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 수준은 국내총생산(GDP)의 90% 가까이 높아졌다. 소비와 성장을 제약하는 임계 수준까지 이르렀다."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개최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내 가계부채에 대한 우려를 재차 드러냈다. 금통위는 이날 만장일치로 기준금리를 연 2.5%로 동결했다. 수도권의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확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5월에 이은 두 달 연속 금리 인하가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해 과도한 인하 기대가 형성되지 않도록 해 주택시장 과열 심리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금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가계대출이 급증했던 지난해 8월보다도 빠르다고 진단했다. 그는 “작년 8월과 차이점은 대출이 수도권에 집중돼 상승 속도가 가파르다는 것"이라며 “지난해는 실기론도 있었지만, 한은이 금리 동결로 한 번 쉬면서 가계대출이 잡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피엔딩이 금방 올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한은은 지난해 8월 금리를 동결한 후 가계대출 증가세가 둔화되자 10월부터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시작했다. 이 총재는 “이걸로 충분하지 않으면 공급이든 추가 수요 정책이든 다른 정책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6·27 부동산 대책에 대해서는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은은 경기를 좀 희생하더라도 수도권 집값 상승이 지속되지 않도록 기대심리를 안정시키고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것이 정책 우선 순위인데, 이번 정부 들어 인식을 같이 하며 과감한 정책을 발표했다"고 했다. 이어 “지난 두 달간의 거래량이 반영돼 당분간은 가계부채가 더 올라가겠지만, 예상보다 강도 높은 정책으로 최근의 거래량은 떨어지고 있다"며 “거래량 하락이 유지된다면 그 뒤부터 가계부채는 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금의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가계대출이 급증했던 지난해 8월보다도 빠르다고 진단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아파트와 빌라 단지 모습.
6·27 대책에서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갭투자'를 막은 것도 긍정적으로 봤다. 이 총재는 “전세는 몇 억씩 되는 돈이 금융기관을 통하지 않고 사적으로 거래되는 부채 관계가 형성되는데, 담보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때 금융안정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세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회 관행이 있어 바꾸기 쉽지 않다"며 “이번 대책을 통해 전세를 통한 갭투자는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그러면서도 “주택가격이 잡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계부채 규모는 이전 계약건을 바탕으로 선제 대응할 수 있지만, 가격이 예상보다 많이 올라가면 또다시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는 “수도권 가격 확대가 외곽으로 번지면 젊은 층의 절망감부터 시작해 많은 문제가 커진다"며 “당장 다음 달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한미 기준금리 추이.(자료=한국은행)
향후 금리 인하 시점에 대해서는 “지금 상황에서 금리를 언제 낮출지, 최종 금리가 어떻게 될지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이 총재는 “8월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경제 전망이 많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최악의 시나리오는 관세는 올라가고 가계부채는 잡히는데 부동산 가격이 안잡히는 거다. 금융안정과 성장 간 상충 관계가 굉장히 안 좋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때는 (금통위원 내) 의견이 많이 나눠질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 4명은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2명은 금리를 현 수준으로 유지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견해를 나타냈다.
올해 국내 경제성장률이 1%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정부의 1차, 2차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으로 국내의 경제성장률은 0.1%p씩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지난 5월 발표된 올해 성장률 전망치(0.8%)에 1차 추경안 효과가 반영된 만큼 2차 추경 효과에 따라 성장률 전망치는 0.9%까지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다. 이 총재는 “5월 소비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았고, 수출도 반도체 호조 등에 더 좋게 나오고 있다"며 “반면 건설은 3분기에 최저점을 찍을 것으로 봤는데 예상보다 더 나빠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이어 “가장 어려운 것은 미국의 관세 정책"이라며 “우리나라 관세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외부를 통해 수출을 하기 때문에 베트남, 멕시코,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미국과 어떻게 관세 협상을 체결하는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