지 시기와 비율 가정에 따라 이익이 크게 달라지는데 해지 시기에 따라 환급금이 0~130%까지 변하며, 이는 보험사의 전체 이익 규모까지 좌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번 원칙 모형 제시는 당국이 보험업계의 '실적 부풀리기'를 보다 강력하게 차단하겠다는 결단으로도 읽힌다. 보험업계는 새 회계제도 도입 후 각 회사만의 계리가정을 이용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 행렬을 이어왔고, 이는 당국으로부터 고무줄 실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실제로 손보사들은 무해지상품의 판매에 집중한 결과 최대 실적을 경신해왔다.
상황이 이렇자 당국이 환급금 증가에 비례해 원만하게 해지율이 떨어지는 원칙 모형을 내놓고 적용할 것을 권고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보험사들은 IFRS17 도입 후 정확한 기준이 제시되지 않아 지속적으로 불안정한 시기를 보내온데다, 결국 내놓은 틀은 지극히 일률적인 방식이기에 오히려 이익의 합리적인 산출을 내기에 불합리하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원칙모형을 제시하며 예외의 경우를 뒀지만 다수 보험사가 예외제도를 이용하면 제도 효용성이 없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르자 며칠 지나지 않아 “예외모형을 사용하는 우를 범하지 말라"며 보험사들에게 경고했다. 예외를 허용한다면서 '사실상' 예외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보험사들은 회계제도와 관련해 수시로 변경되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당초 회계변경 당시 회사마다 유리한 보험상품의 만기 기준이 달라 일부 회사가 당국에 가이드를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때 당국이 알아서하라는 식의 지침을 내렸는데 이제는 고무줄회계라며 쓴소리를 뱉어내는데다 이제는 일률적인 틀에 맞추려니 오히려 건전성이 크게 무너지는 결과를 보이게 됐다"며 토로했다.
중소형보험사들은 그야말로 '멘붕(멘탈붕괴)'에 빠졌다. 잦은 지침 변경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IR부서와 계리부서는 매일 야근에 들어갔고, 매각을 준비 중인 보험사들의 경우 회사 적정 가치가 수시로 변경되면서 시장과 투자자들에게 의도치 않은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원형모형 적용 시 무·저해지 보험을 크게 보유한 보험사의 경우 실적이 크게 악화할 수 있어 건전성지표인 K-ICS(킥스)가 큰 폭으로 무너질 것이란 예견도 나온다. 한 중소형 손보사 관계자는 “앞서 당국 지침 한 번에 일부 상품에서 몇백억씩 마이너스가 난 적이 있다. 회사의 개별성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다수 중소형사의 건전성이 무너질 것으로 예상되며 점점 대형사와 소형사가 양극화되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불만인건 '코리안식 IFRS17'이다. 회계의 자율성을 인정하는 부분이 새 회계제도의 가장 큰 특징인데 결국엔 자율성이란 틀은 그대로 남겨둔 채 일률적으로 틀에 끼워맞추는 격이 어불성설이 아니냐는 입장이다.
당국의 당초 목적이 회사마다 뚜렷한 펀더멘탈을 기반으로 건전성을 키워가자는 것이었던 만큼 업계의 혼란을 가져오지 않는 유용한 제도 운영과 일관적인 감독방향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