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연합뉴스
<벼랑 끝 K-건설, 10대 딜레마를 넘어라-10>
2025년 한국 건설업은 총체적 위기에 빠져 있다. 대외적으론 전쟁·자원 고갈 등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내부적으로도 왜곡되고 낡은 산업·시장 구조에 안주해 있고, 인구감소·지역간 양극화, 기후위기 등에 따른 시장 변화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 총 10회에 걸쳐 한국 건설업에 넘어야 할 도전 과제를 점검해본다.
우리나라 아파트 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가격 면에서 '시장 원리'가 작동하질 않는다는 것이다. 안 팔려도 가격을 낮출 수가 없고, 잘 팔린다고 높여 팔 수가 없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부동산 경기 침체와 분양가 고공행진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미분양 주택의 적체가 심화되고 있다. 특히 준공 후에도 팔리지 않는 '악성 미분양' 물량이 1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시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그러나 건설사 입장에선 분양가 인하가 쉬운 선택은 아니다. 고환율, 인건비 상승, 제로에너지건축 의무화 등 각종 비용 상승 요인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데다 기존 주택을 구매한 수요자들의 반발도 무섭다. 강남 3구 등 일부 입지 좋은 단지를 제외하면 가격을 올리는 데도 한계가 있는 실정이라 건설사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난 2월 전국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당 3120만원을 기록했다. 이는 1월(1628만원) 대비 91.6% 상승한 수치로, 한 달 만에 거의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전 최고 분양가였던 2024년 8월(2474만 원)과 비교했을 때도 600만원 이상 올랐다. 특히 서울은 3.3㎡당 6941만원을 기록하며 전국에서 가장 높은 분양가를 기록했다.
이로 인한 수요자들의 부담도 높아졌으나, 건설사들도 부담스럽다. 원가가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년간 건설공사비지수는 41.76포인트 상승해 통상 80% 수준이어야 하는 건설사들의 원가율이 90%를 넘었다.
인건비가 치솟고 있고, 국제 정세 변화에 따른 고환율도 부담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관세 전쟁으로 지난 9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84.1원을 기록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3월 12일(1496.5원)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오는 6월부터는 제로에너지건축물(ZEB) 5등급 인증이 의무화되면서 고성능 자재 및 태양광 설비 도입도 불가피해졌다. 공사비가 최대 30~40% 더 들어갈 수 있다.
그럼에도 건설사들은 분양가를 쉽게 올리지 못하고 있다. 고금리에 자금 부담까지 커지며 지난달 기준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2만3722가구로 전월보다 3.7% 증가했다. 이는 2013년 10월 이후 11년 4개월 만에 최대치를 찍었을 정도이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분양에 나섰던 '한화 포레나 미아'는 시장에서 '초고분양가'라는 비판을 받으며 저조한 분양률을 보여 최근에는 마이너스 프리미엄 매물까지 나오는 추세이다. 해당 단지의 분양가는 3.3㎡당 3200만원, 전체 가격은 최소 6억7000만~최대 38억9650만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반면, 가격 경쟁력을 갖춘 분양가 상한제 단지에 청약이 집중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부동산R114 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1순위 청약 경쟁률 상위 10곳 중 7곳이 상한제 적용 단지였다. 이들 단지의 평균 경쟁률은 42.07대 1로, 비적용 단지(6.16대 1) 대비 6배 이상 높았다. 오는 7월에는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이 예정돼 수요자들의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만큼, 고분양가 단지 수요 저하 현상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건설사들은 현 상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제로에너지 인증 등 규제 반영 시 정부 차원의 인센티브 제공과 공공사업 시 공사비 현실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원자재값 급등으로 발주처와 시공사 간 공사비의 간극이 심화되며 사업이 유찰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지방 미분양 문제가 심각한 데다 제로에너지 인증, 층간소음 규제 강화 등으로 건설사 부담이 가중되는 만큼, 일정 부분 세제 감면이나 규제 완화 같은 인센티브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