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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무기 두뇌 99%가 수입산…K-방산, ‘국방 반도체 자립’ 박차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3.11 08:29

전원 반도체 99.5%·메모리 98.8% 이상 해외 의존
단종·금수 공급망 위기 시 전력화 지연 불가피 지적
KAI·삼성전자·한화·넥스원 등 민·관·학 전력투구
“美 종속 ITAR 탈피”…정부, 독자생태계 구축 지원

국방 반도체는 방위산업 제품 전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제때 수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납기 차질로 이어진다. 사진=구글 생성형 인공 지능(AI) 제미나이

▲국방 반도체는 방위산업 제품 전반에 들어가기 때문에 제때 수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납기 차질로 이어진다. 사진=구글 생성형 인공 지능(AI) 제미나이 생성

현대 전장의 패러다임이 과거의 물리적 타격력 중심에서 데이터와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지능형 전장'으로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무기체계의 두뇌이자 심장 역할을 하는 국방 반도체가 자리 잡고 있고, 이는 국가의 자주 국방 역량을 결정짓는 핵심 전략 자산으로 부상했다.


21세기 대한민국 자주 국방의 완성은 기계적 성능이 아닌 반도체 회로 위에서 실현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지만 정작 국방 반도체 자급률은 취약한 수준이어서 글로벌 공급망 위기 시 K-방산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원 반도체·메모리 등 주요 품목의 극심한 해외 의존 실태


국방 반도체는 일반적인 상용 반도체와 달리 전장의 극한 환경에서도 신뢰성을 보장해야 하는 특수부품이다. 고온과 저온의 극심한 온도 변화, 강력한 충격과 진동, 그리고 우주·고고도 환경에서의 방사선 노출 등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무기체계의 정밀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전은 육·해·공뿐만 아니라 우주와 사이버 공간을 포함하는 다영역 작전(MDO, Multi Domain Operation)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국방 반도체는 방대한 전장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처리하여 지휘관의 의사 결정을 지원하고, 무기체계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는 핵심 인프라가 된다.


가트너의 전망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은 2023년 약 343억 달러 규모에서 내년에는 1194억 달러 수준으로 3년 만에 3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국방 분야에서도 AI 반도체가 유도 무기·무인 플랫폼·전자전 장비 등에 필수적으로 통합되면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임을 의미한다.




국내 국방 반도체 산업의 가장 큰 아킬레스건은 첨단 무기체계에 적용되는 반도체의 98.9%를 해외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높은 의존도는 경제적 비용을 넘어 수출 규제나 단종 위험과 같은 공급망 위기 시 무기 생산이 전면 중단될 수 있는 안보 위협으로 직결된다. 구체적인 품목별 자율성 현황을 분석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국방 반도체의 핵심 품목인 △디지털 집적 회로(IC) △전원 반도체 △센서 △트랜지스터 등은 대부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특히 국방용 전원 반도체의 수입 의존도는 99.5%에 달하며, 메모리 반도체 역시 98.8%를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다. 현대 무기체계의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들이 사실상 외국산 '두뇌'에 의존하고 있어 독자적인 전력 운용에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는 지적이다.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현장에 전시된 현대로템 K-2PL 전차 실물·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A1 자주곡사포 모형(상단)과 한국항공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현장에 전시된 현대로템 K-2PL 전차 실물·한화에어로스페이스 K-9A1 자주곡사포 모형(상단)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KF-21 보라매 전투기·LIG넥스원 천궁 실물. 사진=박규빈 기자

◇반도체 확보 기간, 6개월서 최대 2년으로↑…생산 차질·수출 경쟁력 저하 우려


글로벌 공급망의 불안정성은 국방 반도체 확보를 위한 리드 타임을 과거 6개월에서 현재 1~2년으로 대폭 늘려 놨다. 이는 K-방산의 독보적 강점인 '신속한 납기' 능력을 훼손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고 있다.


반도체 수급 문제로 인한 납기 지연은 수출 시장에서의 대외 신뢰도 하락과 직결되며,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와 방위산업 전반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


무기체계별 탑재 규모를 보면 K-21 보병 전투 차량에는 1047의 반도체가 필요하며, 대포병 탐지 레이더(628개)·방어 유도탄(275개) 등 주요 무기마다 대량의 반도체가 투입된다. KF-21 보라매의 핵심인 AESA 레이더에는 수만 개의 송수신 모듈 반도체가 장착돼 표적 탐지·추적 능력을 좌우하므로 반도체 확보 실패는 곧 전투력 공백으로 이어진다.


◇AESA 레이더 핵심 'GaN 반도체' 제조 100% 해외 의존, 기술 종속 심화


실리콘(Si) 기반 반도체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질화갈륨(GaN) 반도체는 고출력과 고효율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어 AESA 레이더 고주파 전력 증폭기 등에 필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국방 혁신을 이끌고 있다.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방산 강국들은 이미 GaN 기반 군사용 무선주파수(RF) 반도체를 전략 물자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GaN 반도체 제조 공정의 100%를 외국 파운드리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기술 종속을 타파하기 위해 전문가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내 민간 파운드리에 국방 전용 라인을 확보하는 '국방형 리쇼어링' 전략을 제안한다. 아울러 국내 방산 대기업들은 국방 반도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LIG넥스원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와 협력해 AESA 레이더·무인 항공기 합성 개구 레이다(SAR)용 반도체 개발에 착수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초소형·고성능 반도체를 개발해 독자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 향후 유·무인 전투기 사업 등에서 안정적인 부품 수급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한화시스템은 국내 최초로 '위성용 우주 반도체' 개발을 시작했다. 극한의 우주 환경에서 안정적인 통신을 지원하는 트랜시버 우주 반도체 기술을 확보해 미국이나 유럽에 의존해온 저궤도 통신 위성 부품의 국산화를 가속화할 방침이다. 이 반도체는 디지털 방식의 빔포밍 기술을 통해 정밀한 신호 제어와 대용량 통신 환경을 제공한다.


국내 최초 공랭식을 적용한 LIG넥스원의 전투기용 AESA 레이더(좌)와 힌화시스템이 만드는 우주 반도체. 사진=LIG넥스원·한화시스템 제공

▲국내 최초 공랭식을 적용한 LIG넥스원의 전투기용 AESA 레이더(좌)와 힌화시스템이 만드는 우주 반도체. 사진=LIG넥스원·한화시스템 제공

◇정부·국회 차원 독자 설계·제조 및 공급망 자립화 추진


정부는 국방 반도체 자립을 국가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2024년 국방반도체센터를 출범시키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응 체계를 구축했다. 특히 한국 무기체계가 미국의 국제 무기 거래 규정(ITAR) 통제 품목에 종속돼 수출·운용 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핵심 목표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삼성전자는 항공우주·방위산업용 AI·RF 반도체 개발을 위한 전략적 협력을 체결했다. 삼성전자의 차별화된 파운드리 공정 역량과 KAI의 항공 플랫폼 기술을 결합해 설계-공정-양산 전 단계에 걸친 통합 기술을 확보할 계획이다.


양사는 방산 특유의 신뢰성과 보안성을 고려한 연구·개발을 추진하며 민수 분야의 첨단 반도체 기술을 국방에 적용하기 위한 기술 로드맵을 수립해 해외 의존도를 줄이고 자주국방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예정이다.


정부는 'ITAR-프리'와 같은 원천 기술 국산화 R&D를 지원하고, '인·허가 타임 아웃제' 등을 통해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 속도를 높이는 등 인프라 조성과 같은 제도적 지원에 힘쓰고 있다.


지난 9일 국회에서는 국회 국방위원장인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국방반도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국방반도체육성법) 제정을 위한 세미나가 열렸다. 성 의원은 국방 무기체계의 핵심 부품인 국방 반도체 자립 필요성을 강조하며 작년 2월 해당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이상우 방위사업청 국방반도체인공지능과장은 “국방 반도체 설계·제조·양산 등 국내 산업 생태계의 수직 계열화가 이뤄지도록 관계 부처와 협력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며 “산업-안보가 서로 연계되는 전략 기술이기에 민·학·군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AI·무인 전장 시대 대비 국방 전용 파운드리 확보·전문 인력 양성 과제


미래 전장은 유·무인 복합 체계(MUM-T)과 자율화 기술이 지배할 것으로 전망되며, 이를 뒷받침할 고성능·저전력 국방 반도체 확보가 필수적이다. KAI는 개발된 국방 AI 반도체를 온 디바이스 형태의 자율 제어 시스템(ACS)에 적용하여 무인기 플랫폼 등에 탑재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AI 파일럿 구동을 실현하고 MUM-T 수출 경쟁력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한화시스템은 서울대학교·성균관대학교와 협력해 캠퍼스 내에 국방우주반도체 공동 연구 센터를 설립했다. 서울대와는 통신용 고주파수 반도체를, 성균관대와는 레이더용 고출력·고효율 반도체를 공동 개발하며 기술 내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2030년까지 반도체 특성화 대학원을 10개로 확대하고 국방 반도체 분야 계약학과를 신설해 첨단 방산 인력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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