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에 따른 탄핵정국 속에서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이 군불을 지피고 있다. 새해부터 추경은 이른감이 없지 않지만 당장 내수부진이 심각하고 내년 트럼프 행정부 출범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한층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시기적으로도 내년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과 대선 정국을 감안하면 1분기 내에 가닥이 잡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물론 정부는 내년도 본예산 조기 집행부터 챙기는 것이 우선이라며 일단은 거리를 두고 있다.
22일 정치권 안팍에서는 추경 필요성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물론이고 우원식 국회의장과 함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까지 가세하는 형국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난에 비견되는 이 비상한 시국에 신속한 그리고 비상한 대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는 국민의 삶을 직시해서 지금 바로 추경 편성에 나서기를 바라고, 국민의힘도 추경 편성에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아예 공개적으로 추경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18일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 “추경은 한은 입장에서는 빠를수록 좋다고 본다"며 “늦게 할수록 경제 전망 기관들이 이를 반영할 수 없기 때문에 낮은 성장률을 전망할 수밖에 없고 그 낮은 성장률은 또 (경제) 심리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어 “지금 이 경기에 대한 하방 압력이 큰 상황에서는 가급적 여야정이 이른 시일 안에 합의해 새로운 예산안을 발표하는 것이 경제 심리에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통화정책 수장인 한은 총재가 재정정책의 조기 집행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지난 20일 민생경제단체 비상간담회에서 “지금이야말로 내수 진작을 위해 추경이 필요한 때로 심각한 침체 국면으로 빠지고 있는 내수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전체 경기가 하향 국면인데 비상계엄이라는 대내외 불확실성의 확대로 우리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다는 게 우 의장의 판단이다.
우 의장은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는 만큼 여야가 당리당략을 떠나 추경 편성의 최적 시기와 규모, 중점 사업 등에 관해 하루빨리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의 75%를 상반기에 배정하며 경기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기본적으로 조기 추경에는 신중한 입장을 내비쳤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내년 1월부터 예산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충실하게 집행을 준비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부총리는 “여러 가지 대외 불확실성이나 민생 상황 등을 봐가면서 적절한 대응조치를 계속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다만 기재부 관계자는 “내년 예산을 최대한 많이 조기에 집행하는 게 우선"이라며 당장은 검토하지 않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관련해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원용걸 서울 시립대 총장은 “민생이 어려우니까 이념이라든지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추경은 반드시 해야 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홍기 한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내수부진과 수출경기 어려움은 지적하면서도 추경에 대해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추경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조기 추경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내비쳤다.
정부로서는 추경이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정도이지 당장 착수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경기상황과 정치일정 등과 맞물려서 볼 때 조기에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어 가는 모양새다.
사상 초유의 '감액예산'만으로는 민생경제 마중물 역할을 기대하기에 한계가 있어서다. 때문에 탄핵 정국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여야정 국정 협의체'에서 추경 편성을 경제분야 최우선 과제로 테이블에 올릴지가 최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8년 박근혜 탄핵 정국 직후에는 추경 편성이 무산됐다. 2016년 12월 '박근혜 탄핵정국'의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이 '새해 2월 추경'을 요구했지만, 야당이던 민주당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결국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6월에야 11조원 규모 추경이 편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