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지난달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이 9조원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 은행의 수신금리가 빠르게 낮아지며 정기예금 매력이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분기 결산을 앞둔 기업들의 현금성 자산 확보 움직임과 자산시장 활황이 맞물리며 자금을 유동적으로 운용하려는 수요가 커졌고, 이에 따라 요구불예금은 3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2일 각 은행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정기예금 잔액은 931조934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8조9332억원 감소한 수치다. 지난 3월(15조5507억원) 이후 3개월 만에 가장 큰 감소폭을 보였다.
정기예금 금리가 가파르게 낮아진 것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최고 2%대에서 최저 1%대까지 하락한 상태다. 이날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은행권에서 판매 중인 단리 1년 만기 기준 정기예금 38개 상품 중 Sh수협은행의 헤이(Hey)정기예금이 연 2.6%의 가장 높은 기본금리를 준다. 전달 취급 평균 금리가 연 2.78%였던 점을 고려하면 한 달 새 0.18%포인트(p) 낮아졌다.
우대금리를 적용해도 연 3%대의 금리를 주는 상품은 없다. 우대금리 적용 시 수협은행의 Sh첫만남우대예금이 연 2.9%의 금리를 주는데, 첫 거래 등 조건을 만족해야 해 우대금리를 모두 받기는 쉽지 않다.
이와 달리 정기적금은 증가세를 지속했다. 지난달 말 기준 정기적금 잔액은 42조8169억원으로, 전월 대비 1조1515억원 늘었다. 은행들이 수신 확보를 위해 고금리 특판 적금 상품을 꾸준히 내놓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기적금 기본금리를 보면 최대 금리는 연 3%대이며, 우대금리를 적용할 경우 최고 연 5%대를 주는 상품도 있다.
수시입출금식 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의 증가폭은 더욱 두드러졌다. 지난달 말 기준 요구불예금 잔액은 656조6806억원으로 전월 대비 29조9317억원이나 늘었다. 올 들어 가장 큰 증가폭으로, 33조6226억원이 늘었던 지난해 3월 이후 최대치다. 요구불예금은 금리는 낮지만 자금을 언제든지 입출금할 수 있어 투자처를 모색 중인 '대기성 자금'이 유입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일반적으로 요구불예금은 분기마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법인들이 분기 결산을 위해 현금성 자산을 늘리려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에는 수도권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고, 새 정부 출범 후 코스피5000 기대감에 증시가 상승하며 새로운 투자처를 찾기 위한 대기 수요가 늘어난 것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다. 코스피 지수는 지난 2일 2698.97에서 지난 30일 3071.7로 13.8% 상승했다. 특히 지난 20일에는 종가 기준 3000선을 돌파했는데, 하반기에도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처럼 은행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는 '머니무브' 현상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가계부채 문제를 고려해 금리 인하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는 유지되고 있어 은행의 수신 금리에 빠르게 반영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주식시장 활성화를 목표로 시장 환경 개선을 독려 중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표 금리가 낮아지면 은행 수신 금리도 함께 떨어진다"며 “은행 상품의 매력이 감소하는 가운데,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 자금이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