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석 제주대 에너지공학과 교수 |
텍사스 정전의 표면적인 이유는 급증한 전력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해서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 자료에 따르면 작년 2월 텍사스주 전력수요는 40 GW 내외였지만, 올해는 한파로 전력수요가 급증하여 2월 11일부터 열흘 연속 50 GW를 넘었다. 한파가 절정에 달한 2월 15일 한때 전력수요는 76.8 GW로 예상되었지만, 생산된 전력은 47.9 GW에 그치면서 정전이 시작되었다. 2020년 텍사스주는 예상 최대전력수요 75.2 GW와 예비율 12.6%를 고려하여 82.4 GW 규모의 발전시설을 준비하였지만 35 GW 정도 발전설비가 제 기능을 못한 것이다.
텍사스의 풍력발전은 20 GW가 넘는 용량에도 불구하고 정전 당시 5 GW를 밑도는 출력으로 전력수요의 7%도 감당해내지 못했다. 풍력발전량은 풍속의 세제곱에 비례하여 변동하지만, 주요 풍력단지 중 하나가 있는 스윗워터 지역의 풍속과 텍사스 전체 풍력발전량 데이터를 비교해 보면 한파가 문제였음을 알 수 있다. 평균풍속 5.0 m/s를 기록한 8일에는 하루평균 16.4 GW의 풍력발전 전력이 생산되었지만, 정전이 있던 15일에는 5.3 m/s의 평균풍속에도 불구하고 하루평균 3.0 GW밖에 기록하지 못하였다. 천연가스발전은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 11일 이후 전력수요에 맞추어 최대 44 GW 정도까지 서서히 출력이 증가하다가 정전 당시 갑자기 25 GW 수준으로 떨어졌다. 또한 원자력발전소 1기의 급수펌프가 결빙되면서 1 GW 정도의 출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발전원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나 한파에 대한 대비 부족이 정전의 일차적인 이유이다.
텍사스 정전의 또 다른 이유로 독립 전력망과 전력시장 자유화를 들 수 있다. 미국의 전력망은 동부와 서부, 그리고 텍사스 지역의 3개로 구분되며, 텍사스전력신뢰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텍사스 전력망은 다른 지역과 연동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텍사스는 셰일가스를 비롯한 화석연료가 풍부하며, 서부 사막을 중심으로 연중 양질의 바람이 불고 있다. 풍부한 에너지 자원과 최근 10년 사이 3배 이상 성장한 풍력발전에 대한 친화적인 정책으로 다양한 발전방식을 혼합한 텍사스의 독립전력망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전력난에서 드러났듯이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에서 충분한 예비전력이란 닿을 수 없는 이상과도 같다. 또한 과도하게 자유화된 전력시장은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력 공급망의 노후화와 여유 전력이 빠듯한 전력운용을 부추겼다. 가능한 해결책은 외부 전력망과의 연계를 통한 전력공유와 비용이 들더라도 공공재인 전력이 양질로 공급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이다.
최근 발표된 우리나라의 2019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은 5.6%로 텍사스의 25%와는 큰 격차가 있다. 그러나 텍사스가 그러했듯이 우리나라도 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인해 재생에너지의 발전비율이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텍사스 정전이 우리의 머지않은 미래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전력망도 텍사스와 같이 고립된 에너지 섬이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점은 우리나라는 화석연료와 재생에너지 자원이 매우 부족하지만,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에서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를 급격히 확대하면서 전력공급을 안정적이고 값싸게 하기는 매우 어렵다. 인접 국가와 연계된 전력망은 우라나라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며, 재생에너지의 보완책인 에너지저장장치와 수소 관련 기술은 현실적인 요구수준을 충족시키기 요원하다. 텍사스의 정전사태를 참고하여 이상기후에 대비한 발전시설의 점검과 우리나라의 특성에 맞게 전력원을 구성하는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