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우리는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 미래를 예측해 보고 예측결과를 토대로 준비를 한다.
하지만 예측은 틀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많은 군사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시작되면 단기간에 러시아의 일방적 승리로 끝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3일이면 끝날 것이라던 전쟁은 200여일이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의 일환으로 러시아산 에너지수입 금지를 단행했다. 이에 대항하여 러시아는 EU로 향하는 천연가스 공급량을 축소하거나 중단했다. 에너지가격은 급등했고 그 여파로 대부분 국가들이 경제난을 겪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전문가들의 오판 사례다.
예측력을 높이기 위해 학자들은 여러 가지 과학적 방법론을 개발하고 적용해 보지만 적중률은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과서에도 ‘예측은 과학과 예술의 사이에 있다’고 하고 있다. 여기에서 과학은 데이터에 기반한 이론적 분석을, 예술은 주술이나 점이 아닌 전문가의 판단을 의미한다.
지난달 말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이 공개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수요예측은 예술(정무적인 판단)에 가깝게 예측된 것으로 보인다. 전력수요예측치가 지나치게 낮기(과소예측) 때문이다.
10차 계획의 2030년 발전량 예측치는 615TWh로 9차 586TWh, 온실가스감축목표(NDC)안 612TWh에 비해 각각 5.0%, NDC 상향안 대비 0.4%가 증가했다. 실무안에는 친절하게도 "4차 산업혁명 영향과 탄소중립 달성 등을 위해 산업, 수송, 건물 등 각 분야의 전기화 수요도 반영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앞으로 전력수요가 증가할 요인을 나열하고 모델의 운용 결과를 반영했다고 하지만 전력수요가 어떤 요인으로, 얼마나 증가할 것이라는 세부내역은 없다. 설명과 같이 추가수요가 반영된 것이지 알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해말 탄중위는 산업, 수송, 건물분야의 전력화로 앞으로 전력소비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았고 2050년 발전량을 1258TWh로, 전력비중은 현재의 20%에서 40%로 높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사실 2050년 탄소중립안에서 전력비중 40%는 높은 것도 아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전력비중을 50%로 제시한 바 있다. 탄소중립 시나리오의 2050년 발전량 1258TWh가 되기 위해서는 2018∼2050년 기간 중 전력수요가 연평균 2.5% 증가해야 한다. 이 경우 보간법으로 계산한 2030년 발전량은 768TWh이다. 물론 탄소중립에 이르는 경로에 대한 가정에 따라 전력수요는 768TWh 보다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 있다.
NDC 상향안에는 2030년까지 친환경차 보급 목표를 450만대로 잡고 있다. 친환경차에 의한 전력수요만 대략 19TWh에 달한다(3.6km/kWh, 1만 5000km/연 운행). 여기에 소요되는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1000MW급 원전 3기가 추가로 필요하다. 산업부문의 공정, 열수요 전환에 의한 전력수요 증가분 등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만일 2030년 발전량이 보간법으로 구해진 768TWh이라면 10차의 2030년 원자력 발전량 202TWh로는 원전 비중이 10차 계획의 33%가 아닌 26%로 곤두박질치게 된다. 또한 재생에너지 발전량 132TWh도 21%에서 17% 수준으로 하락한다. 그 결과는 화석연료 발전량의 증가로 나타날 것이다.
산업부와 전력수요예측 전문가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전력수요를 과소예측해야 하는 말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었던 것 아닐까. 혹시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고 지난해 11월 영국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직접 국제사회와 약속한 NDC안은 잊은 걸까.
이런 의문이 드는 이유는 10차 계획이 장기적인 에너지믹스 정책을 반영하기 보다는 새정부 대선공약 반영에 급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요예측치가 확정되고 불과 10여일 만에 수급계획 전체가 공개된 것에서는 원전 계속운전과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를 조기에 가능하게 하고, 원전산업 활성화 압력에 빨리 응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엿 보인다. 전력수요를 낮게 예측한 다른 이유로서 2030년 원전비중을 30% 초반으로 하여 약속을 이행하겠다는 의도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필자의 주관적 추론이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도 에너지공급망 위기로 인한 에너지안보가 강조되고, 탄소중립 에너지정책이 유지되는 지금의 상황이라면 전력수급계획에 원전 계속운전, 신한울 3·4 호기 건설재개 정도는 반영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산업부는 수요예측결과의 세부 내역을 밝혀 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전력수급계획 보고서에는 미래 에너지믹스 전략이 담긴 에너지원별 비중을 반드시 제시할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