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SK하이닉스 반도체 이미지.
SK하이닉스가 올해부터 시범 시행된 '워라밸(work-life balance) 공시' 탓에 진땀을 뺐다. 작년도 사업보고서에 적은 여성 직원 육아휴직 사용률이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현저히 낮아 '직원 복지가 나쁘다'는 비판을 받은 것이다. 통계 작성법이 달라 생긴 해프닝이지만 SK하이닉스만 홀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594명의 여성 직원이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했다고 밝혔다. 2023년(827명)이나 2022년(775명)과 비교해 다소 줄었다. 이 회사 전체 임직원 수는 기간제를 포함해 3만2390명이다. 이 중 1만897명이 여성이다.
이목을 끄는 점은 지난해 SK하이닉스 여성 직원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16.6%라고 표시됐다는 점이다. 전년(16.6%)과 2022년(19.1%)에도 비율이 20% 선을 넘지 못했다. 출산을 하더라도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직원 비중이 80%를 넘는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해당 공시 이후 SK하이닉스에는 '육아휴직 사용률이 왜 이렇게 낮냐'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전해진다. 숫자만 보고 직원 복지가 나쁜 곳이라고 지레짐작한 경우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회사 측은 사용률을 산정하며 분모에 '육아휴직 대상 근로자수'를 넣어 생긴 착시라고 해명하고 있다. 아이가 있어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 전체에서 당해 실제 휴직한 사람 비중을 추렸다는 뜻이다.

▲SK하이닉스 2024년도 사업보고서 내에 게재된 '육아지원제도 사용 현황' 표. 여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16.6%라고 표시돼 있다.
문제는 다른 기업들은 대부분 분모에 '당해 출생 자녀를 가진 직원'을 넣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육아휴직 사용률은 자연스럽게 90% 안팎 수준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97.8%), 현대자동차(91%), LG전자(94.6%), 포스코(93.1%), 네이버(82.7%), 카카오(84.3%) 등 주요 기업들이 모두 같은 기준을 사용했다. SK(86.7%), SK텔레콤(80%), SK이노베이션(87.5%) 등 SK그룹 계열사들도 마찬가지다.
SK하이닉스는 당해 출생 자녀를 가진 직원'을 분모에 넣으면 타사와 비슷한 수준인 약 80~90% 가량의 육아휴직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기업들이 올해부터 사업보고서에 육아휴직 현황 등을 공개하는 것은 향후 '워라밸 공시'가 의무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일·생활 균형 경영 공시제' 도입 연구용역을 발주하고 관련 제도를 정비 중이다. 민간기업들이 육아휴직, 출산휴가, 유연근무제 사용 현황 등을 알리도록 한 게 골자다.
이에 따라 아직 정비가 필요한 기업들은 작년도 사업보고서에 해당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있다.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중소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주요 기업 중에는 KB금융, 신한지주 등 금융권이 관련 집계를 완료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투자자들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선제적으로 움직였음에도 괜한 비판을 받은 셈이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직원 워라밸 향상을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작년에는 임금협상을 타결하며 출산 축하금을 첫째와 둘째 각 100만원, 셋째부터 500만원으로 상향하기도 했다. 남성 구성원에 대한 1년 이내 특별 육아휴직 제도 신설 등도 논의 중이다. 교대근무 직원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올해 들어 시차출퇴근제도 도입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워라밸 공시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아직 없는 상태라 육아휴직 사용률 등 수치가 다른 기업들과 크게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SK하이닉스는 사업보고서를 다른 기업들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늦게 제출했는데 올해 처음 추가된 분야에서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며 “괜한 오해를 살 필요가 있나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