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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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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패권 직접 챙긴다…이재용·최태원, 분주한 미국 출장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7.11 06:00

이재용, 애플·아마존 CEO 만나 수주 총력전
최태원, SK하이닉스 나스닥 상장 40조 조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오른쪽),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청와대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격화하면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나란히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 회장은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이 모이는 사교 행사에서 파운드리 신규 수주 물꼬를 트고, 최 회장은 SK하이닉스의 뉴욕 증시 상장을 계기로 자본시장에서 기업가치를 재평가받는 데 주력한다.


10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간)부터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리는 '선밸리 콘퍼런스'에, 최 회장은 같은 날 뉴욕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열리는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식에 각각 자리했다. 대만 TSMC의 생산 한계와 미국 인텔의 추격으로 파운드리 시장이 새 국면을 맞고, AI 메모리 경쟁이 격화하는 시점에 이뤄진 방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의 목적이 실질적인 수주와 비즈니스인 반면, 최태원 회장은 나스닥 상장 자체의 성공적 안착이 당면 과제"며 “두 총수가 역할을 분담해 미국 시장 내 사업 발판을 넓혀가는 구조로 한국 반도체가 정점에 오른 지금이야말로 디테일한 생존 전략에 더 신경 써야 할 시점"고 말했다.




이재용, 빅테크 CEO 릴레이 회동…애플 AP 수주 정조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CEO, 팀 쿡 애플 CEO

▲7일(현지시간)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 리조트에서 개막한 투자은행 앨런앤드컴퍼니 주최 비공개 경제 총회 '선밸리 콘퍼런스'에 참석한 주요 인사들이 행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샘 올트먼 오픈AI CEO, 팀 쿡 애플 CEO. 사진=로이터

이 회장은 이번 출장에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 한진만 사장을 대동했다. 앨런앤드컴퍼니가 매년 7월 주최하는 선밸리 콘퍼런스는 IT·자동차·통신·미디어·금융 등 각 산업 리더 300여명이 모이는 '억만장자들의 사교 모임'으로 이 회장은 이 행사를 “1년 중 가장 바쁜 출장"이라 부를 만큼 애착을 보여왔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참석했으며, 8일에는 루퍼트 머독 전 부인 웬디 덩과 대화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가장 주목되는 건 애플과의 접점이다. 팀 쿡 현 CEO는 물론 9월 취임을 앞둔 존 터너스 차기 CEO, 앤디 큐 수석부사장까지 모두 참석했다. 삼성 파운드리는 지난해 8월 애플 아이폰 이미지센서 반도체를 수주한 데 이어, TSMC가 독점 생산 중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공급망 복귀를 노리고 있다. 최근 TSMC에 AI 칩 주문이 몰리며 공급 차질이 빚어지자 애플이 삼성전자를 대안으로 검토 중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달 블룸버그는 애플 경영진이 삼성전자와 메인 프로세서 위탁생산을 논의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포옹하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해 8월 미국 워싱턴DC 윌라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와 포옹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앤디 제시 아마존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도 자리했다. 두 회사는 엔비디아에 맞서 자체 AI 반도체를 개발 중이며 삼성전자로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받는 동시에 파운드리 잠재 고객이기도 하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대주주인 Arm의 르네 하스 CEO, 삼성SDI 배터리 협력사인 메리 바라 GM 회장, 필립 쉰들러 구글 CBO 등도 참석해 이 회장의 순회 미팅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말에는 실리콘밸리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의 회동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성사되면 지난해 10월 APEC 계기 '치맥회동' 이후 9개월 만으로, 광주 반도체 팹 등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 프로젝트' 후속 협력이 논의될 전망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삼성 파운드리가 여전히 취약한 만큼 애플뿐 아니라 대규모 주문을 넣을 수 있는 AMD 리사 수 CEO, 자율주행 칩 수요를 가진 테슬라 등과의 네트워킹도 총수 차원에서 챙겨야 할 과제"라고 짚었다. 그는 “방미 성과가 곧바로 수주 계약으로 이어질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만큼 글로벌 빅테크 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리는 것 자체가 지금으로선 유일한 생존 전략"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나스닥 상장으로 자본시장 정면 승부

SK하이닉스 ADR 상장식 참석한 최태원 SK 회장

▲최태원 SK 회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 등 관계자들이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나스닥 마켓사이트에서 열린 SK하이닉스 미국주식예탁증서(ADR) 상장 기념 '오프닝벨' 행사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SK하이닉스 유튜브

최 회장은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 등 핵심 경영진과 함께 나스닥 오프닝벨을 울렸다. SK하이닉스는 ADR 공모가를 주당 149달러로 확정, 265억달러(40조원)를 조달한다. 이는 2014년 알리바바(250억달러)를 넘어서는 외국기업 사상 최대 규모이자 지난달 스페이스X에 이어 미국 IPO 역대 두 번째다. ADR은 이날 'SKHYV'로 임시 거래를 시작해 13일 'SKHY'로 정규 거래에 들어가며, 조달 자금은 용인·청주 공장 건설과 첨단 장비 확충에 투입된다.


이는 최 회장이 강조해온 기업가치 재평가 작업의 연장선이다. 그는 올해 초 저서 '슈퍼 모멘텀'에서 “시장이 SK하이닉스를 아직 커머디티(범용) 제조사로 인식해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았다"며 “하이닉스는 지금보다 10배는 더 커져야 한다"고 썼다.




박지형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SK하이닉스의 나스닥 상장을 리스크 헤지 전략"으로 평가했다. 그는 “상장을 통한 자금 조달은 부채와 달리 미래 성장성을 담보로 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재원"이라며, “미국 내 기관·개인 투자자 지분이 늘어나면 관세 등 통상 압박에 대응할 정치·경제적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효과도 있다"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가 이처럼 현지 상장과 미국 빅테크와의 공동 투자 타진이라는 투트랙으로 재원 부담을 덜려는 것으로 보인다는 진단이다. 그는 “총수들이 직접 등판해 빅테크 CEO들을 만나는 것도 이런 국내외 이해관계를 조율하려는 전략적 행보"로 해석했다.


美 투자 압박·마이크론 추격…“러브콜 속 인센티브 협상 필요"

마이크론

▲9일(현지시간) 마이크론이 뉴욕주 클레이 타운에 건설 중인 팹에 콘크리트 타설을 기념하는 명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마이크론 제공.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이 마이크론 공장 현장에서 삼성과 SK하이닉스를 향해 “미국으로 불러와 생산 시설을 짓게 하겠다"고 공개 압박했고, 마이크론은 375조원(2500억달러) 규모 추가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이미 텍사스주에 57조원을 들여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고, SK하이닉스도 인디애나주에 6조원을 투자해 첨단 패키징 생산기지를 구축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초 미국에 생산시설을 짓지 않는 메모리 기업에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만큼, 국내 투자와 별개로 미국 내 추가 투자 요구가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조 교수는 이 같은 압박을 두고 “높아진 한국 반도체의 위상"으로 해석했다. AI 시대로 반도체 가치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지면서 미국 정부와 글로벌 시장의 러브콜이 쏟아지는 국면이라는 것이다. 그는 “미국 입장에서도 국내 기업의 현지 공장 건설이 이득인 만큼, 공장 건설을 매개로 최대한의 인센티브를 끌어내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자율주행·휴머노이드 로봇 등 신산업의 핵심에도 결국 첨단 반도체가 필요한 만큼, 삼성과 SK가 선제적으로 움직이면 상상 이상의 협력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애플이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산 메모리 도입을 검토하는 움직임도 경계해야 한다"며 “팀 쿡·일론 머스크 등 빅테크 수장들과 수평적 파트너십을 다져 대체 불가능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러한 미국의 압박이 “트럼프 행정부 이후에도 이어질 장기 리스크"라고 봤다. 그는 “고율 관세 위협이 국내 기업의 대미 투자 결정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프렌드쇼어링을 넘어 미국 영토 내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정책 기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국내 투자와 대미 투자 간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두 기업의 가장 큰 부담"이라며 “반도체 빅사이클로 호실적을 내고 있음에도 대미 투자 재원은 결국 외부 조달이 불가피한 구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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