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부 장하은 기자
“수차례 정정 요구를 받아 수백 페이지의 자료를 추가로 제출했지만, 아직도 금융감독원의 심사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유상증자를 추진한 한 상장사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금감원이 요구하는 자료를 그때그때 보완했지만 어느 수준까지 소명해야 충분한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고 했다. 담당 직원에 따라 요구사항과 자료의 범위도 달라지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금감원으로부터 수차례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받았다. 요구에 맞춰 보완한 자료만 수백 페이지에 달했다. 그럼에도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기재해야 심사 기준을 충족하는지는 알기 어려웠다고 한다.
다른 코스닥 상장사 대표의 얘기도 비슷했다. 정정 요구 자체보다 기준을 사전에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담당 직원에 따라 요구하는 자료와 설명의 정도에도 차이가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기준에 맞춰 신고서를 작성하기보다 심사를 받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하나씩 확인하는 구조에 가깝다는 얘기다.
금감원의 설명은 투자자 보호에 맞춰져 있다. 투자자가 유상증자 참여 여부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도록 기업에 최대한 많은 근거를 제시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자금 사용 목적과 사업계획의 실현 가능성 등을 충분히 살펴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원칙에는 이견이 생기기 어렵다. 유상증자는 기존 주주의 지분을 희석할 수 있다. 재무상태가 취약하거나 자금 사용 목적이 불분명한 기업이라면 더욱 면밀한 심사가 필요하다. 부실한 증권신고서를 걸러내는 것도 감독당국의 역할이다.
문제는 '충분한 근거'의 기준이다. 어느 정도의 자료를 제출해야 충분한지, 어떤 경우 추가 소명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기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기업들의 지적이다. 금감원이 요구할 때마다 자료를 추가하는 방식이라면 기업은 정정 요구를 받은 뒤에야 필요한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증권신고서 심사는 자금조달 일정과도 직결된다. 정정이 반복되면 당초 계획했던 발행 일정도 늦어진다. 시장 상황과 주가에 따라 발행 조건이 달라지는 유상증자에서는 일정의 예측 가능성 역시 중요하다. 실제 시장에서도 반복적인 정정으로 자금조달 일정이 흔들리는 데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모든 기업을 하나의 잣대로 심사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재무상태와 자금 사용처, 사업계획이 기업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감독당국의 판단과 재량이 필요한 영역은 분명히 존재한다.
재량이 곧 모호한 기준을 의미할 필요는 없다. 복수의 상장사 대표가 수차례 정정을 거친 뒤에도 다음에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면 심사의 예측 가능성은 짚어볼 문제다. 담당자에 따라 요구사항이 다르다는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금감원이 기업에 충분한 근거를 요구하는 만큼 기업에도 판단의 근거를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반복적으로 정정이 요구되는 사항을 유형화하거나 주요 사례를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것도 방법이다.
투자자가 제대로 판단하려면 충분한 정보가 필요하다는 게 금감원의 설명이다. 증권신고서를 작성하는 기업 역시 어떤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지 알아야 제대로 준비할 수 있다. 수백 페이지를 추가로 제출하고도 “기준을 모르겠다"는 말이 반복된다면 심사 기준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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