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고준위 방폐장 건설, 기술보다 중요한 조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1.29 11:00

홍태경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홍태경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홍태경 연세대학교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

원자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 방사성 폐기물의 생산은 불가피하다. 인간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2015년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센터가 경주에 설치된 이후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각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시설에 보관되고 있고, 이마저도 2030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차례로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행히 중앙집중식 임시저장시설을 2050년까지 운영하기로 결정하면서 일시적으로 숨통은 트였다. 그러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영구 처분장 건설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지난해 9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 2030년부터 2047년까지 지하연구시설(URL)을 통한 현장 실증을 거쳐 2060년에 고준위 방폐장을 설치한다는 큰 시간표의 첫발을 떼었다.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고준위 방폐장은 중·저준위 방폐장에 비해 훨씬 높은 기술적 난이도와 안정성이 요구된다. 더욱이 세계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사례도 많지 않다. 미국은 지하연구시설(URL) 운영과 유카산 처분부지까지 결정했으나, 국민 수용성 미확보 등의 이유로 2010년 사업이 잠정 중단되었다. 핀란드는 지하 500m 깊이의 화강암 암반을 활용한 세계 최초의 고준위 방폐장을 건설해 현재 운영 허가를 기다리고 있다.


스웨덴, 프랑스, 스위스 등도 2030년 이후 운영을 목표로 준비 중이다. 국토 면적이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여건을 고려하면, 안전성과 수용성이 모두 높은 처분지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법은 과학적 검토를 통해 부지를 선정한다는 원칙만 제시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방법은 하위 법령이나 위원회에 위임하고 있다. 지하연구시설을 통한 현장 실증은 공학적 방벽 성능을 점검하는 데 의미가 있지만, 수만 년에 이르는 부지의 장기 안정성을 검증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현장 실증과는 별도의 충분한 과학적 검토가 필요하다.




반감기가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에 이르는 방사성 핵종을 고려할 때, 처분 부지는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위험의 경중을 고려한 중·장기 재해 유발 요소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과, 한반도 환경에 특화된 과학적 검토가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10만 년 전 마지막 빙하기 당시의 한반도는 지금과 크게 달랐다. 북극과 북유럽해에는 거대한 빙하가 형성되었고, 해수면이 낮아 한반도는 주변 지역과 연결되어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10만 년 동안에도 해수면 상승과 하강, 지표의 융기와 침하, 단층 운동과 지진 등 다양한 환경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심층 처분장이 지표에 노출되거나, 처분시설이 변형되거나 파손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처분시설 내 방사성 폐기물은 안정적으로 관리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 재해 요소의 위험도를 면밀히 평가하고, 위험도가 높은 요소에 대해서는 단순한 모델이나 예측에 의존하기보다 적극적인 조사와 충분한 검증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반도에서 발생한 지진들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2016년 규모 5.8의 경주지진은 단층면 최대 변위가 약 30cm, 파열 면적이 16㎢에 달했지만 지표에는 뚜렷한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이는 지진을 일으킨 단층이 지하 약 11km 깊이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층들은 한반도 곳곳에 분포해 있고, 오랜 기간 응력이 누적되다가 갑작스럽게 방출되며 큰 지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1952년에는 평양 인근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했고,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에는 규모 7에 가까운 지진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런 지역에 처분시설을 건설할 경우, 시설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자명하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부지 안정성과 지하 단층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반영구적 처분을 목표로 하는 고준위 처분시설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복구나 이전이 매우 어렵다. 우리 후손에게 영원한 부담이 되는 시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지금 깊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재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이 바로 지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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