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광진구 강변 테크노마트 내 휴대폰 판매점 전경. 일부 판매점에서는 “보유한 재고 유심으로 SK텔레콤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사진 = 김윤호 기자
“유심 교체는 도대체 언제 가능한가요? 문자 한 통도 없고…이런 상황에 신규 가입이 말이 됩니까?"
13일 SK텔레콤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접한 소비자 신모(남, 33세) 씨는 이같이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10년 이상 SK텔레콤을 이용한 장기 고객이자 VIP 회원이다. 지난달 발생한 SK텔레콤 고객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의 한 SK텔레콤 대리점에서 유심 교체를 신청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SK텔레콤은 지난 5일부터 전국 자회사 직영 대리점 및 본사 위탁 대리점(T월드)에서 신규 가입 및 번호이동 접수를 전면 중단했다. 해킹 피해 고객의 유심 교체를 우선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을 확인해보면 상황은 달랐다.
◇ “유심 재고 있어요"…현장에선 신규 가입 '버젓이'
기자가 지난 9일부터 12일까지 수도권 소재 휴대폰 판매점 10곳을 직접 방문한 결과, 이 중 3곳에서 “SK텔레콤 신규 가입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일부 판매점은 “해킹 사태 이전에 확보한 유심이 남아 있어 신규 개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SK텔레콤의 신규 가입 중단 조치는 자회사 직영점과 본사 위탁 대리점에 한정된다. 일반 판매점은 그 대상이 아니다. 일반 판매점은 보통 대리점이 위탁 운영하는 형태로, 한 매장에서 복수의 통신사 로고가 동시에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피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유심 교체를 기다리는 고객이 여전히 많은 가운데, 일부 판매점에서 신규 가입이나 번호 이동을 받는 모습은 형평성 논란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이날 자정 기준, 총 159만명이 유심을 교체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전히 714만명의 고객이 유심 교체를 신청한 상태로 대기 중이다.
신 씨는 “지난달 말 대리점에서 유심 교체 신청을 하고 번호표도 받았지만 2주 넘게 아무런 연락이 없다"며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아직 유심을 교체한 사람이 없다. 유심 하나도 귀한 상황인데, 본사가 적극 나서서 판매점 재고를 활용해 기존 고객 불편부터 해소해야 하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 판매점은 왜 가능한가…SKT “계약 구조상 한계"

▲서울 시내 한 휴대폰 판매점 전경. 사진 = 김윤호 기자
SK텔레콤이 대리점과 달리 판매점에서는 '신규 가입 중단' 조치를 시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현행 휴대폰 유통 구조와 깊은 관련이 있다.
통상 통신사-대리점-판매점 구조로 위탁계약이 이뤄져 있으며, 대리점은 통신사 본사와 직접 계약을 맺지만, 일반 판매점은 대리점을 통해 단말기를 공급받아 판매하는 방식이다. 즉, 판매점은 SK텔레콤과 직접 계약을 맺고 있지 않기 때문에 본사 방침이 강제될 수 없는 구조다.
유영상 SK텔레콤 대표는 최근 “판매점은 대리점보다 소상공인 비중이 높아 영업을 일괄 중단하긴 어렵다"며 “SK텔레콤과 직접 계약을 맺지 않은 판매점에 대해 일일이 제재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업계는 시선 엇갈려…“생계 우려" vs “우회 전략"
업계 내에서도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시각이 엇갈린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판매점은 단말기 판매 외엔 수익원이 거의 없는 영세 사업장이 많아 SK텔레콤이 이들의 생계를 고려해 조치를 강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반면 또 다른 관계자는 “판매점까지 신규 가입을 전면 중단할 경우 SK텔레콤의 가입자 수, 실적 등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며 “사실상 본사 차원의 우회적 가입 유도 전략"이라고 꼬집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신규 가입 받는 판매점도 막아야 한다"는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다. “정작 고객 불편은 외면하고 가입자 수만 챙기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일부 네티즌은 “꼼수 부리는 거 아니냐", “이런 상황에 신규 개통은 도의적으로 잘못"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SK텔레콤은 이달 중순 이후 유심 공급이 점차 안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윤재웅 SK텔레콤 마케팅전략본부장은 지난 12일 열린 2025년 1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달 중순 이후부터 유심 공급망이 정상화되고 교체 수요도 원활히 해소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