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일본제철의 미국 US스틸 인수를 불허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 내에선 양국에 불이익이 되는 결정이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 일본의 미국 기업 인수를 저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만큼 이번 결정이 미일 관계에 화근을 남길 것이란 비판도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3일(현지시간) 성명에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에 대해 “국가 안보와 매우 중요한 공급망에 위험을 초래한다"며 30일 이내에 인수 계획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포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라고 두 회사에 명령했다.
지금까지 미국 대통령이 재무부 산하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사를 근거로 인수 중지를 명한 사례는 8건 있으며, 그중 7건은 인수 주체가 중국 관련 기업이었고 동맹국 기업은 전례가 없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5일 전했다.
무토 요지 일본 경제산업상은 바이든 대통령의 결정이 알려진 이후 “이해하기 어렵고 유감"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와 관련해 아사히신문은 “인수를 뒷받침해 왔던 일본 정부에서 불만이 소용돌이치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의 경제 부처 간부는 이 신문에 “원래는 어떤 문제도 없는 인수"라고 주장했다.
요미우리는 “경제적 합리성보다는 (바이든 대통령) 지지 기반인 노동조합 의향을 우선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며 “중국 의존을 줄이기 위해 동맹국과 공급망 강화를 중시했던 바이든 정권 이념에 크게 모순된다"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이번 결정을 했다면서 “만일 바이든 대통령이 인수를 허용해도 이달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이 이를 뒤집을 것으로 예상돼 공적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식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요미우리는 별도 사설에서 일본이 2023년까지 5년 연속으로 대미 투자 총액 1위 국가였다면서 “도리에 어긋나는 결정은 대미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본제철은 철강 업계에서 살아남으려면 인구 감소로 철강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측되는 국내 시장에서 벗어나 해외 판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인식해 왔다. 특히 미국은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고품질 철강에 대한 수요도 있어 US스틸 인수를 계기로 본격적인 시장 개척에 나설 방침이었다.
일본제철은 올해 6월까지 인수를 완료하지 않으면 US스틸에 5억6500만 달러(약 8300억원)의 위약금을 지불해야 할 수도 있어 당분간은 인수를 위해 총력전을 기울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제철은 우선 미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인수 불허 명령의 절차적 정당성에 하자가 있다고 주장할 계획이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30일 이내에 매수 계획을 포기하라고 명령한 만큼 CFIUS가 이 기한을 연장하지 않으면 내달 2일까지 포기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전했다.
닛케이는 “일본제철이 미국 정부를 제소하려면 2월 2일까지 법원에 매수 포기 명령의 일시 중단을 요구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짚었다.
이어 2014년 중국 기업 산하 미국 업체가 유사한 소송에서 승소한 사례가 있지만, 당시에는 중국 기업에 충분한 반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법원 판단의 주된 근거였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 한 변호사는 닛케이에 “보도로만 봤을 때 (일본제철이) 주장 기회를 확보한 듯하다"며 “법원이 절차적 정당성을 위반했다고 인정할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일본제철이 US스틸을 완전 자회사로 만드는 대신 자본 제휴를 하거나 일부 시설만 인수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도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또 US스틸 인수 계획이 완전히 좌절되면 미국 내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닛케이는 “트럼프 당선인 취임 이후 역전을 노리는 시나리오도 있다"며 일본제철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추가 투자 등을 제안해 인수 불허 명령을 파기하도록 설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초순 “US스틸이 일본제철에 인수되는 것에 전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히는 등 여러 차례 반대 의사를 표명한 바 있어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