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AI 때문에 사라지는 일자리…대량 해고 이유 따로 있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0.20 13:25

액센츄어·루프트한자·골드만삭스 등 ‘AI 구조조정’ 예고

생성형 AI 등장에 신입사원 채용도 급감

AI 등장 이후 일자리 변화, 인터넷 등장과 비교해 큰 변화 없어

“불가피한 구조조정의 명분…젊은층이 오히려 더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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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로 생성된 이미지

컨설팅, 금융, 항공 등 다양한 산업군의 다국적 기업들이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효율성 제고 등을 이유로 대규모 감원에 나서면서 직장인들의 불안이 확산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면서 문서 작성 등 비교적 단순한 사무 업무를 담당하는 신입사원 채용 규모와 횟수마저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AI 도입 불안이 과장돼 있으며, 일자리가 대규모로 대체될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반박도 제기된다.


20일 CNBC,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글로벌 컨설팅업체 액센츄어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 “AI 기술을 활용할 수 없는 직원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언어 학습 플랫폼 듀오링고는 외주 인력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고 AI로 그 공백을 메우겠다고 발표했다.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그룹은 AI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030년까지 4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역시 지난 14일 사내 공지를 통해 AI를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신규 채용을 줄이고 기존 인원을 감축하겠다고 통보했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오라클, CNN, 드롭박스, 블록 등 주요 기업들도 올해 초부터 AI 관련 구조조정 계획을 잇따라 내놨다.


AI 도입과 함께 대규모 감원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세일즈포스는 “AI가 회사 업무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며 직원 4000명을 해고했고,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오픈AI의 챗GPT가 공개된 2022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인력을 40% 줄였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기업의 약 41%는 AI 확산으로 향후 5년 내 인력을 감축할 것으로 예상했다.


AI가 신입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가시화하고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과정의 가이 리칭거와 세예드 마디 호세이니 마소움은 지난 8월 말 발표한 논문에서 “생성형 AI 도입이 주니어급 고용 감소와 명확히 맞물려 있으며, 시니어급 고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며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의 기사를 인용해 “최근 보도된 내용들도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탠퍼드대학 디지털 경제 연구소가 지난 8월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지난 3년간 회계사, 개발자, 비서 등 AI에 가장 취약한 직업군에서 22~25세 신입 고용이 13% 감소했다. 반면 같은 직종의 경력직 고용은 오히려 증가해 대조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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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2025년 각 연령별 소프트웨어 개발 직군의 고용률. 이 자료를 보면 챗GPT가 증당한 2022년말 이후 22~25세의 고용이 크게 감소했다.(자료=스탠퍼드대학, 블룸버그)

그러나 AI가 대규모 일자리 상실을 초래할 것이란 전망은 과장됐다는 반론도 나온다.


미국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지난달 발표한 'AI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 평가' 보고서를 통해 챗GPT가 이직, 실직 등 미국 노동시장에 미친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2022년 11월부터 지난 7월까지 33개월간 미국의 고용 변화를 분석해 컴퓨터(1984년)와 인터넷(1996년) 도입 당시와 비교했다.


그 결과 AI 등장 이후 미국 노동시장의 변화율은 4.76%로 집계됐는데 이는 과거 인터넷(3.77%)·컴퓨터(3.47%) 때보다 1%포인트 가량 웃도는 수치다. AI 도입 이후 일자리 구성이 더 빠르게 변화했지만 컴퓨터나 인터넷이 확산될 때와 비교하면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어 1996년부터 2002년까지 인터넷 등장에 따른 미국 노동시장의 변화율이 7%에 그쳤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 직업 구성 변화 속도가 2021년부터 빨라지기 시작했으며 AI의 등장에도 이러한 추세가 확연하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짚었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AI를 활용한 제조업·서비스업 기업들 사이에서 대규모 해고가 목격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지난 한 해 동안 기업들의 AI 사용이 눈에 띄게 증가했지만 AI로 인한 해고는 거의 없었다"고 밝혔다.


뉴욕 연은 이코노미스트들이 8월 지역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AI를 활용 중인 제조업과 서비스업 기업 비중은 각각 26%, 40%였지만, AI로 인해 해고를 진행한 기업 비율은 각각 0%, 1%에 불과했다. 오히려 서비스업의 11%, 제조업의 7%는 AI 도입 후 신규 채용을 늘렸다고 답했고 이러한 추이는 애틀랜타 연은의 연구 결과와 유사하다고 이코노미스트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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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AFP/연합)

이와 관련해 옥스퍼드 인터넷 연구소(OII)의 파비안 스테파니 AI 부교수는 “현재 진행 중인 감원이 AI로 인한 효율성 제고 때문이라고 보기 어렵다"이라며 “기업들이 불가피한 구조조정을 AI 때문으로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듀오링고, 클라르나 등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채용을 과도하게 늘린 대표적 기업"이라며 “최근의 감원은 시장 조정 성격이 강하지만 기업들은 2~3년 전 잘못된 인력 계획을 인정하기보다 'AI 때문'이라고 돌리고 있다"고 꼬집었다.


글로벌 비즈니스 네트워킹 플랫폼 링크드인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어센틱리의 공동창업자 장 크리스토프 부글레가 이달 초 올린 게시글이 온라인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그는 “기업들의 AI 도입 속도는 과장돼 있으며 대기업 내부에서도 비용과 보안 문제로 관련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사례가 많다"며 “그럼에도 'AI 때문에 감원한다'는 발표가 이어지는 것은 경기 둔화에 대한 변명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하버드대학 경영학 교수이자 디지털 데이터 디자인 연구소장인 카림 라카니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AI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도 지난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AI가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느냐'는 악시오스 기자의 질문에 “대학을 졸업한 젊은 구직자들에게 일부 영향이 나타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신규 일자리가 감소했고 경제가 둔화됐다"며 “AI가 노동 수요 둔화의 한 요인일 수는 있지만 그 규모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향후 AI 도입이 본격화되면 오히려 젊은 세대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컨설팅업체 맥킨지의 에릭 컷처 선임 파트너는 “35세 미만 근로자들의 AI 적응력은 고용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제공한다"며 “젊은 근로자들은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력직과의 격차를 좁힐 수 있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마칙 아메리칸대 코고드경영대학원 학장은 “신입 일자리의 절반이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됐다"며 “AI로 일부 직무가 줄어드는 동시에 새로운 기술과 역량을 요구하는 일자리도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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