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유통팀이 '왜이래'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다.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왜?'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물가가 요동치고, 기업 실적이 오르내리며, 유행이 뜨고 지는 이유를 면밀히 분석한다. 단순히 현상을 나열하기보다 그 이면의 구조와 원인을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내는 게 목표다. <편집자주>
▲신유정 에이블씨엔씨 대표가 최근 밀라노 뷰티워크에 참석해 '유럽 뷰티 헤리티지와 K뷰티 혁신의 조화'를 강조했다.
한때 서울 주요 상권에서 쉽게 만날 수 있었던 화장품 브랜드 '미샤'가 다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과거처럼 국내 로드숍을 늘리는 방식은 아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며 '1세대 K뷰티'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체질을 바꾸는 모습이다.
숫자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미샤 운영사 에이블씨엔씨의 올해 2분기 연결 기준 매출은 65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5% 늘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4억원으로 52.5% 뛰었다. 영업이익률은 약 16%다. 외형 성장보다 수익성 개선 폭이 훨씬 컸다. 회사가 철수를 공시한 국내 직영매장 매출을 제외하면 2분기 실질 매출 성장률은 24.5%에 달한다.
상반기로 넓혀도 흐름은 같다. 에이블씨엔씨의 올해 상반기 연결 매출은 126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179억원보다 7.4%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118억원에서 198억원으로 68.7% 뛰었다. 매출총이익은 643억원에서 727억원으로 늘어난 반면 판매비와관리비는 525억원에서 529억원으로 증가 폭이 제한됐다. 매출 증가분이 이익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한층 뚜렷해진 셈이다.
현재의 실적만 놓고 보면 최근 K뷰티 열풍에 올라탄 기업 가운데 하나로 보일 수 있다. 에이블씨엔씨의 지난 25년을 거슬러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 3300원 화장품의 반란···'로드숍 시대' 연 미샤
미샤는 국내 1세대 K뷰티를 상징하는 브랜드다. 에이블씨엔씨는 2000년 '뷰티넷'을 열고 미샤를 온라인에서 선보인 뒤 2002년 이화여대 앞에 첫 로드숍을 열었다. 당시 백화점·방문판매 등을 중심으로 형성됐던 화장품 시장에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과 직접 판매 방식을 앞세워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
특히 '3300원 화장품'으로 대표되는 가격 경쟁력은 미샤의 이름을 빠르게 알렸다. 브랜드숍이라는 사업 모델이 시장에 안착하면서 후발 업체들이 잇따라 뛰어들었고 국내 화장품 유통시장에는 이른바 '로드숍 전성시대'가 열렸다. 에이블씨엔씨는 2005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이듬해 일본과 중국에 법인을 세우며 일찌감치 해외시장에도 발을 들였다. 2008년에는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 어퓨를 온라인에서 선보였다.
미샤의 대표 제품 가운데 하나인 BB크림도 이 시기 브랜드 성장을 이끌었다. 미샤 BB크림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알려지며 K뷰티 초기 확산을 대표하는 상품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회사에 따르면 미샤 BB크림은 2020년 브랜드 20주년 당시 누적 판매량 1억3000만개를 넘어섰다.
전성기가 계속되지는 않았다. 국내 화장품 유통의 중심이 로드숍에서 헬스앤뷰티(H&B) 스토어와 온라인으로 빠르게 이동했다. 브랜드숍 업체 간 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미샤를 비롯한 1세대 로드숍 업체들은 새로운 성장 공식을 찾아야 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결정타를 날렸다. 오프라인 유동인구가 급감하고 외국인 관광객과 면세 수요까지 얼어붙었다. 에이블씨엔씨의 실적도 바닥으로 향했다.
2020년 연결 기준 영업손실은 680억원대에 달했다. 이듬해에도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2021년 연결 매출은 2629억원이었지만 영업손실 224억원, 순손실 434억원을 기록했다. 과거 거리를 장악했던 로드숍의 성공 공식이 더 이상 그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숫자로 확인됐다.
▲에이블씨엔씨 미샤 BB크림 연출 이미지.
◇ 덩치보다 이익···적자 벗어나 4년 연속 흑자
반전은 2022년 시작됐다. 에이블씨엔씨는 2022년 매출 2479억원, 영업이익 100억원을 기록하며 흑자로 돌아섰다. 2023년에는 매출 2736억원, 영업이익 114억원으로 회복세를 이어갔다. 당기순이익 역시 2022년 11억원에서 2023년 61억원으로 증가했다.
2024년에는 외형과 이익이 엇갈렸다. 연결 매출은 2640억원으로 전년보다 3.5%가량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97억원으로 72.7% 증가했다. 순이익도 14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많이 파는 것 못지않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파느냐가 실적을 좌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에도 흑자 기조는 이어졌다. 에이블씨엔씨는 2025년 연결 기준 매출 2420억원, 영업이익 약 180억원을 기록했다. 4년 연속 흑자다. 특히 지난해 4분기 해외 매출 비중은 68%까지 올라갔다. 미국 법인은 분기 최대 매출을 기록했고 미샤 'M 퍼펙트 커버 BB크림'은 아마존 BB크림 부문에서 강세를 보였다. 회사는 당시 북미에서 구축한 성장 모델을 영국·유럽 등으로 확대해 올해 해외 매출 비중을 75%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올해 2분기 이 목표는 예상보다 빨리 현실이 됐다. 해외 매출 비중이 75%에 도달했다. 연간 목표치를 상반기에 조기 달성한 것이다.
에이블씨엔씨의 귀환이 과거 전성기의 복제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예전 미샤가 국내 번화가 곳곳에 직접 매장을 열어 성장했다면 지금의 에이블씨엔씨는 해외 현지 유통업체와 글로벌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활용한다.
회사는 창립 25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국내 로드숍 중심에서 글로벌 유통망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본격 전환했다고 설명한다. 국내 직영점과 면세 등 저효율 채널을 정리하는 동시에 채널·마케팅·연구개발(R&D)·브랜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이는 실적 흐름에서도 확인된다. 과거보다 매출 규모 자체가 압도적으로 커진 것은 아니지만 이익을 남기는 힘은 강해졌다. 2021년 2629억원을 팔고 224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던 회사가 지난해에는 이보다 작은 외형에서도 약 18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올해 2분기 영업이익률은 약 16%까지 높아졌다. '더 크게'가 아니라 '다르게' 돌아온 셈이다.
◇ 美 매출 154% '껑충'···온라인서 시작해 코스트코까지
실적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시장은 미국이다. 에이블씨엔씨에 따르면 올해 2분기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4% 증가했다. 6월 아마존 프라임데이에서 미샤 매출도 전년 행사 대비 43% 늘었다. 유럽 매출은 같은 기간 48% 증가하며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새로 썼고 전분기와 비교해서도 37.2% 성장했다. 중국 매출은 31%, 중동과 기타 아시아 지역도 각각 50%, 39% 증가했다고 회사는 밝혔다.
미국에서 선택한 전략도 과거 국내 로드숍 방식과 다르다. 아마존과 틱톡샵 등 온라인에서 소비자 접점을 만든 뒤 오프라인 대형 유통으로 영역을 넓히는 방식이다.
에이블씨엔씨가 지난달 발간한 프레스킷을 보면 미샤 등 회사 브랜드는 올해 8월 기준 세계 61개국 약 5만개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북미에서는 미국 코스트코 약 150개, 캐나다 코스트코 약 60개 매장에 입점했다. 아마존·틱톡샵·얼타뷰티 등 디지털 채널과 함께 올리브영 미국 패서디나점 등으로 오프라인 접점도 넓히고 있다.
일본에서는 웰시아·마츠모토키요시·츠루하·스기 등 드럭스토어와 버라이어티숍 약 2만개 매장에 들어가 있다. 유럽에서는 더글라스·디엠(DM)·오비에스(OVS)·티고타 등 현지 유통망을 활용한다. 유럽 판매 매장 수는 1년 새 약 두 배로 늘었다.
국내에서도 무조건 오프라인을 줄이는 것만은 아니다. 자사 로드숍 대신 소비자가 모이는 채널로 이동하고 있다. 올해 2분기 네이버·11번가 등 주요 온라인 플랫폼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5.3%, 다이소 매출은 32% 증가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사업보고서 숫자를 뜯어보면 '수출형 미샤'의 색깔은 더욱 선명하다. 올해 상반기 에이블씨엔씨 별도 기준 색조 제품 매출은 약 398억원이다. 이 가운데 수출이 약 346억원으로 87%가량을 차지한다. 기초 제품은 전체 매출 266억원 가운데 수출 135억원, 내수 131억원으로 비슷한 수준이다. 색조 제품군에 미샤 '퍼펙트 커버 BB크림'과 '글로우 레이어링 핏 쿠션'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과거 국내 로드숍에서 이름을 알린 주력 상품군이 이제 해외에서 매출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자료사진. 출처=챗GPT.
◇ 20년 넘은 BB크림 다시 전면에···'오래된 브랜드'가 자산으로
흥미로운 점은 에이블씨엔씨가 해외 진출을 위해 미샤의 과거를 지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25년 동안 쌓은 브랜드 인지도와 대표 제품을 새로운 시장에 맞게 다시 가공하는 쪽을 택했다. 그 중심에 미샤 BB크림이 있다.
2000년대 K뷰티 초기 해외 진출을 이끌었던 BB크림을 최근 글로벌 소비자의 피부톤과 사용 방식에 맞춰 다시 손보고 있다. 에이블씨엔씨는 미샤 BB크림 색상을 10종으로 다양화했다.
신유정 에이블씨엔씨 대표가 최근 강조하는 '개인화'와 '하이브리드 뷰티' 전략도 이 같은 방향의 연장선으로 분석된다.
신 대표는 지난달 영국 포브스 인터뷰를 통해 피부 상태가 인종과 피부 타입, 연령 등에 따라 달라지는 만큼 하나의 글로벌 제품을 모든 소비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단순히 국가 수와 판매처를 늘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지 소비자의 특성을 제품 전략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의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 뷰티' 역시 미샤가 이미 강점을 갖고 있는 영역으로 보고 있다. BB크림은 피부 표현이라는 메이크업 기능과 피부 관리 개념을 결합한 제품이기 때문이다.
신 대표는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 뷰티 위크 2026'에서도 “메이크업은 스킨케어의 연장선"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에이블씨엔씨는 유럽에서 전통적인 뷰티 헤리티지와 K뷰티 특유의 빠른 제품 혁신을 결합하는 전략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실제 올해 2분기 유럽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8% 늘었다.
신 대표의 역할도 주목된다. P&G와 할리스F&B 등 소비재 기업을 거친 신 대표는 2021년 에이블씨엔씨에 합류해 상품·플랫폼·마케팅을 총괄하다 2023년 8월 대표이사에 올랐다. 이후 브랜드 포트폴리오 개편과 해외시장 확대 등을 추진해왔다.
◇ '미샤의 귀환' 완성될까···해외 성장 지속성이 관건
그렇다고 에이블씨엔씨가 완전히 과거의 위상을 되찾았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올해 실적 개선에서 해외사업의 역할이 커진 만큼 미국·유럽의 높은 성장률을 얼마나 지속할지가 중요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미국 매출 154% 증가라는 숫자는 눈에 띄지만 향후 해외 매출의 절대 규모와 수익성이 함께 커지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K뷰티 시장의 경쟁 역시 과거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열하다. 에이피알·아누아·조선미녀·티르티르 등 비교적 젊은 브랜드들이 소셜미디어와 글로벌 전자상거래를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에이블씨엔씨 입장에서는 '1세대 K뷰티'라는 브랜드 자산이 강점인 동시에 소비자 세대교체에 대응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사업 구조 변화 과정에서 매출의 기준도 주의해서 볼 필요가 있다. 회사는 지난해 면세사업을 중단사업으로 분류했고 올해 국내 직영매장 철수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단순히 연도별 전체 매출 숫자만 연결해 성장성을 판단하기보다 계속사업과 채널 변화까지 함께 살펴야 한다. 회사가 올해 2분기 전체 매출 증가율 5%와 별도로 국내 직영매장 매출을 제외한 '실질 매출 성장률' 24.5%를 제시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2021년 200억원대 영업손실에서 출발해 2022년 흑자전환 이후 4년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을 200억원 가까이 끌어올린 흐름은 사업구조 변화가 숫자로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에이블씨엔씨가 선택한 길은 국내 로드숍의 부활과는 거리가 멀다. 2000년대의 미샤가 '어디에나 있는 매장'으로 성장했다면 2026년의 미샤는 '세계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브랜드'를 향하고 있다.
이화여대 앞 작은 로드숍에서 출발해 전국 번화가를 누비고, 시장 변화와 코로나19 속에서 대규모 적자를 경험한 뒤 다시 미국 아마존과 코스트코, 일본 드럭스토어와 유럽 리테일 매대로 향한 미샤. '1세대 K뷰티'의 귀환 여부는 이제 국내에 몇 개의 간판을 다시 다느냐가 아니라 해외 소비자의 화장대에 얼마나 오래 남느냐에 달렸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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