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
세계 최대 에너지 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갈등이 격화하면서 국제유가가 급등하는 등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선박에 대한 해상 봉쇄를 재개한 데 이어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화물에 20%의 통행료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는 초강수를 뒀다. 이란도 이에 굴복하지 않고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주장하고 있어 사태가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 트럼프 “호르무즈 해협 수호자"…모든 화물에 20% 통행료
트럼프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이 있든 없든 계속 개방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란 선박, 그리고 이란과 거래하는 선박의 항해를 막는 이란 봉쇄를 재개하고 있다"고 적었다.
지난달 중순 이란과 종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해제했던 대이란 해상 봉쇄를 복원해 이란의 자금줄을 다시 한번 옥죄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다른 모든 국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공정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며 “미국은 지금부터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로 불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다만 공정성 차원으로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이 지역의 안전과 보장을 제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모든 화물에 대해 20%를 보상받을 것"이라며 “관련 절차와 체계 구축은 즉시 시작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약 80달러 수준을 기준으로, 200만배럴 가량의 원유를 실을 수 있는 슈퍼탱커(초대형 유조선) 한 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할 때 약 3200만달러(약 476억원)의 수수료를 부담해야 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전쟁 발발 이후 이란이 부과했던 최대 약 200만달러(약 30억원) 수준의 통행료보다 16배가량 많은 금액이다.
로이터통신은 전쟁 발발 이전 하루 1500만배럴 이상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으며, 그 가치는 최소 12억달러(약 1조 7880억원)에 달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통행료'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미국이 하루 약 2억4000만달러(약 3570억원)를 거둬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해운업계 관계자 10여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비용 부과 방안에 대해 사전에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블룸버그에 말했다. 한 선장은 “고속도로에서 강도를 만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12일 이란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미군(사진=미 중부사령부)
◇ 해상 봉쇄 재개·사흘 연속 야간 공습…압박 높인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초강수는 사실상 무너진 종전 MOU 체제 아래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확보하고 이란을 강하게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과 이란이 지난달 체결한 종전 MOU에는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미국의 대이란 해상 봉쇄 해제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최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폐쇄하고 미국도 대이란 해상봉쇄를 재개하자 MOU는 사실상 붕괴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중동 지역 미군을 관할하는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성명을 내고 미 동부시간 기준 14일 오후 4시(한국시간 15일 오전 5시)부터 대이란 해상 봉쇄를 재개한다고 발표했다.
중부사령부는 또 “미 동부시간 13일 오후 4시 45분(한국시간 14일 오전 5시 45분) 군 통수권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미군이 이란을 상대로 사흘 연속 야간 공습을 시작했다"며 “이번 공습은 이란군에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고한 민간인과 상업용 선박을 공격할 수 있는 이란의 군사 능력을 약화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대이란 공습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했다. 그는 이날 보수 성향 라디오 프로그램 '휴 휴잇 쇼'에 출연해 “오늘 밤 이란을 매우 강하게 공격할 것이며 내일도 강하게 공격할 것"이라며 “그들이 이를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주장했다.
▲호르무즈 해협(사진=로이터/연합)
◇ “해협 지켜준 대가 받아야"…동맹국에 비용 전가 논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부과하려는 또 다른 배경에는 방어 비용을 다른 국가들에 전가하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쟁 이후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 군함 파견을 요구했던 것과 같은 논리라는 것이다.
그는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미국은 해협의 안전을 유지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동안 다른 나라들만 막대한 돈을 벌어갔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는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해협을 지켜왔다. 앞으로는 수호하는 대가를 받을 것이며, 그것도 엄청난 돈을 받을 것"이라며 “우리 국민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 해협을 지키는 만큼 최소한 비용은 상환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호르무즈 해협이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수로인 만큼 어느 나라도 통행료나 별도 요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이 직접 20%의 통행료를 요구하면서 기존 원칙을 스스로 뒤집고 호르무즈 해협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판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싱크탱크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의 홀리 대그리스 선임연구원은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전략을 그대로 되돌려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이란이 그렇게 쉽게 호르무즈 해협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사진=AP/연합)
◇ 이란 “우리가 영원한 수호자"…유조선 공격으로 맞대응
이란 정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과 체결한 합의가 “의심할 여지 없이 심각한 위기 단계에 진입했다"며 “상대방이 합의를 위반하는 동안에는 더 이상 협정을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도 14일 엑스(X·옛 트위터)에 “미국 대통령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상선의 안전한 항행을 보장하는 주체는 그 대가를 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이어 “이란은 언제나 호르무즈 해협의 수호자였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라며 “20%는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우리는 공정하게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을 놓고 미국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란은 미군의 공습에 대한 보복에도 나섰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1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반복적인 경고를 무시한 초대형 유조선 2척을 공격해 운항 불능 상태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는 미국이 선박들에 불법 항로를 이용하도록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침략자와 협력할 경우 선박 피해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지연은 물론 글로벌 에너지 위기까지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혁명수비대는 공격한 선박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아랍에미리트(UAE) 국방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자국 유조선 2척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 브렌트유, 이틀만에 10% 넘게 뛰어…“상황 더 악화될 것"
한편, 국제유가는 미국과 이란 간 갈등 격화로 폭등했다.
글로벌 원유 가격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는 13일 9.6% 급등하며 2020년 5월 이후 최대 일일 상승폭을 기록했다. 이어 14일 장중에도 배럴당 85.64달러까지 치솟으며 최대 2.8% 추가 상승했다.
BMO캐피탈마켓의 이언 린전 전략가는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상황이 글로벌 시장의 가격 움직임을 좌우하면서 에너지 부문이 다시 시장의 중심에 섰다"며 “현재로서는 긴장이 완화되기 전에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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