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탁방식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을 형상화한 이미지. 신탁사 중심 사업 구조 속에서 높은 수수료·금융비용, 의사결정 갈등, 정보 비대칭, 책임 불명확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주민들은 '투명한 사업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 AI생성이미지
재개발·재건축 시장에서 신탁방식 도입이 확산되면서 관련 민원이 빠르게 늘고 있다. 사업 기간 단축과 자금 조달 안정성을 강점으로 내세운 제도지만, 현장에서는 비용 부담과 의사결정 구조를 둘러싼 갈등이 동시에 커지는 양상이다.
3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신탁방식은 신탁사가 사업시행자로 참여해 자금 조달부터 분양까지 전 과정을 맡는 구조로, 기존 조합 방식 대비 사업 기간을 2~3년가량 단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산되고 있다. 공사비 분쟁을 줄이고 사업 관리의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도 반영되면서 서울 주요 재개발·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도입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속도' 이면의 구조적 리스크가 더 크게 부각되고 있다. 가장 큰 쟁점은 비용이다. 신탁사는 통상 분양 매출의 2~4% 수준을 수수료로 가져가는데, 대규모 사업일수록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에 달하는 부담이 조합원에게 전가된다. 여기에 초기 사업비 조달 과정에서 고금리 신탁계정대가 투입되면서 금융비용 부담까지 더해지는 구조다.
특히 신탁사가 자금 조달을 전담한다는 인식과 달리, 실제 사업 구조에서는 시공사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공사 선정 이후에는 이주비와 사업비 대부분이 HUG 보증을 통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방식으로 조달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신탁사의 자금 투입은 초기 단계에 제한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건설업계에서는 “밥상은 건설사가 차리고, 생색은 신탁사가 낸다"는 불만까지 제기된다.
의사결정 구조 역시 갈등의 핵심 요인이다. 신탁사가 시행권을 확보하면 사업 주도권이 신탁사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조합원 의견 반영이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신탁계약 해지를 위해 통상 75%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구조는 사실상 계약 변경을 어렵게 만들어 '불통'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산권 문제도 민원 확대의 직접적인 배경이다. 신탁등기 과정에서 토지 소유권이 신탁사로 이전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재산권 행사 제한과 통제력 상실에 대한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동의율 확보 과정에서 정보 비대칭이나 금전적 유인 논란까지 겹치며 주민 간 갈등이 심화되는 사례도 잇따른다.

▲신탁 방식 vs 조합 방식 정비사업 비교. 정리=장혜원 기자
비용은 늘고 효과는 제한적…신탁방식 금융구조 논란
사업 지연 시 책임 구조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신탁방식은 사업 실패나 지연 시 매몰비용 부담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분쟁 소지가 크고, 초기 자금 투입 이후 리스크가 다시 조합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조합이나 추진위원회 입장에서는 직접 사업을 끌고 가기보다 자금 조달과 시공사 선정이 수월한 신탁사를 전면에 내세우려는 흐름이 뚜렷하다"며 “조합 설립 절차를 생략할 수 있고 추진 속도가 빠르다는 점, 또 신탁사의 전문성을 활용해 사업을 관리할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현장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 양상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신탁사를 시행자로 지정하는 과정에 이른바 추진세력이 개입하고, 이들과 신탁사가 결합할 경우 조합은 사실상 견제 수단을 잃게 된다"며 “조합 방식은 문제가 생기면 조합장을 해임해 구조를 바꿀 수 있지만, 신탁방식은 위원장을 교체해도 시행권은 그대로 신탁사에 남아 있어 사업 주도권이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신탁사가 특정 용역업체나 시공사를 선정해 사업을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이후 들어온 집행부가 계약을 뒤집거나 통제하기가 쉽지 않다"며 “결국 사업 운영 전반에 대한 실질적 통제력이 약해지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갈등은 사업 초기부터 예고된 구조라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신탁사들이 법적 근거가 없는 '예비신탁사' 지위를 앞세워 사실상 사업 참여가 확정된 것처럼 홍보하면서다. 실제 서울 양천구 목동7단지에서는 추진위원회가 분열된 상태에서 별도 조직이 신탁사와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갈등이 촉발됐다. 신탁사 선정 주체와 시기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이 없는 점도 혼선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금융비용 문제 역시 대표적인 갈등 사례로 꼽힌다.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신탁방식을 선택했지만, 신탁사가 제시한 사업비 조달 금리는 연 6%로 일반 조합 방식(3%대 중반)보다 크게 높았다. 이에 따라 매년 수백억원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금리 구조가 계약서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거나 내부 기준으로 사후 결정되는 경우도 있어 비용 통제권이 사실상 신탁사로 넘어간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권한은 신탁사로"…조합 통제력 약화·견제 실종
전문성 논란도 확산되는 분위기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사업에서는 부지 매수 협의가 완료되지 않은 상가를 사업계획에 포함했다는 이유로 행정당국의 시정지시가 내려지면서 신탁사의 사업 관리 역량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 상가 측 협상력이 오히려 커지면서 매수 비용이 당초 계획보다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속도 측면에서도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여의도 일대 신탁방식 단지에서는 동의율 미달, 일부 주민 소송, 사업 철회 검토 등이 이어지고 있으며, 일부 단지에서는 전체가 아닌 일부 동만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주민 간 갈등이 격화되는 사례도 나타났다.
수수료 부담 역시 갈등을 키우는 요인이다. 업계에 따르면 목동신시가지 7단지는 총사업비가 7조원대로 추산되는데, 신탁수수료를 1%만 적용해도 약 700억원, 2%일 경우 1400억원에 달할 수 있다. 사업 규모가 클수록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구조다.
또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 “일부 현장에서는 신탁사와 연관된 용역업체가 선정되거나 용역비가 과도하게 책정되는 문제도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며 “이 같은 구조를 일반 토지소유자가 확인하거나 견제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결국 신탁수수료에 더해 각종 용역비까지 늘어나면서 전체 사업비 부담이 커지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조합원에게 돌아간다"고 덧붙였다.
신탁방식의 리스크는 자금조달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합 방식은 시공사 신용이나 HUG 보증을 통해 사업비를 조달하는 구조여서 시공사가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반면, 신탁방식은 조달 과정에서 조합원 주택이 담보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이 틀어질 경우 조합원 재산이 직접적인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탁계약 해지 조건도 조합원에게 불리하게 설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일부 계약은 해지에 100% 동의를 요구하거나, 반대로 신탁사는 경제 상황 등을 이유로 비교적 쉽게 계약을 종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어 구조적으로 비대칭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경기 침체 국면에서는 신탁사가 리스크를 회피하고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계약 체결 단계에서 해지 조건과 책임 범위를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표준계약서 도입에도 한계…제도 공백·책임 비대칭 여전
한편 국토교통부는 2023년 말 '신탁방식 정비사업 표준계약서'를 도입해 202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표준계약서에는 계약 해지 요건을 조합원 75% 동의로 완화하고, 사업비 조달 조건과 금리 구조에 대한 설명을 의무화하는 등 신탁사 권한을 일정 부분 견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다만 해당 기준은 강제 규정이 아닌 권고 사항에 가까워 사업장별 계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제도는 마련됐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적용 편차가 커 체감 개선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신탁방식이 '속도와 효율'이라는 장점과 함께 '비용 증가와 통제권 약화'라는 리스크가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라고 보고 있다. 제도 확산 속도에 비해 수수료 체계, 의사결정 권한, 리스크 분담 기준 등 관리 장치가 미흡한 만큼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결국 신탁방식은 조합 방식의 비효율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현재 구조에서는 '빠른 개발'이라기보다 '권한 이전과 비용 리스크의 재배분'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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