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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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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역대급 폭염에 유럽서 에어컨 판매 ‘불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08.14 11:57
FRANCE WEATHER HOT TEMPERATURE

▲프랑스 파리 폭염(사진=EPA/연합)

유럽 곳곳에서 전례 없는 폭염이 수년째 이어지자 에어컨 보급률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그동안 유럽에선 에어컨이 사치라는 미국식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보여왔지만 매년 악화하는 폭염 탓에 이같은 인식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1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폭염이 거세지자 유럽이 마침내 에어컨을 도입하기 시작했다"며 “이러한 변화는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극심한 더위가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라는 새로운 기후 현실을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특히 '에어컨 불모지'로 여겨졌던 프랑스 등에서 보급률이 급증하고 있다. 일본 대기업 히타치제작소(히타치)에 따르면 프랑스 에어컨 보급률은 2016년 14%에서 2020년 25%까지 오르는 등 프랑스가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제치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에어컨 시장으로 부상했다. 오는 2035년엔 프랑스 가구 절반이 에어컨을 갖출 것으로 전망됐다.


무더위가 짧았던 영국, 네덜란드 등 북유럽 지역에서도 에어컨이 흔해졌고 스칸디나비아 에어컨 시장은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에어컨 제조기업 다이킨에 따르면 유럽의 가정용 에어컨 구매가 2010년 이후 두 배로 증가했고 스위스 최대 온라인 쇼핑몰 갤럭서스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에어컨 판매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유럽 내 에어컨 설치 훈련을 위한 예산을 매년 10%씩 늘리고 있다.




다이킨의 엘리즈 예너 미나레시 가전사업 총괄은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에어컨에 대한 저항은 여전히 강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완화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유럽은 무더위가 짧아 에어컨 필요성이 적었고, 사치품처럼 여겨져 보급률도 낮았다. 여기에 미관, 소음, 환경 영향 등도 에어컨에 대한 저항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유럽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몇 년째 이어지자 에어컨의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 유럽은 전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더 빠르게 온난화가 진행되고 있다. 유럽엽합(EU) 통계당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의 냉방도일(CDD)은 지난 20년간 3배 넘게 증가해 1990년 후반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독일 베를린도 과거 이탈리아 토리노, 벨기에 브뤼셀 기온은 25년전 크로아티아와 비슷해졌다.


냉방도일은 온도가 냉방 기준인 24도 이상인 날의 실제 온도에서 24도를 뺀 값을 더한 것으로, 냉방이 필요한 날과 이에 따른 에너지량을 예측하는 데 주로 활용된다.


또 EU의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에 따르면 유럽 대부분 지역이 40년 전보다 폭염이 더 길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 수백년 전에 지어진 프랑스 보르도의 와이너리 건물들도 에어컨을 도입하면서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최근 보르도의 일 최고기온이 41.6도로 신기록을 경신했다.


10년 넘게 유럽의 냉방수요를 조사한 사이몬 페주토 연구원은 “냉방시설은 한때 사치품이었다"며 “오늘날엔 필수품"이라고 말했다.


France Extreme Weather Heat

▲지난 12일 프랑스 남서부 도시 툴루즈 기온이 43도를 보여주는 전광판(사진=AP/연합)

다만 유럽 에어컨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난제들도 해결되어야 한다. 가장 큰 문제는 온화한 기후에 맞게 설계된 발전 그리드다. 지난 6월 남유럽 폭염 당시 이탈리아 일부 지역은 전력 부족으로 정전이 일어났다.


무더위가 극심해 냉방수요가 치솟는 날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도 모자라 화석연료에 눈을 돌린다. 에너지 애스팩츠의 사브리나 컨비츨러 발전 애널리스트는 “재생에너지 발전이 저조한 시기에 에어컨 사용이 증가함에 따라 화석연료 발전이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 정치권에선 에어컨 설치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실제 프랑스 정부가 지속가능성 문제 등의 이유로 에어컨 확산을 억제하는 법안을 제안하자 2027년 치러지는 프랑스 대선의 유력 주자인 마린 르펜 국민연합(RN) 의원은 자신의 엑스에 “대규모 냉방 설비 보급 계획을 취임하는 대로 시행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프랑스 좌파 녹색당의 마린 통들리에 대표는 이같은 계획에 반대하며 친환경 도시, 건물 에너지 효율 향상 등을 강조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보수 성향 신문 르 피가로는 “더위는 학습을 저해하고 근무 시간을 단축시키며 병원을 마비시킨다"고 에어컨 설치를 옹해했지만 좌파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에어컨이 뜨거운 공기를 거리에 내뿜고 에너지를 낭비한다고 지적했다.


영국에서도 최악의 폭염이 대부분 지나갔지만 에어컨을 둘러싼 정치권의 논란은 이제 시작됐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 유럽판이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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