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용성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3월 22일 세계 물의 날을 기념하여 유네스코(UNESCO)는 “산과 빙하: 인류의 급수탑"이라는 보고서를 공개했다. 고산 지대의 빙하, 즉 만년설은 계절별로 녹는 속도가 달라지며 지속적으로 강과 호수에 물을 공급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전 세계 강물의 약 60%는 만년설에서 나오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기후변화로 인해 만년설이 사라져 가고 있고, 2024년 기준 전 세계 약 22억 명이 마실 물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물경제위원회(GCEW)에 따르면 2030년까지 전 세계 물 수요가 공급을 40% 초과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이로 인해 세계 GDP가 8% 줄어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은 오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문제로 2018년, 도시의 상수도 공급을 차단하고 시민에게 단지 1인당 하루 25리터의 물만 제공하는 “데이 제로(Day Zero)"를 선언하기도 하였다. 우리가 2022년 기준 1인당 하루 평균 306리터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사태가 심각한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30년 전인 1995년, 당시 세계은행 부총재였던 이스마일 세라겔딘(Ismail Serageldin)은 “20세기의 전쟁이 석유를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었다면, 21세기의 전쟁은 물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될 것이다."라며 물은 국제사회에서 정치, 경제적으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우리나라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안전한 수돗물을 공급받고 있다. 그렇다 보니 일상에서 물 부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고, 필요할 때 얼마든지 물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생각과 달리, 대한민국은 물 부족 위험성이 높은 '물 스트레스 국가'이다. 이는 우리가 사용 가능한 수자원 대비 물을 소비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세계 평균보다 많지만, 여름철에 집중되어 있고 산악지형이라는 국토의 특성으로 많은 수자원이 빠르게 바다로 흘러간다. 아울러 국토면적이 좁고 인구밀도가 높아서 한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자원량은 세계 평균의 1/6 수준에 불과하다.
인구가 증가하여 1인당 사용가능한 수자원의 양이 감소하더라도 사람들의 물 사용량이 적어지거나 물을 이용할 수 있는 기반시설이 제대로 설치, 관리되고 있다면 물 부족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물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을까? 물을 얼마나 가치 있게 사용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로 “물이용 효율성(water use efficiency)"이 있다. 이 지표는 1톤의 물이 사용되면서 얼마만큼의 경제적 가치를 가져오는 지를 나타낸다. UN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20년 기준 OECD 회원국들은 평균적으로 1톤의 물을 사용하여 123.7달러의 부가가치를 가져오는데 비해 우리나라는 절반에도 못 미치는 54.4달러 수준으로, 38개 회원국 중 22번째에 머물러 있다. 또한 우리의 물 소비량은 영국, 독일, 프랑스, 국민 한 사람이 사용하는 물의 양보다 약 2배 많고, 매년 물 소비량은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댐을 건설할 계획이다.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을 담는 시설용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새는 물을 막거나 물 사용량을 줄이지 않는 한 물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댐 건설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지불하고 있는 수도 요금은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공급비용의 약 73%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국 상수도관의 35%는 설치된 지 20년 이상 되었고, 한 해 사라지는 물(누수율)은 전체 공급량의 10%에 달하고 있다. 오래된 상수도관을 매년 교체하고 있지만 1%대에 불과하며, 재정적자가 누적된 일부 지자체에서는 새로운 시설 투자가 어려운 실정이다. 더욱이 미래의 기후변화는 물 부족 문제를 한층 더 어렵게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의 물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낭비를 줄이지 않는 이상 미래에 예견된 물 부족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2018년 “데이 제로(Day Zero)"가 선언되었을 당시 케이프타운은 물 경찰(water police)을 운영해 물 제한정책이 잘 지켜지는지 감시하였고, 시민들도 물 절약에 적극 참여하였다. 당시 “샤워는 2분이면 충분합니다"라는 샤워 송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케이프타운의 물 사용량은 평상 시 사용량의 절반까지 줄었고, 물 부족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었다.
수돗물 공급이 제한되고 하루 물 사용량이 거의 0에 가까워지는 상황, “데이 제로(Day Zero)"는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현상이다. 모쪼록 물을 아껴 쓰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것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모아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