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외벽 일부가 화재로 그을린 모습. 노후 아파트의 화재 취약성이 현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진=장혜원 기자
“오밤 중에 아들 내외와 손주들이 몸만 겨우 피한 채 헐레벌떡 피신 나왔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지난 23일 밤 화재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현장을 27일 직접 찾았다. 이날 단지 내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자녀 가족이 화재가 발생한 동에 거주하고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위와 같이 전했다. 실제로 단지 안은 아직 화재의 흔적이 선명했다. 밤 사이 불길은 잡혔지만, 화재가 발생한 12층과 피해를 입은 13층에는 그을음과 잿더미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지 게시판에는 '화재 세대 피해 보상 안내' 게시물이 부착돼 있었다. 관리사무소 측은 피해 규모와 소방 안전 점검 여부 등을 묻는 질문에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답변하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화재로 주민 70여 명이 대피했고, 소방은 사고 당일 오후 9시 8분 신고 접수 후 1시간여 만인 오후 10시 17분께 완진했다. 큰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소방안전 체감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내부에 화재경보기는 설치돼 있지만, 스프링클러 설비는 갖춰지지 않은 모습. 노후 아파트의 화재 대응 체계 한계가 드러난다. 입주민 제공
한 주민은 “스프링클러는 없고 경보기만 설치돼 있다"며 “평소 소방훈련이나 경보기 작동 시험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경비원은 “오래된 아파트라 스프링클러는 없지만 매달 정기 소방점검을 하고 있다"고 했다. 당시 대피한 입주민도 “경보는 정상적으로 울렸고, 주민들은 복도에서 울린 경보를 듣고 비상계단으로 대피했다"고 전했다.
장미아파트는 현장에서 본 것만으로도 화재 취약 요소가 적지 않았다. 외벽 쪽 비상구 계단 출입부에는 생활 물품이 쌓여 있었고, 이는 유사시 주민 대피 동선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어 보였다.
복도마다 소화기와 소화전이 설치돼 있었지만, 설비 존재만으로 초기 대응 여건이 충분하다고 보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여기에 단지 내 주차장은 이중주차 차량까지 겹쳐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빠져나갈 정도로 폭이 좁은 구간이 눈에 띄었다.
대형 소방차의 신속한 진입과 회차를 고려하면, 실제 화재 발생 시 진입로 확보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현장에서 제기된다. 이번 화재는 그나마 도로변과 가까운 동에서 발생해 소방차 접근이 가능했지만, 주민들 사이에서는 안쪽 동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면 훨씬 큰 혼선이 불가피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으로 공통됐다.
송파소방서 관계자는 “소방차 진입이 어려운 지역에 대해서는 소방차 전용구역을 설치하고, 불법 주정차 여부를 사전에 단속·점검하고 있다"며 “다만 장미아파트처럼 이중주차가 상시적으로 발생하는 단지는 매일같이 현장에 나가 관리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사시에는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해 강제 처분이 가능하며, 필요할 경우 차량을 밀고 진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며 “최근에는 이러한 상황을 가정한 대응 훈련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차량 손상에 따른 민원이나 보상 문제 등 현실적인 부담이 있어 적극적인 집행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장미아파트 단지 내 주차장이 차량으로 빼곡히 들어찬 모습. 이중주차와 협소한 동선으로 인해 유사시 소방차 진입에 어려움이 우려된다. 사진=장혜원 기자
“있지만 믿기 어려운 안전"…잠실주공5단지의 역설
문제는 이런 불안이 장미아파트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장미아파트와 더불어 재건축 수혜 단지로 각광받는 잠실주공5단지에서도 또 다른 형태의 노후가 확인됐다. 두 단지는 사실상 잠실 내 마지막 재건축 노른자위로 평가받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사업 기대감보다 노후 설비가 드리운 안전 불안에 더 가까웠다.
이곳은 1978년 준공돼 소방법상 전 세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일부 주민은 “장미아파트와 달리 주공5단지는 전 세대에 각각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복도마다 소화전이 갖춰져 있고, 관리사무소 측은 “수시 점검을 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전 세대에 화재경보기도 나눠줬다"고 해명했다. 겉으로 보면 장미아파트보다 안전장치가 보강된 듯 보였다. 하지만 공용부를 들여다보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소화전 내부에 거미줄과 먼지가 쌓여 있고, 일부 공간은 스티로폼으로 막혀 있는 모습. 비상 시 즉각적인 사용이 가능한 상태인지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장혜원 기자
복도 벽면에 붙은 소화전함은 겉면부터 녹이 슬어 있었다. 문을 열자 내부에는 호스와 밸브가 있었지만 설비 주변엔 먼지와 거미줄이 엉겨 있었다. 상부 경보장치 부근에는 정리되지 않은 배선이 노출돼 있었고 용도가 분명치 않은 ON/OFF 버튼까지 달려 있었다.
본지가 확인한 설비 상태는 주민들에게 즉각적인 신뢰를 주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설비가 존재한다'는 사실과 '실제로 작동하여 생명을 구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점이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방화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쪽 벽면에는 '방화문 항상 닫힘 유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지만, 다른 구간에서는 문이 열린 채 벽돌처럼 보이는 고정물에 받쳐져 있었다. 평소 통행 편의를 위해 열어둔 것일 수 있지만, 화재가 발생하면 방화문은 단순한 출입문이 아니라 연기와 유독가스 확산을 막는 핵심 차단막이 된다.
주민들의 불안도 제각각이었다. 한 입주민은 “화재경보기 설치 방법을 몰라 그대로 두고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입주민은 “리모델링한 세대의 경우 스프링클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한 동에서 '방화문 항상 닫힘 유지' 안내문이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화문이 열린 채 고정된 모습. 해당 아파트 동은 전 층의 방화문이 열려있는 모습이었다. 화재 시 연기 확산을 막아야 할 기본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실태가 드러난다. 사진=장혜원 기자
송파소방서 측은 “아파트 내부 소화기, 소화전, 경보설비 등은 관리사무소와 입주민이 관리 주체"라고 밝혔다. 이어 “소방서에서도 점검과 지도는 하고 있지만, 수백·수천 개에 달하는 시설을 일일이 직접 점검·관리하기에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며 “결국 관리사무소와 관계인의 자발적인 이행이 없으면 유지·관리가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비상계단 적치물이나 방화문 개방 등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점검 시 시정기한을 부여하고 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며, 기한 내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법은 소급 안 되고, 의무화 논의는 국회에 멈춰
이 질문은 현장 불안에만 그치지 않는다. 숫자로 봐도 현실은 무겁다.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 서울 아파트 179만808세대 중 27.1%(48만4511세대)가 준공 30년을 넘겼다.
특히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의 최근 5년간 분석에 따르면, 주택화재 사망자(116명)의 압도적 다수가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노후 주택에서 발생했다. 스프링클러의 유무가 곧 '생존의 경계선'이 되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 스프링클러 법적 의무 설치 기준 변천사 (요약표) . 정리=장혜원 기자
그렇다면 노후 아파트 스프링클러는 법적으로 어떻게 돼 있을까. 현행 제도는 기존 노후 아파트 전체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의무화하고 있지 않다. 현재 소방시설 설치 기준은 6층 이상 특정소방대상물의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두도록 강화돼 있지만, 기준은 원칙적으로 신축·증축·개축·재축·이전·용도변경 또는 대수선의 허가·신고 시점 이후부터 적용된다.
다시 말해 예전 기준으로 지어진 아파트는 지금 기준을 자동으로 다시 맞출 의무가 없다. 이 구조 때문에 은마나 장미 같은 구축 단지는 법적으로 스프링클러 공백이 생긴다. 1992년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관련 조항이 의무화되기 전 착공된 아파트 상당수는 여전히 화재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단지 내 도로 양측에 차량이 빼곡히 주차된 모습. 통행 공간이 좁아지며 비상차량 진입 여건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사진=장혜원 기자
다만 “설치 의무가 없다"는 것이 “아무 의무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3조에 따르면 아파트 등 특정소방대상물 관계인은 자체점검 결과 중대위반사항이 발견되면 지체 없이 수리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며, 점검 결과와 이행계획도 관할 소방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시행규칙은 그 보고 시한을 점검 종료 후 15일 이내로 정하고 있다. 즉 기존 단지라도 경보설비, 소화전, 방화문, 피난로 관리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장미아파트와 주공5단지가 보여준 풍경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 장미는 애초에 스프링클러가 없는 구조적 공백이고, 주공5는 설비는 있으나 유지·관리의 신뢰가 충분한지 의문이 제기되는 사례다.
정치권에서도 이 문제를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7월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은 기존 공동주택에도 법 시행 후 2년 이내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 국회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문제는 현실성이다. 기존 아파트에 스프링클러를 소급 설치하려면 수조, 펌프, 배관, 세대 내 공사 공간 등이 모두 걸림돌이 된다. 기존 수도배관을 활용하는 간이 스프링클러 같은 대안도 거론되지만 비용과 공간 제약이 만만치 않다. 결국 국회 안에서도 '일괄 의무화'와 '현실적 보강' 사이에서 논의가 멈춰 있는 상태다.
정부는 전수점검·감지기 보급…근본 해법은 여전히 숙제
정부도 아직 기존 노후 아파트에 대한 전면 소급 의무화 방침을 내놓지는 않았다. 대신 지난해 부산 아파트 화재 이후 '스프링클러가 없는 아파트 전수 점검과 보강'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국무조정실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스프링클러 미설치 아파트 2만5212개 단지를 대상으로 지자체, 전기·가스안전공사와 함께 긴급 화재안전점검을 진행했고, 2025년 8월 29일 기준 93.1%인 2만3460개 단지 점검을 마쳤다.
보강책도 병행되고 있다. 정부는 취약세대에 대해 3년간 약 150만 세대에 단독경보형 감지기를 보급하고, 화재 발생 시 취약가구에 전화를 돌리는 '화재대피 안심콜' 도입, 세대 내 감지기 등 소방시설 설치에 장기수선충당금 사용 허용 등을 추진 중이다. 즉 스프링클러 소급 의무화 대신 감지·경보·대피 체계를 먼저 강화하는 방향이다.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단지 내 도로에서 차량들이 좁은 공간을 비집고 오가는 모습. 빽빽한 주차 환경 속에 통행 동선이 제한되며 안전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장혜원 기자
전기적 화재 대책도 확대되고 있다. 정부는 노후 공동주택 스프링클러 미설치 세대에 대해 지난해 말까지 특별 전기안전점검을 진행하고, 올해부터는 전기안전공사의 세대 내 전기설비 점검 대상을 기존 '25년 이상·1000kW 미만'에서 '스프링클러 미설치 공동주택 전체'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점검 항목 역시 누전·절연·접지뿐 아니라 콘센트·멀티탭 과부하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넓어졌다. 그러나 이런 보강책만으로 세대 내 초기 화재를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한 본지 질의에 “현재 안전 대책을 마련 중이며, 정리되는 대로 공식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결국 재건축을 기다리는 서울의 오래된 단지들은 그렇게 서로 다른 표정으로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다. 시장은 이들 아파트를 볼 때 입지, 사업성, 대지지분, 용적률을 먼저 따진다. 하지만 현장에서 먼저 보이는 것은 그런 숫자가 아니다. 녹슨 소화전 문, 거미줄 낀 설비, 열린 방화문, 빽빽한 주차장, 그리고 “불 나면 괜찮겠느냐"는 주민들의 짧은 한마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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