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의회 하원 세입위원회의 에이드리언 스미스 무역소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등 여권이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및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온플법) 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미국 의회에서 '우려'를 넘어 '분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온플법이 특정 미국 디지털 기업에 대한 차별적 규제라며 자국 트럼프 행정부에게 이 문제를 한국과의 무역협상에서 다루라고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계 영 김 하원의원을 비롯해 에이드리언 스미스 하원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회 위원장 등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 43명은 지난 1일(현지시간) 공개 서한을 트럼프 행정부에게 전달하고 한국과의 무역협상에서 온플법 문제를 미국 디지털 기업을 불공정하게 겨냥하는 무역장벽으로 다루라고 촉구했다.
의원들은 서한에서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제안하고 새 이재명 정부가 받아들인 법안은 강화된 규제 요건으로 미국 디지털 기업들을 과도하게 겨냥한다"며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온플법을 직접 거론했다.
이어 “이 법안은 유럽연합(EU)의 노골적으로 차별적인 디지털시장법(DMA)과 유사하며 혁신적인 사업모델을 약화하고 성공적인 미국 기업들을 불리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이질적인 법적 기준과 집행 기준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의원들은 “이 법안은 바이트댄스, 알리바바, 테무 같은 중국의 주요 디지털 대기업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미국 기업들을 과도하게 겨냥해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진전시킬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어 의원들은 “우리는 한국의 온라인 플랫폼법과 한국 공정위의 도를 넘는 규제를 해결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와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상공회의소 등 미국 재계는 지난해 초부터 한국 온플법 추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해 왔다.
미국 상공회의서는 지난해 2차례 성명을 통해 “한국의 디지털 플랫폼 규제 방식에 우려를 표명한다"며 “온플법으로 한국의 성장과 장기적 경쟁력이 둔화되고 한국이 국제 무역 합의를 어기는 위치에 놓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달 이재명 대통령 당선 후에는 이 대통령의 당선을 축하하면서도 “디지털 경제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 기업에 부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 규제 시행을 자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미국 하원의원들의 성명은 미국 재계의 우려를 넘어 집권 여당 소속 연방의회 의원들의 집단 경고이자 분노 표출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에이드리언 스미스 미국 연방 하원의원 홈페이지에 공개된 트럼프 행정부에 보내는 서한. 사진=에이드리언 스미스 의원 홈페이지 캡쳐
이번 서한에 이름을 올린 캐럴 밀러 하원의원은 온플법이 시행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미국 무역법 301조 조사,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분쟁해결절차 발동 등의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오는 8일 상호관세 유예기간이 종료되면 자동차, 철강 등 한국산 수출품에 대해 고율의 관세 부과를 강행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번 하원의원들의 '집단 행동'을 가볍게 볼 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국회에는 여권이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및 독점규제 관련 법안만 17건이나 계류 중이고 민주당은 이들 법안들을 병합해 제정을 강행한다는 분위기여서 업계의 우려는 커져만 가고 있다.
현재 계류 중인 법안들은 대부분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사전에 지정하고 자사우대, 끼워팔기 등 불공정거래행위 금지와 이용사업자 단체교섭권 등을 담고 있다.
여기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는 매출, 시가총액, 이용자수 등을 기준으로 지정하는데, 외국 거대 온라인 플랫폼 기업은 구글, 아마존, 알리, 테무 등 미국과 중국 정도에 국한돼 있다. 미국 또는 중국이 자국 기업만 차별적으로 규제한다며 보복조치를 가할 빌미를 줄 수 있는 셈이다.
더욱이 온플법이 제정된 이후 외국 플랫폼 기업에 대한 실효적 규제가 이뤄지지 못할 경우 이는 국내 기업만 옭아매는 '규제 자해'가 될 수도 있다.
업계는 미국 의원들이 언급한 EU DMA법에 비해 우리 정부가 추진 중인 온플법이 더 규제 대상이 광범위하고 기준도 더 모호하다고 평가되고 있는 만큼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온플법 제정 과정에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