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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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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시원 vs 트집잡기”…李 대통령 업무보고 생중계 반응 ‘극과 극’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5.12.20 06:00

“장관이 주인공”…내각 책임성 강화 효과 커
유튜브 세대에 어필하는 ‘라이브 정치’ 평가
생중계에 필연적인 실언·오해 리스크는 부담
대통령이 직접 다 챙기나...‘만기친람’에 우려도

이재명 대통령, 부처 업무보고 발언

▲이재명 대통령이 17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산업부·지식재산처·중소벤처기업부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각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생중계하면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직접 정부 각 부처 장관은 물론 작은 산하기관장들까지 불러 세워 놓고 세세한 현안이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심지어 해법의 방향까지 제시해주고 있다. 잘못한 것에 대한 질책과 함께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디테일한 질의 응답에 공공기관장들은 잔뜩 긴장한 채 준비를 위해 밤을 새워가며 데이터를 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업무보고 생중계' 정치에 대해 지지자들과 일반 국민들 사이에선 “모르고 있던 국정의 세세한 사항과 문제점을 알게 돼 너무 좋다", “정부 기관장들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게 돼서 좋다", “암행어사처럼 속시원하게 질타해준다"는 등 호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장관이나 기관장들이 세부 실무를 장악하도록 독려해 국정의 원활한 운영을 촉진시킨다는 진단도 있다. 반면 반대측에선 이 대통령의 말실수성 발언과 트집잡기식 질의를 문제삼으며 국정 혼란만 일으킨다고 비판하고 있다. '만기친람식' 통치가 일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내각 중심 국정운영 촉진, 투명성 제고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업무보고·국무회의 생중계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내각 중심 국정 운영을 촉진시킨다는 점이 꼽힌다. 이 대통령이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세부 설명과 책임은 장관이 직접 지는 구조가 화면을 통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실제 생중계된 업무보고에서는 장관들이 정책 배경과 법·제도적 한계를 직접 설명하고, 대통령의 질의에 즉각 답변하는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이는 관료 조직 내부에만 머물던 정책 논의가 공적 책임의 영역으로 이동시키고 있다는 평가다.




관가에서는 “장관들이 대통령 뒤에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서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해석도 적지 않다.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장관 중심의 집단 책임 체계를 국민 앞에서 구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장점은 국정 메시지 전달 방식의 변화다. 생중계는 편집된 보도자료나 요약 브리핑이 아니라 질의·응답과 논쟁의 과정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는 유튜브와 실시간 콘텐츠에 익숙한 국민들에게 비교적 직관적으로 다가간다.


정치적 해석을 거치기 전, 대통령과 장관의 발언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투명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 설명을 다시 해석해 전달받던 과거 방식과 비교하면 정보 전달의 중간 단계가 줄어든 셈이다.




실언 리스크 노출

반면 생중계의 단점도 분명하다. 가장 큰 우려는 실언 리스크다. 즉흥적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온 표현 하나가 정책의 본래 취지와 다르게 해석되거나, 외교·통상 사안에서는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통령의 문제 제기가 '정책 방향'인지 '개인적 문제의식'인지 구분되지 않은 채 전달될 경우, 시장이나 외교 상대국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일부 발언은 이후 대통령실이나 관계 부처가 추가 설명에 나서는 상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문제는 이러한 장면이 편집 없이 그대로 공개됐다는 점이다.


지난 12일 생중계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학재 사장에게 질문을 이어가다 공식 업무 범위를 벗어난 듯 한 질책을 쏟아내 논란이 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ㅇ; 대통령은 이 사장에게 '책갈피 달러 검색' 여부를 질문하며 거듭된 답변 부재를 질책했고, 이후 이 사장은 “대통령이 제시한 해법대로라면 공항이 마비될 것"이라고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업무보고를 지켜본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생중계로 진행되는 업무보고에서 질책이 과도하게 노출됐다"는 평가와 “현장 사안의 복잡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채 대통령의 표현만 크게 부각됐다"는 지적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이 사례는 생중계 방식으로 인해 질문과 답변의 실무적 맥락이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채 현장 발언이 그대로 노출되면서 오해를 낳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제 사례로 평가된다.


대통령실도 이를 의식하는 반응을 내놨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지난 18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생중계하는 것과 관련해 “대통령 스스로가 감시의 대상이 되겠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강 대변인은 이날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해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 집무실에 CCTV를 설치했던 것을 기억하느냐"며 이같이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파놉티콘은 권력이 응시하는 구조이며, 감시받는 쪽이 약자"라며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감시받는 위치를 선택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업무보고 생중계는 위험부담이 있지만, CCTV를 늘 켜놓고 국민에게 공개하겠다는 의미"라며 “가장 많이 감시받는 대상은 국민이나 부처가 아니라 이 대통령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대통령의 모험"이라고 표현했다.


또 강 대변인은 “업무보고는 몇 장의 서류로 성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라,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라며 “결과 중심 행정이 아니라 과정 중심의 행정"이라고 부연했다.


'만기친람' 논란…조율의 정치 사라질까 우려도

또 다른 쟁점은 대통령의 직접 개입 범위다. 생중계 구조상 대통령의 질문과 반응이 곧바로 공개되면서 정책 조율 과정이 충분히 숙성되기 전에 외부로 노출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정책 결정 과정에는 통상 비공개 토론과 내부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생중계가 일상화될 경우 장관과 관료들이 위험 부담이 있는 판단을 회피하거나, 대통령의 반응을 의식한 답변에 치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속도와 투명성은 얻을 수 있지만, 숙의와 조율이라는 행정의 기본 원리가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문제는 공개 여부 자체가 아니라, 이 대통령이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디서 멈추느냐에 달려 있다는 평가다.


따라서 모든 회의를 상시 공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이나 정책 방향 제시 국면에 한정해 선택적으로 활용할 경우 장점이 극대화될 수 있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생중계 자체가 목적이 되면 위험하지만, 내각 책임성과 정책 설명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새로운 국정 운영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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