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한식당에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저녁 식사를 하며 식당 주인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설 명절을 앞두고 '체감 물가' 잡기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검찰의 담합 수사, 업계 가격 인하, 범정부 물가관리 TF 검토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서며 생활물가 안정에 사실상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모습이다. 거시경제 지표와 국민 체감경기 간 괴리를 좁혀 설 민심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10일 청와대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설 연휴 기간 전국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는 명절 이동에 따른 국민 교통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표적인 민생 대책으로, 정부는 그간 명절마다 이를 시행해왔다. 경기 회복 신호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느끼는 생활비 부담이 여전히 큰 만큼, 체감 가능한 정책부터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조치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현장 행보에도 직접 나서며 체감 경기 점검에 힘을 쏟고 있다. 그는 9일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과 함께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내 '서촌 인왕식당'을 찾아 상인들과 소머리국밥을 먹었다. 이 자리에서 “수출이 회복되고 주가도 오르고 있지만 막상 식당에 와서 밥 한 끼 먹어보면 국민들이 왜 힘들다고 하는지 느껴진다"며 “국민들이 체감하지 못한다면 아직 경제가 좋아졌다고 말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식사를 마친 뒤 이 대통령은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겨 유자차를 마시며 “정책은 책상 위가 아니라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률이나 수출 등 거시지표가 회복세를 보여도 장바구니 물가가 안정되지 않으면 정책 효과가 국민에게 전달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정치권 관계자는 “명절 물가는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표적인 생활 지표"라며 “이 시기 거시지표가 좋아도 국민이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고 느끼지 못하면 정부가 아무리 긍정적인 경제지표를 내놔도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저녁 식사를 위해 방문한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에서 상인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난 5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물가 관리 TF(태스크포스)' 구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며 물가 대응의 고삐를 죄었다. 그는 “과일도, 농수산물도 유통 구조가 이상하고, 축산물도 소값은 폭락하는데 고깃값은 안 떨어진다"며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물가 문제를 관리하는 태스크포스(TF)를 검토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이때까지 담합해서 가격을 올렸으면 가격을 내려야 하는데 내렸는지 잘 모르겠다"며 “잠깐 사과하고, 할인 행사하고, 모른 척 또 넘어가는데 그런 일이 없게 끝까지 철저히 관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독과점 구조를 활용한 가격 인상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독과점 상황을 악용해 국민에게 고물가를 강요하는 문제는 국가 공권력을 총동원해 반드시 시정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최근 검찰이 밀가루와 설탕 업체들의 담합 행위를 적발한 사실을 재차 언급하며 독과점 기업들을 향해 “국가 구성원 모두에게 피해를 주며 혼자 잘살면 좋겠느냐"고 일갈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물가 안정을 위한 구체적 대응책도 잇달아 제시했다. 그는 “특정 기간 집중적으로 물가 문제를 관리할 TF를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며 관계 부처가 참여하는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검토하라고 했다. 또 “단기적으로 뭔가 지금까지 안 쓰는 새로운 방법을 발굴해내야 할 것 같다"며 “가격조정명령제도가 있다던데 그것도 잘 활용하든 해야겠다"고 말했다.
가격조정명령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국무회의에서도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에게 독과점 기업에 가격조정명령을 내릴 수 있는지 질의한 바 있다. 가격조정명령은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한 사업자에 정부가 내릴 수 있는 '비상조치'로, 가장 최근 사례는 2014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교육부의 초·중고 교과서 가격 인하 명령이다. 다만 이후 12년간 발동 사례가 없고, 대법원이 2019년 정부의 교과서 가격 인하 명령을 위법으로 판단한 전례가 있어 실제 적용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이 대통령은 정책 집행력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이려면 '적당히 하다가 넘어가는구나'라는 생각을 갖지 못하게 해야 한다"면서 “'빈말은 하지 않는구나', '한번 정한 정책은 반드시 집행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9일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을 방문했다. [사진=청와대]
이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은 “담합에 대한 현행 규정은 매출의 20%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데 이를 30%로 상향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다"며 “물가 원상 복구를 위해 공정위가 가격 재결정 명령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정조치 운영지침도 개정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정책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아, 적당히 하다 넘어가는구나' 이런 생각을 절대 못하게 해야 한다"며 “정책 신뢰성의 제일 큰 토대는 법률이다. 법을 만들었으면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의 고강도 메시지는 즉각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검찰은 지난 2일 대한제분·사조동아원·삼양사·대선제분·삼화제분·한탑 등 제분사 6곳의 대표이사를 포함한 20명을 5조9913억원 규모의 밀가루 가격 담합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해 11월에는 CJ제일제당과 삼양사 등 제당사들도 3조2715억원 규모의 설탕 가격 담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제분·제당업계는 같은 날 소비자용 설탕 및 밀가루 품목 출고가를 최대 6% 인하했다. 생리대 제조회사들도 앞다투어 가격 인하에 나섰다. 쿠팡 PB 자회사 씨피엘비(CPLB)는 생리대 전문 브랜드 '루나미'를 통해 중형 크기 제품을 개당 99원에 선보였고, 유한킴벌리·LG유니참·깨끗한나라 등도 중저가 제품 출시를 준비 중이다.
금리 정책을 적극 활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는 담합 제한과 함께 공급 확대 카드도 병행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신선란 224만개를 수입하겠다고 밝힌 뒤 이달 초까지 전량이 국내 시장에 공급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관련해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불경기와 고물가가 장기간 이어지면서 시민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 특히 먹거리 물가 부담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소비자들이 비싸다고 느끼지 않도록 물가 관리 TF를 구성하는 것은 굉장히 바람직한 조치"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구조상 과점 형태가 많은 만큼 정부가 담합 여부를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조사하는 것만으로도 업계가 가격 인상에 신중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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