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폐허였던 작은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는 데 70여 년이 걸렸다. 경제 발전 속도가 워낙 빨랐던 만큼 수많은 기업과 산업들이 흥하고 망하기를 반복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미래차 등 분야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있지만 짙은 그늘이 드리우고 있는 산업군도 있다. 에너지경제신문은 눈 앞에 다가온 ‘전기차 시대’를 맞아 이로 인해 생겨난 음지(陰地)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영세 정비소, 중소 부품사, 개인 주유소 등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한 분야들이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車정비소 ‘줄폐업’이 시작됐다
② 중소 부품사 직격탄…"활로가 없다"
③ 정유사 발빠른 움직임…개인 주유소는 ‘무대책’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영세한 자동차 정비 업체가 ‘줄폐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정비소 체질개선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대기업 위주로만 진행돼 자칫 골목상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11일 업계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 의원실 등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정비 업체는 약 3만6000개로 추산된다. ‘동네 카센터’부터 대기업 서비스센터 인력까지 모두 더하면 종사자는 9만6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부분 영세 업자들이 전기차 정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엔진과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구동장치 외 다른 기능들도 전자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울 인근 한 주거지 밀집지역에 위치한 정비소에 전기차 점검을 문의하자 "공식 서비스센터에 가셔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는 차를 살펴보는 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다"라며 "대부분 영세 정비업체들은 기본적인 차량 점검도 할 수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국내 등록된 자동차는 작년 말 기준 2500만여대다. 이 중 친환경차는 100만여대, 순수전기차는 20만대를 넘겼다. 아직 낮은 점유율이지만 업계에서는 당장 5년 가량이 지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본다. 정부 차원의 전기차 보급 목표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자동차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을 속속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 안에 전기차·수소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를 50만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실제 에너지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기차 보급률 5%를 달성한 제주도의 경우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정비업소 12.6%가 폐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기업 위주로 전기차 전문 정비소 확충 계획을 세우면서 영세 업체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미래차 현장인력 양성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대상 인원이 연간 수백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작년 기준 1100여개인 전기차 정비소를 2025년까지 약 3300개로 확대한다는 청사진도 현대차 블루핸즈, 기아차 오토큐 등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는 아직 장비 가격이 비싸고 무상수리 보증기간 등이 있는 만큼 영세 정비업까지 전기차 정비소를 확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는 절대적인 부품 수 자체가 내연기관차 대비 3분의 1 수준인데 제조 기술 발전으로 내구성도 높아 정비소를 찾는 사례 자체도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략적으로 전기차 보급을 확대한 만큼 일감을 잃게 될 영세 정비업체들의 생존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전기차·배터리 강국이고 정부도 친환경차 판매를 돕고 있지만 정작 대학 등 교육현장이나 차를 고치는 정비소 등은 체질을 개선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일침했다.
yes@ekn.kr
▲전기차 충전 자료사진. |
<글 싣는 순서>
① 車정비소 ‘줄폐업’이 시작됐다
② 중소 부품사 직격탄…"활로가 없다"
③ 정유사 발빠른 움직임…개인 주유소는 ‘무대책’
[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전기차 보급 속도가 빨라지면서 영세한 자동차 정비 업체가 ‘줄폐업’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 차원에서 정비소 체질개선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대기업 위주로만 진행돼 자칫 골목상권이 붕괴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11일 업계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동주 의원실 등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정비 업체는 약 3만6000개로 추산된다. ‘동네 카센터’부터 대기업 서비스센터 인력까지 모두 더하면 종사자는 9만6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대부분 영세 업자들이 전기차 정비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와 달리 엔진과 변속기 등 ‘파워트레인’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구동장치 외 다른 기능들도 전자식으로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울 인근 한 주거지 밀집지역에 위치한 정비소에 전기차 점검을 문의하자 "공식 서비스센터에 가셔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김필수 한국전기자동차협회 회장(대림대학교 미래자동차학과 교수)은 "전기차와 내연기관차는 차를 살펴보는 방식 자체가 아예 다르다"라며 "대부분 영세 정비업체들은 기본적인 차량 점검도 할 수 없는 처지"라고 설명했다.
국내 등록된 자동차는 작년 말 기준 2500만여대다. 이 중 친환경차는 100만여대, 순수전기차는 20만대를 넘겼다. 아직 낮은 점유율이지만 업계에서는 당장 5년 가량이 지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본다. 정부 차원의 전기차 보급 목표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고 자동차 제조사들이 내연기관차 생산 중단을 속속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올해 안에 전기차·수소전기차 누적 등록대수를 50만대까지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실제 에너지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전기차 보급률 5%를 달성한 제주도의 경우 지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정비업소 12.6%가 폐업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대기업 위주로 전기차 전문 정비소 확충 계획을 세우면서 영세 업체들이 갈 곳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미래차 현장인력 양성사업’을 실시하고 있으나 대상 인원이 연간 수백명 수준에 불과하다고 알려졌다. 작년 기준 1100여개인 전기차 정비소를 2025년까지 약 3300개로 확대한다는 청사진도 현대차 블루핸즈, 기아차 오토큐 등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 국토교통부는 아직 장비 가격이 비싸고 무상수리 보증기간 등이 있는 만큼 영세 정비업까지 전기차 정비소를 확충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완성차 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는 절대적인 부품 수 자체가 내연기관차 대비 3분의 1 수준인데 제조 기술 발전으로 내구성도 높아 정비소를 찾는 사례 자체도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가 보조금을 지급하며 전략적으로 전기차 보급을 확대한 만큼 일감을 잃게 될 영세 정비업체들의 생존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우리나라가 전기차·배터리 강국이고 정부도 친환경차 판매를 돕고 있지만 정작 대학 등 교육현장이나 차를 고치는 정비소 등은 체질을 개선할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다"고 일침했다.
ye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