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참사 사고와 관련, 경찰이 제주항공 김이배 대표이사(사장)을 비롯한 임원 1명에 대한 출국 금지 조치를 내리고 과실치사상 혐의에 무게를 두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의 안전 의무 위반이 확인될 경우 제주항공 경영진에 대한 형사 처벌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돼 회사 내부 분위기는 어수선한 상태다.
하지만 사고의 주요 요인이 사실상 천재지변에 해당하는 조류충돌(버드 스트라이크)로 결론이 날 경우에는 고의성과 예견 가능성이 있어야 적용이 가능한 중대재해 혐의로 제주항공에 책임을 물을 수 없을 것이라는 시각도 공존한다.
5일 국토교통부·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전날 17시 기준 제주항공 참사 사망자 179명의 시신에 대한 수습 작업이 마무리됐다. 현장 조사 관계자들은 총 1013점의 시신 조각을 발견했는데, 수습 완료는 이를 온전한 신체로 재구성하는 절차가 끝났다는 의미다.
이날 9시 30분 행안부는 시신 146구가 유가족에 인도됐고, 나머지 33구는 현재 무안공항 임시 안치소에서 보존 중이라고 발표했다. 지난달 31일부터 시작된 장례식도 순차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사망자 유류품 인도 절차와 사고 원인 규명이 곧 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나원오 전라남도경찰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사본부장은 지난 2일 오전 9시부터 제주항공 서울 지사 사무실·무안공항 사무실 및 관제탑·부산지방항공청 무안출장소에 대한 대대적인 압수 수색을 전개했다. 이로써 당국은 무안공항 운영부·시설부 자료와 관제탑 교신 관련 자료를 확보했으며, 특히 사고 여객기와 충돌한 활주로 주변 로컬라이저 관련 자료와 조류 충돌 경고, 조난 신호 등 사고 직전 관제탑과 조종사 간의 교신 내용 확인에 주력하고 있다.
같은 날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를 포함한 임원 2명을 법무부에 출국 금지를 신청했다.
현재는 피의자가 아닌 중요 참고인으로 판단해 김 대표와 임원 1인에 대해 이와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이지만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에 대한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경영진의 법적 책임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출국 금지령은 당국이 저인망식으로 훑어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인 만큼 제주항공 사측은 수사에 적극 협조한다는 입장이다.
출입국관리법 제4조에 근거한 출국 금지는 수사 중인 피의자의 도주 방지 범죄 혐의자의 해외 도피를 막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의자 또는 피고인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함이 목적으로, 실체적 진실 규명과 피해자 보호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송경훈 제주항공 경영지원본부장(전무)은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메이필드 호텔에서 열린 6차 브리핑 현장에서 “(김 대표 등에 대한) 수사 기관의 출석 요청은 아직 없다"면서도 “어떤 내용에 대해 압색이 진행됐는지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주항공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이행은 수사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항공 안전 관련 전담 인력 적정성 △전문성 확보 여부 △안전 관리 예산 배정·집행의 적절성 △정기 안전 점검·유지·보수 체계 실효성 △비상 상황 대응 매뉴얼 구체성 △현장 적용 가능성 △조종사·정비사 안전 교육 프로그램 충실성 △항공기 운항 전 안전 상태 점검 절차 체계성 등 전반적인 안전·보건 관리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 책임자의 안전 의무 위반이 확인될 경우 제주항공 경영진에 대한 형사 처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도 존재하는 만큼 분주한 내부 모습이 포착된다. 직원들은 평일과 주말 구분 없이 출근해 22시 경 퇴근한다는 전언이다.
이번 대형 참사로 인해 운항·객실 승무원을 포함, 총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은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된다.
노동부 관할인 중대산업재해는 노무를 제공하는 근로자·종사자 등이 작업∙업무를 원인으로 상해를 입은 사고 중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동일 유해 요인으로 인한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 3명 이상 발생했을 때 중 한 가지에 해당하는 재해다.
국토부·환경부 관할인 중대시민재해는 특정 원료 또는 제조물이나 공중 이용 시설, 공중 교통 수단의 설계·제조·설치·관리상의 결함이 원인이 돼 발생한 재해다. 사망자 1명 이상, 동일 사고로 2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10명 이상, 동일 원인으로 3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질병자 10명 이상 발생했을 경우 중 한 가지에 해당하는 재해를 의미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경우 경영 책임자에 대해 업무상 과실 치사 대비 처벌 수위가 높은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 처벌 가능성도 존재한다. 아울러 업무상 과실치사상죄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죄가 상상적 경합 관계에 있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 두 법은 모두 사람의 생명과 신체의 보전을 보호 법익으로 하고, 행위와 주의 의무의 동일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주 또는 경영 책임자가 재해 예방에 필요한 각종 조치 및 안전·보건 관계 법령에 따른 의무 이행에 필요한 관리상의 조치 등을 이행하지 않았을 경우에 적용된다.
또한 항공 안전 전문가들은 참사의 유력한 기여 요인으로 버드 스트라이크를 꼽고 있다. 무안공항은 철새 도래지라는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사고 당시에 조류가 날아올 것이라는 예견 가능성이 낮아 천재지변에 가까워 제주항공을 문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한편 국토부에 따르면 제주항공 참사 원인을 밝힐 2시간 분량의 음성 기로긴 조종실 음성 기록 장치(CVR)의 녹취록 작성이 완료됐다.
하지만 국토부는 “녹취록만으로는 이번 사고의 원인을 밝힐 수 없기 때문에 조사 단계에서 내용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중대 재해 입증 여부 역시 미국 워싱턴 소재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로 이송되는 CVR 해독 이후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경찰은 264명 규모의 대규모 수사본부를 구성해 참사의 원인과 책임 소재 파악 외에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상에서 발생하는 유가족 대상 유언비어 유포와 악의적 모방 댓글 등 2차 가해 사건에 대한 수사도 적극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