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전대미문의 괴이한 비상계엄이 선포된 뒤 이상한 움직임이 주목을 모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계엄선포 직후, 국회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많은 병력이 집결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윤삭열 대통령이 12일 티브이 담화에서 “작년 하반기 선관위를 비롯한 헌법기관들과 정부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다. 국정원이 이를 발견하고 정보 유출과 전산시스템 안전성을 점검하고자 했지만, 선관위는 완강히 거부"했고 “4월 총선을 앞두고도 문제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지만 제대로 개선됐는지 알 수 없어 이번에 국방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했다"라는 말로 밝혀졌다. 비상계엄의 이유가 엉뚱하게 야당에 대한 경고용이라고 했는데 느닷없이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려는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국정원은 이 담화가 나온 날 바로 국회의 요청에 따라 보고를 진행했다. 국정원은 “과거 선관위 직원의 e메일을 해킹해 대외비를 포함한 일부 업무자료가 유출되는 등 선관위의 보안 시스템이 다른 기관보다 취약하다고 판단했을 뿐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라고 공개했다. 한마디로 국정원은 비상계엄의 구실로 여겨지는 부정선거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한 전말은 2023년 10월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회의록에 나온다.
2023년 7-9월에 국정원이 선관위와 한국인터넷진흥원 합동으로 선관위 해킹설이 맞는지 아닌지 선관위 정보보안시스템에 대한 보안 컨설팅을 실시한 결과이다. 회의록에는 선관위가 국정원의 해킹시도를 정상적으로 잘 막아냈더니 국정원이 점검을 위해 보안시스템을 다 풀어주라고 요청해서 이에 따라주고 점검하게 했더니 그때에야 국정원이 해킹이 가능한 것처럼 주장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국정원이 국회에서 이번에 다시 보고한 취지와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애초에 국정원이건 국정원 할아버지건 선관위 전산망을 해킹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유는 선관위 내부망과 일반 인터넷망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엄정한 과학기술을 무시하고 선관위의 부정선거 의혹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시초는 대표적으로 2020년 국회의원선거 때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내용이다. 민경욱 전 의원은 “성명불상의 특정인이 투표 단계에서 서버 등을 통해 사전투표 수를 부풀린 뒤 위조된 사전투표지를 다량 제조해 투입하고, 투표지 분류기와 서버 등을 통해 개표 결과를 조작하는 등 선거 과정 전반에 걸쳐 부정선거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면서 선거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 종합법률정보에 따르면 민경욱 전 의원이 “이 사건 선거에서 위조 투표지의 투입·전산조작 등의 중대한 범죄행위가 대규모로 있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행위 주체의 존부 및 방법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채 외견상 정상적이지 않은 듯한 투표지가 일부 보인다는 등의 의혹 제기만으로 증명책임을 다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라고 지적했다.
결국 대법원은 1) 사전투표 단계에서 부정한 개입이 있었다는 주장, 2) 특별사전투표소의 운영 등이 위법하다는 주장, 3) 사전투표용지 발급 방식으로 다량의 위조투표지 제조가 용이해졌다는 주장, 4) 사전투표용지에 사용된 QR코드 관련 주장, 5) 사전투표의 통계 수치상 사전투표 조작이 추정된다는 주장, 6) 사전투표 수가 과다하다는 주장, 7) 관외사전투표지의 배송 과정에서 위조된 투표지가 혼입되었다는 주장, 8) 투표함 봉인지에 관한 주장, 9) 투표지 위조 주장 등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선거에서 진 사람이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하는 사례는 많이 봤지만 자신이 대통령선거에서 똑같은 투표 관리시스템을 통해 당선되어 놓고선 총선에서 졌다고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2020년 대선에서 진 뒤 부정선거를 제기하고 의회까지 점거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024년에 승리한 뒤에는 부정선거를 입에도 올리지 않는다. 이를 접어두고라도 일부 유튜버가 제기하는 부정선거 의혹을 그대로 믿고 계엄까지 선포하여 선관위에 계엄군을 보내고 직원들을 대거 잡아들이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자격이 없는 대통령이었는지 탄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