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사우디아라비아 얀부항에서 출항한 뒤 호르무즈 해협 대신 홍해를 통해 빠져나온 유조선이 이달 8일 오전 전남 여수시 GS칼텍스 원유 부두에 정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소 올해 말까지 세계 원유 시장에서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정유사들의 원유 수급 다변화가 장기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원유 수급처별로 물질의 끈적한 정도(점도)가 달라 어느 유종을 어떤 비율로 섞는지가 정제설비의 수익성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정유4사의 수급 다변화 방향을 신중히 검토 중이다.
16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리포트를 통해 호르무즈 해협이 6월 재개방될 경우를 전제로 올해 세계 원유 공급량이 하루 1억220만배럴(bd) 수준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일일 수요는 평균 1억300만배럴 수준으로 예측돼, 세계적으로 수요 대비 공급이 빡빡한 시황이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원유 수요 감소는 정유 기업들이 가동률을 낮추면서 석유제품 생산이 줄고, 최종 소비자 단계에서까지 석유제품 수요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이 IEA 설명이다.
미-이란 전쟁 시작 이후 11주차를 맞이한 정유사들은 원유 수급 다변화에 이전보다 더 힘을 쏟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산 원유 운송 경로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홍해 쪽으로 옮기거나, 비중동산 원유의 도입 비중을 확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원유 수급처마다 점도와 황 함유량 같은 성상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원유는 미국석유협회가 정한 지수(API) 기준으로 33를 넘으면 점도가 낮은 경질유, 22보다 낮으면 점도가 높은 중(重)질유로 분류된다. 다만 API 수치는 유종별로 다양하므로 같은 중질유, 경질유로 분류된다 하더라도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석유제품의 비중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원유에 섞여 있는 황은 일종의 불순물로, 탈황 공정을 거친 뒤 정제 과정으로 들어간다.
가령, 사우디 소재 모회사 아람코와 연계해 아랍 라이트, 아랍 미디엄, 아랍 수퍼라이트 등 사우디산 원유를 들여온 에쓰오일은 원유 조달 경로 다변화로 공정에 투입하는 원유 성상이 일부 변화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야 하는 페르시아만쪽 항구 대신 사우디 동부와 서부를 잇는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홍해에 인접한 얀부 항구를 이용하다보니 점도가 낮은 아랍 라이트를 전보다 더 투입하게 됐다.
SK이노베이션은 호르무즈 해협 쪽에서 조달해온 중동산 중질유 대신 홍해 쪽 얀부항과 푸자이라항에서 나오는 원유와 캐나다·미국·에콰도르에서 나오는 중질유를 도입해 수급 불안을 최소화하는 중이다.
GS칼텍스는 10년 전 미국산 원유를 국내 정유사 중 처음으로 들여왔고, 이후에도 미국산 원유를 꾸준히 도입해왔다. HD현대오일뱅크도 전쟁 전부터 비중동산 원유가 전체 도입분 중 40~50% 수준이었고, 비중동산 원유 도입을 추가로 검토 중이다.
정유사별 보유 설비도 변수다. 원유 성상이 바뀌면 정제 설비로 뽑아내는 석유제품 비중이 변화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도입 원유 성상과 정제 설비 특성, 투입 에너지량, 석유제품별 가격 등을 고려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제품 믹스(종류별 생산 비율)를 찾아낸다. 정제 후 남은 고점도 찌꺼기인 잔사유를 줄이고, 가능하다면 잔사유를 추가로 열분해해 석유제품을 추가로 생산하기도 한다.
중질유분해시설을 보유하면 API 10 정도로 점도가 매우 높은 초중질유를 도입해도 적정 수준의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다. 정유사들은 원유를 나프타와 휘발유, 경유, 등유(케로신) 등으로 증류하는 기본 설비인 상압증류시설 뿐만 아니라, 잔사유를 정제하는 중질유분해시설도 보유하고 있다. 상압증류시설 대비 중질유분해시설의 생산능력 비율을 나타내는 고도화비율은 지난해 기준 △SK에너지 25% △GS칼텍스 34% △에쓰오일 39% △HD현대오일뱅크 42%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 부연구위원은 “국내 정유사들의 정제 설비가 중질유를 70% 정도 투입했을 때 최적의 수율과 경제성이 나오도록 맞춰져 있다"면서도 “최근 진행 중인 원유 수급 다변화 과정에는 경제성 높은 유종을 발견하는 과정이 포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장 위원은 “전세계적으로 200여개의 유종이 있어 중동산과 성상이 비슷한 중질유가 캐나다와 브라질, 에콰도르 같은 곳에도 존재한다"며 “초중질유인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들여온다 해도 정유사별로 설비 고도화 정도와 수율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정유사는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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