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가스 보일러. (사진=강찬수 기자)
집 안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는 주거환경이 세입자들의 삶의 만족도를 크게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또, 난방비 지출이 많을수록 만족도가 약간 올라가는 현상이 관찰되기도 했지만, 난방의 질이 뒤따르지 않는다면 좌절감만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고려대 보건정책관리학부 박금령 교수팀이 최근 국제 학술지 '사회과학 및 의학(Social Science & Medcine)'에 투고한 논문을 통해 밝혀졌다. 연구팀은 주택의 난방 적절성이 개인의 심리적 안정과 생활 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세밀하게 추적했다.
연구는 2007년부터 2022년까지 이어진 한국복지패널(KoWePS)의 15년치 자료를 활용했고, 모두 2만3791명(총 19만여 관찰치)을 바탕으로 진행됐다.
연구팀은 동일인을 대상으로 시간이 흐르며 나타나는 변화를 비교하는 '개인 고정효과 회귀' 방식으로 분석을 수행했다. 이 방법을 쓰면, 성격이나 배경 같은 개인 고유의 특성은 통제한 채 난방 환경 변화가 삶의 만족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더 정확히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난방 적절성은 “집의 난방·단열·환기 상태가 적절한가"라는 설문 응답을 기준으로 삼았다. 난방비가 소득의 10%를 넘는 경우는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큰 가구'로 분류했다. 삶의 만족도는 1~5점 단일 문항을 활용했다.
▲쪽방촌의 겨울. 단열과 난방이 부실한 주택에 거주하는 저소득층일수록 추운 겨울을 보내는 것이 힘들다. (사진=연합뉴스)
◇“집이 따뜻하지 않으면 삶이 불안정해진다"
분석 결과, 약 11.7%는 부적절한 난방을 경험했다고 응답했고, 15.3%는 에너지 비용 부담이 큰 가구로 분류됐다.
통계 분석 결과, 난방이 부적절하다고 느끼는 가구에서는 삶의 만족도가 뚜렷하게 낮았다. 난방의 질이 떨어지는 집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예상보다 더 크게 흔들린다 점이 확인된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실내 온도가 적정하게 유지되지 않을 때 수면과 휴식이 방해받고, 결국 심리적·생활적 안정감이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반대로 난방비를 더 많이 지출하는 가구는 만족도가 소폭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비용을 들여 쾌적한 실내 온도를 확보하려는 적극적 선택이 일정 수준의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른바 '에너지와 행복의 역설(Energy-Happiness Paradox)'도 관찰됐다. 비용을 아무리 많이 써도 난방의 질이 낮으면 그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돈을 들였지만 기대한 온기와 안정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좌절감이 커지게 된다는 것이다.
'에너지·행복 역설'이라는 표현은, 에너지 소비가 늘면 편안함과 만족도도 함께 올라갈 것이라는 직관과 달리 현실에서는 에너지 사용량이 곧 행복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일부 국가 비교 연구에서는 에너지 소비량이 늘어도 국민 행복도가 거의 변하지 않는다는 결과가 반복돼 왔다.
이번 연구는 이 아이디어를 가구 수준으로 좁혀 확인한 셈이다. 즉 난방비를 더 지불해도 주거의 기본 조건이 받쳐주지 않으면 행복은 커지지 않는다는 점이 '역설'로 드러난다.
▲연탄 보일러 (사진=연합뉴스)
◇세입자에게 더 큰 타격… “주거 통제권의 격차"
이번 조사에서 세입자는 '역설'에 특히 더 취약했다. 소유주에 비해 주택 개보수 권한이 제한적이고, 장기 거주가 보장되지 않아 단열·난방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난방 부적절성과 에너지 비용 부담이 동시에 나타나는 집에서는 세입자의 삶의 만족도 하락 폭이 자가 소유자보다 더 컸다.
연구팀은 이를 “열악한 주거 인프라에 대한 노출과 임대료·에너지 비용이 겹치는 이중 부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현재의 에너지 복지 정책에 중요한 함의를 던진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에너지 비용을 낮춰주는 보조금 정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주거 품질을 함께 개선해야 난방비 지출이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집주인을 대상으로 난방·단열 개선 인센티브 제공 ▶세입자용 최소 난방·단열 기준 마련 ▶주거·에너지 빈곤을 함께 고려한 복합 지표 도입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따뜻한 집"이 단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주거권·건강·행복을 동시에 좌우하는 사회적 기반임을 다시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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