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 포토

문남석

ans7200@ekn.kr

문남석기자 기사모음




[기획] 896조 투자 청사진…서남권은 어떻게 ‘반도체 도시’가 되나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6.09.29 15:00

반도체 관련 약 800조원…삼성·SK 대규모 생산시설 구축 계획
광주 군공항 250만평 국가산단 후보지…AI·연구·정주기능 함께 설계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산업용지·전력·용수·인재 확보가 첫 관문

800조 반도체, 왜 서남권인가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우선 지정된 광주 군공항 부지 일원. 제공=국토교통부


전남광주=에너지경제신문 문남석기자 80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계획이 서남권을 향하면서 광주·전남의 산업지형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삼성전자와 SK가 서남권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시설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가운데 정부 역시 서남권을 수도권에 이은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한 범정부 지원에 나서면서다.


이번 구상은 단순히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대규모 산업용지를 확보하고 전력과 용수를 공급하는 동시에 연구개발과 인력 양성, 교통·주거 등 정주기능까지 갖춘 기업형 첨단도시를 만들어 지역 산업 생태계 전체를 키우겠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산업통상부가 지난 6월 30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발표한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비전'에 따르면 SK는 약 470조원을 투자해 서남권에 반도체 메모리 메인 팹 2기와 1GW 규모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도 호남에 425조원을 투자해 서남권에 반도체 메모리 팹 2기와 국가 AI 컴퓨팅센터 등을 구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광주에서는 앰코가 1조원을 투자해 첨단 패키징 팹 공장을 증설할 계획까지 내놓으면서 생산과 후공정을 잇는 산업 생태계 구축 구상도 함께 제시됐다.


정부가 발표한 서남권 주요 기업의 전체 투자계획은 896조원 규모이며, 이 가운데 제2의 반도체 생산거점 구축과 관련된 투자 규모가 약 800조원에 이른다. 다만 이 금액은 현재 집행된 투자액이 아니라 기업들이 발표한 투자계획을 합산한 규모라는 점에서 실제 사업 진행 과정에서 규모와 일정이 달라질 가능성은 남아 있다.


왜 서남권인가…반도체 생산의 기본 조건


반도체 생산시설은 일반 제조공장과 달리 대규모 산업용지와 안정적인 전력·용수 공급이 동시에 요구된다.


정부가 서남권을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부는 서남권의 대규모 부지와 우수 인력, 정주 및 교통 여건 등을 주요 입지 조건으로 제시하면서 기업의 투자계획과 연계한 '기업형 첨단도시'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서남권 반도체 생산거점 구축에 필요한 핵심 기반을 부지(Site)·전력(Electricity)·용수(Water)·인력(Talent)​으로 제시했다.




먼저 부지 조성기간을 기존의 절반 수준인 5년 이내로 줄이고, 필요한 경우 인허가와 보상, 설계를 동시에 추진하는 패스트트랙을 적용해 기업이 원하는 시점에 산업용지를 공급한다는 구상이다.


전력 역시 반도체 팹의 안정적인 가동을 위한 핵심 요소로 꼽힌다. 정부는 팹 가동에 필요한 발전설비와 송전망을 신속하게 구축하고, 용수는 댐과 하수재이용수 등을 활용해 공급한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반도체 생산시설을 둘러싼 기반시설을 개별 기업의 과제로 남겨두지 않고 국가 차원에서 함께 구축하겠다는 의미로 읽히는 대목이다.


광주 군공항 250만평…국가산단 후보지로


입지 구상은 실제 국가산업단지 후보지 지정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7월 29일 산업입지정책심의회 심의·의결을 거쳐 광주 군공항 부지 일원 약 826만㎡, 250만평을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후보지로 우선 지정했다.


정부는 이곳을 반도체 생산시설만 들어서는 산업단지가 아니라 협력 생태계와 정주기능까지 갖춘 기업형 첨단도시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광주 군공항 부지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대규모 산업용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과 기존 교통망과의 연결성이 자리하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기업형 첨단도시 구상 역시 호남고속철도와 고속도로, 무안국제공항 등 간선교통망과 산업거점의 연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잡혀 있다.


특히 대규모 반도체 팹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공장 부지뿐 아니라 근로자와 연구인력이 오갈 수 있는 교통망, 물류체계, 주거와 생활 인프라까지 함께 갖춰져야 하는 만큼 산업단지와 도시를 동시에 설계하는 방식이 추진되는 셈이다.


국가산단 후보지 지정은 서남권 반도체 프로젝트가 단순한 투자 발표를 넘어 실제 산업입지 조성 단계로 진입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다만 후보지 지정이 곧바로 공장 착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산업단지 개발을 위한 관계기관 협의와 각종 행정절차가 이어져야 하는 만큼, 실제 투자로 연결되는 과정은 앞으로 남은 과제로 볼 수 있다. 국토부 역시 현재 호남권 반도체 국가산업단지를 관계기관 협의를 통해 추진하고 있다고 밝힌 상태다.


공장만으로는 부족하다…AI·연구·인재까지


서남권 반도체 구상에서 또 하나 눈여겨볼 부분은 생산시설과 연구개발, 인력 양성을 하나의 체계로 묶으려는 점이다.


정부는 전남대 캠퍼스혁신파크와 광주 도심융합특구, 광주과학기술원 등을 연계해 산학연 혁신허브를 조성하고 기업의 연구와 창업 생태계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인력 양성도 별도의 핵심 과제로 제시됐다. ARM 스쿨과 남부권 반도체 공대 등을 활용해 첨단산업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을 지역에서 확보할 수 있도록 산학연 협력체계를 강화한다는 구상이다.


교통·주거·교육·여가 등 정주여건을 함께 개선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업이 공장을 세울 수 있는 공간뿐 아니라 근로자와 연구인력이 실제로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대규모 투자가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서남권을 '기업형 첨단도시'로 표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업단지 안에 공장만 배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기업과 연구기관, 인재와 생활권을 함께 묶어 하나의 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800조의 시작점은 '발표'보다 실행


서남권 반도체 프로젝트의 규모는 분명 크다.


SK의 470조원, 삼성전자의 425조원 투자계획에 앰코의 1조원 투자계획까지 더해지면서 반도체 생산과 AI, 첨단 패키징을 연결하는 거대한 산업 구상이 제시됐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지역의 산업지형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발표한 투자계획이 실제 착공과 생산으로 이어지려면 산업단지 조성부터 전력·용수 공급망 구축, 인허가, 교통망 확충, 전문인력 확보까지 여러 조건이 동시에 맞물려야 한다.


정부가 산업단지 조성기간을 5년 이내로 줄이고 기반시설을 신속하게 구축하겠다고 밝힌 것도 결국 기업의 투자계획을 실제 사업으로 연결하기 위한 조치다.


따라서 '왜 서남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단순히 넓은 땅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 어렵다.


대규모 산업용지를 확보할 수 있는 입지에 전력과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KTX와 고속도로·공항 등 교통망을 연결하며, AI와 반도체 연구개발 역량과 전문인력을 함께 확보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결국 서남권 반도체의 첫 번째 승부처는 투자 규모 자체가 아니라 기업이 실제로 공장을 지을 수 있는 환경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만들어내느냐에 달려 있다.


광주 군공항 일원의 250만평 국가산단 후보지 지정은 그 출발점 가운데 하나다. 앞으로 이 산업거점이 나주와 화순, 무안·목포·해남 등 서남권 곳곳의 산업·에너지·물류 기반과 어떻게 연결될지는 다음 기획에서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