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미국 포틀랜드주립대학 겸임교수
최근 24년11월7일 본지에서 단독 보도 된 SK어드밴스드가 전력 도매시장 직접 접근을 모색한 사례는, 우리 전력시장이 가진 구조적 문제를 여실히 드러낸다. 현재 한국의 전력시장은 공급자와 수요자가 자유롭게 만날 수도 없는 왜곡된 형태를 띠고 있다. 도매시장에서는 다수의 전력 공급자가 있지만, ㈜한국전력이라는 단일 독점 수요자가 존재하며, 소매시장에서는 ㈜한국전력이 독점 공급자로서 모든 전력 소비자를 상대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시장의 기본 원칙인 자유 경쟁과 완전 경쟁의 정의에 어긋난다.
전력시장의 개방이 왜 필요한가?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권리는 단순히 기업의 이익을 넘어서 경제 효율성의 문제로 연결된다. 도매 전력 가격이 소매 가격보다 낮다는 점은 경제적으로 명백하며, 기업들이 도매시장에서 전력을 구매할 수 있다면 생산 비용을 절감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PPA(전력구매계약)는 이미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형 RE100의 핵심 수단으로 인정한 바 있다. 이는 전력시장이 유통 과정을 축소하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구조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례라 할 수 있다.
SK어드밴스드의 사례는 이와 같은 흐름을 잘 보여준다. 기업 입장에서 도매시장 접근권은 단순히 비용 절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성을 요구하는 본질적 권리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마치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연결되는 것과 유사하다. 중간 유통업자의 역할이 사라지면서 거래 효율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한국전력의 역할 변화는 불가피하며 이러한 변화의 핵심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을 이미 정부 당국자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다양한 이해관계 때문에 손을 대고 있지 못할 뿐이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송전망 구축 사례를 보자. 한국전력은 전용 송전망 구축 비용을 기업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업들은 이를 원치 않는다. 그러나 만약 기업들이 시장에서 전력을 도매가격으로 직접 구매할 수 있다면, 송전망 구축 비용 역시 자발적으로 감당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처럼 송전망 구축 비용도 물면서 소매가격으로 전력구매를 하자니 억울한게 아닌가.
정부가 ㈜한국전력의 재정난을 이유로 도매시장 개방을 막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명분 모두 부족하다. 도매시장 접근권을 차단하는 것은 국영기업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려는 행위로, 자본주의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는다. 굳이 전기사업법 제32조를 근거로 한 법적 분쟁의 가능성은 차치하고라도, 전력시장이 시장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한다.
전력도 공정한 가치가 매겨져야 하는 상품의 하나이다. 이는 경제와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요한 자원으로, 그 시장구조가 공정하고 효율적이어야만 국가 전체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전력시장은 정치적 시혜나 소득 재분배의 도구로 악용되며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켜 왔다. ㈜한국전력의 독점 구조를 유지하려는 시도는 이제 한계에 다다랐으며, 이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할 시점이다.
시장의 접근성은 자본주의의 핵심 근간이다. 우리가 비웃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징이, 공급자에게는 충분한 보상도 안 주고 제품생산을 강요하며, 소비자에겐 어처구니 없이 싼값에 상품을 제공하는 거 아닌가.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다름 아닌, 정부가 시장의 중간에 끼어서 공급자는 소매시장에 접근 못하게 하고, 소비자는 도매시장에 접근 못하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전력시장은 그와 다를 바 없는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전력시장에서 중간 브로커로서의 역할과 존재를 강제시키고, 공급자와 수요자가 직접 연결될 수 없게 적극적으로 방해자를 두고 차단벽을 치는 것이다.
전력시장 개방은 공급자에게는 더 나은 가격으로 전력을 판매할 기회를, 소비자에게는 더 낮은 가격으로 전력을 구매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이는 전력시장이 진정한 시장다운 구조를 갖추는 첫걸음이다. ㈜한국전력은 독점적 역할에서 벗어나야 하며, 정부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과감한 정책 결단을 내려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의결 이후, 정치권은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 그러나 권력이 어느 방향으로 재편되든, 미래를 이끌 새로운 권력에게 전력시장 개혁은 국민적 관심을 이끌어낼 강력한 이니셔티브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음을 제안한다. 보수 진영에게는 시장경제의 원칙을 적용하는 정책으로, 진보 진영에게는 기득권 구조를 해체하고 에너지 전환을 실현하기 위한 전제조건으로서 매력적인 아젠다를 제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