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훈 유통중기부장
지난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집단소송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집단소송제는 제조물·금융·통신·이커머스 등 소액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는 사건에서 대표당사자가 가해 기업이나 국가를 상대로 승소하면 그 판결의 효력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게도 자동으로 미치도록 하는 제도다. 현대의 대량 생산·유통·소비 사회에서 대규모 불특정 다수의 피해 구제 방안으로 필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정부와 여권이 추진하고 있는 집단소송법은 그 효과에 의문이 든다. 선례가 없을 뿐 아니라 우리 법체계와 맞지 않은 파격적인 내용을 다수 담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대표당사자가 승소하면 명시적으로 소송 불참을 표명한 피해자를 제외하고 모든 피해자가 자동으로 배상받지만, 반대로 대표당사자가 패소하면 소송 불참을 표명하지 않은 피해자는 더 이상 동일 사건에 대해 소를 제기할 수 없다. 이는 집단소송제의 '기판력(旣判力)' 때문으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옵트 아웃(명시적으로 제외를 표명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포함)' 방식에 '소급 적용'이 결합되면 법의 파급효과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이 대표발의한 집단소송법안들은 법 시행 전에 손해배상청구의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도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법체계는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두고 있지만 이 법안 발의자들은 2011년 처음 공론화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지난해 발생한 쿠팡 정보유출 사태 등 피해 구제가 완료되지 않은 사건은 부진정 소급입법이 가능하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러나 집단소송의 천국 미국에서도 '옵트 아웃' 방식은 일반화돼 있지만 소급 적용은 매우 엄격히 제한된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옵트 아웃' 방식의 집단소송제를 도입하고 있는 증권관련집단소송법도 불소급 원칙에 따라 법 시행 이후 행위부터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손해배상액 산정도 논란거리다. 발의된 법안들은 정확한 손해액을 산정하기 곤란한 경우 '표본적·평균적·통계적 방법'으로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쿠팡 사태의 경우 손해배상액은 얼마나 될까. 증권집단소송법은 거래이력 등 비교적 손해액을 산정하기 용이하지만 무단결제 등 2차 피해가 미미했던 쿠팡 정보유출 사태 피해자들의 정신적 피해는 얼마로 산정해야 할까. 만일 1~2년 후 2차 피해가 발생한다면 입증 책임 부담까지 떠안게 될 쿠팡의 배상액 규모는 더욱 예측하기 어려워진다. 이는 경영 불확실성을 크게 높인다.
문제는 현재 발의된 법안들이 모든 분야, 모든 기업의 손해배상청구소송 전반에 포괄적으로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옵트 아웃 방식에 소급 적용까지 결합돼 기업은 언제 수백억~수천억원의 손해배상소송에 휘말릴지 예측하기 어렵다. 이 정도 배상액이면 중견·중소기업은 하루아침에 문닫을 수밖에 없다. 기업이 존폐위기에 처했을 때 가장 큰 위협을 받는 자들은 종사자들과 소액주주, 소액채권자, 하청업체들이다.
정부와 여권은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등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보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나 거대여당이라면 소비자, 노동자, 주주, 경영자 모든 경제 주체에게 새로 만드는 법제도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루 살펴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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