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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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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램 왕좌의 교체] 32년 만의 반전…드디어 삼성을 넘어선 ‘SK’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4.10 14:11

① 삼성 독주 체제, SK가 깼다
AI가 고성능 메모리 시대 열어
HBM, 반도체 권력 지도를 바꿔

SK하이닉스 CI

▲SK하이닉스 CI

삼성은 32년간 메모리 시장을 지배해온 존재였고, SK하이닉스는 늘 그 뒤를 따라가던 후발주자였다. 그런데 2025년, 순위가 바뀌었다. 삼성의 D램 매출을 SK하이닉스가 넘어선 것이다. 숫자 하나 바뀐 것 같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간단하지 않다. 시장은 달라졌고, 기술의 조건도 바뀌었다. AI 시대가 되면서 반도체 산업의 패러다임이 변했다. 양산보다 납기, 속도보다 검증, 점유율보다 신뢰가 중요해졌다. 그 중심에 있는 HBM 기술은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열쇠가 됐다. 삼성은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타이밍을 놓쳤고, SK하이닉스는 10년 넘는 준비 끝에 반격에 성공했다. 질서가 바뀐 시대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그 단서들을 모았다. /편집자주


2025년 1분기,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역사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SK하이닉스가 반도체 업계의 상징과 같던 'D램 1위 삼성전자'를 처음으로 제친 것이다.


지난 9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해 1분기 전 세계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3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이는 34%를 기록한 삼성전자를 앞지르며 사상 첫 1위에 오른 수치다.


1992년 삼성전자가 일본 도시바를 밀어내고 정상에 오른 이후, 무려 32년 만에 처음으로 왕좌가 바뀐 것이다.


HBM이 판을 갈아엎다

이같은 지각변동의 중심에는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라는 신기술이 있다.




HBM은 기존 D램보다 훨씬 빠른 속도와 높은 대역폭을 제공하는 메모리로, 주로 AI 반도체(GPU)에 탑재된다. 특히 최근 생성형 AI 모델의 확산으로 고성능 AI 서버 수요가 폭발하면서, HBM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고부가가치 제품군으로 부상했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는 SK하이닉스가 2025년 1분기 HBM 시장에서 무려 70%의 점유율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는 SK하이닉스가 전체 D램 판매량(bit 기준)에서는 삼성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HBM이라는 고단가 제품에서의 압도적 우위로 매출 1위를 달성했다는 의미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AI 반도체 시장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H100, H200, B200, B300 등 최신 GPU 제품군에 HBM3 및 HBM3E 제품을 사실상 독점 공급하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여전히 범용 D램 비중이 높고, HBM 매출 비중은 10%대 초반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구조 자체가 '양보다 질' 중심으로 바뀌는 가운데, SK하이닉스는 고성능 메모리 중심의 포트폴리오 전환에 성공했고, 삼성전자는 상대적으로 변화에 느리게 대응한 결과로 1위 자리를 내주게 된 셈이다.


AI 시대가 메모리 패권 바꿨다

과거 메모리 시장의 경쟁은 출하량(bit 기준)과 원가 경쟁력 중심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처리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GPU와 함께 메모리 성능이 병목현상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핵심이 된다. GPU 성능을 제대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고대역폭·저전력·고신뢰성의 메모리가 필수이며, 바로 그 지점에서 HBM의 가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HBM은 기존 D램보다 가격은 3~5배 높지만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는 D램 시장에서 양산 능력과 가격 경쟁력이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AI 시대에 최적화된 기술이 시장을 지배한다"며 “HBM을 얼마나 잘 만들고, 얼마나 안정적으로 고객에 공급할 수 있느냐가 시장 점유율을 가르는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상징성이 다른 '역전극'…삼성의 패배, 하이닉스의 반전

삼성은 지난 수십 년간 '초격차 전략'을 통해 메모리 시장을 독주해왔다. 자체 기술 개발, 대규모 투자, 미세 공정 리더십 등 모든 면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췄고, 위기에도 감산 없이 생산을 늘려 시장을 장악하던 방식으로 경쟁사들을 따돌렸다.


반면 SK하이닉스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채권단 관리 체제를 거쳐,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며 간신히 생존 기반을 마련한 후발주자였다. 하지만 HBM이라는 고위험·고수익 기술에 10년 넘게 묵묵히 투자했고, AI 시대라는 기술적 지형 변화에 가장 먼저 준비된 기업으로 부상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변화가 일회성 이상이라고 보고 있다. 삼성 역시 기술 투자를 강화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지만, HBM·AI라는 새 흐름을 선도하는 기업은 현재 SK하이닉스에 이견이 없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기술의 패권은 시장의 패권을 바꾼다“며 "SK하이닉스의 리더십은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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