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산업부 장관과 국무총리가 잇달아 전기요금 인상을 시사한 후 한전은 ’합리적인 에너지소비를 위한 전기요금 조정 시행‘을 발표했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용도별 전기요금의 조정 방향은 이상하다.
한전은 이번 전기요금 조정에서 2022년 기준연료비 잔여인상분 4.9원/kWh과 모든 용도별 소비자에게 kWh당 2.5원, 산업용과 일반용 고압A 7.0원(4.5원 추가), 고압BC 11.7원(9.2원 추가)을 차등해서 올렸다. 명목이 무엇이든 10월 전기사용량부터 소비자들은 기준연료비 조정분과 요금 인상분이 합쳐진 고지서를 받게 되었다.
그러니까 기준연료비 인상분과 요금 인상분을 합쳐 주택용은 kWh당 7.4원이, 산업용 고압BC 소비자는 20.9원이 오른 셈이다. 한전은 주택, 농사용 등 소위 민생용 요금은 낮게, 뒷말이 적을 산업용은 높게 올리는 방법을 택했다. 이른바 정치적 배려를 한 것이다. 물론 이 정도의 요금인상으로 한전 적자를 대폭 줄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한전은 요금 인상의 이유를 "국제에너지가격 폭등에 따른 원가 상승분을 반영하여 가격신호를 제공하고 효율적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전기요금 상승으로 전기소비가 얼마나 감소할 지는 의문이다. 이미 전기가 우리생활에 필수재가 된지 오래기 때문이다.
한전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삼척동자도 알고 있듯이 탈원전과 태양광 확대가 이번 전기요금 인상에 한 몫 한 것도 명백하다. 지난 정부의 산업부 장관은 국회에서 "탈원전 정책으로 전기료가 인상되지 않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고 했고 실제 산업부는 5년 내내 고집스럽게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았다.
그동안 한전은 손실액을 부채로 메워 왔다. 지난 5년 사이 한전 부채는 무려 37조원이 증가했고, 본격적인 에너지가격 상승 시작된 2022년에는 반년 사이에만 20조원의 부채가 증가했다. 한전의 금년 6월말 부채총액은 165.8조원이다.
금년 10월 산업부는 ‘탈원전에 따른 전력 구매 비용 손실 추정액’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사실상 탈원전으로 인한 비용 증가를 인정했다. 탈원전으로 2017년부터 올 7월까지 5년여간 전력 구매비용 손실액이 총 10.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한전이 부실기업화 되는데 지난 정부의 역할을 무시할 수는 없는 이유이고 현정부는 전정부로부터 원치 않는 상속을 받은 셈이다.
그럼에도 이번 전기요금 조정 방향은 불편하다. 우리나라는 전기요금 결정에 원가주의와 용도별 전기요금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전기사업법에는 ‘전기요금이 적정 원가에 적정 이윤을 더한 것일 것’으로 규정하고 있고 한전도 ‘전기요금이 공급비용을 보상하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전기요금의 공급원가는 사용전압(저압 혹은 고압)과 부하패턴, 사용시간대 등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따라서 전기요금을 용도별로 정하기보다는 공급전압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용도별 공급비용(또는 원가회수율)이 공개되지 않으니 정확한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주택용 저압과 농사용 저압(220V) 수용가는 공급전압이 같으므로 공급원가가 비슷하다. 이보다 높은 전압으로 공급되는 산업용은 공급비용이 훨씬 낮다. 연료비가 급증하기 전까지 우리 요금 수준에서 산업용은 거의 원가를 회수하고 있었고, 주택용은 그렇지 못했다. 농사용은 말할 필요도 없다(2021년 주택용 119.8원, 산업용 114.6원, 농사용 46.0원).
그런데 이번 전기요금 조정으로 주택용보다 원가가 싼 산업용이 더 비싸질 것이 확실해 졌다. 이렇게 보면 요금의 조정은 거꾸로 된 방향으로 완전히 역주행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전기요금은 싼 편에 속한다. 주택용 전기요금 수준은 가장 싼 편이고, 산업용은 중간 정도이다. 절대수준을 떠나 OECD 국가들의 주택용과 산업용 전기요금 단가 비율은 대략 2:1 정도이다. 즉 주택용 전기요금이 200원/kWh면 산업용은 그의 절반인 100원 수준이다. OECD 국가 중 산업용 전기요금이 주택용 전기요금에 비해 비싼 나라는 멕시코가 유일했었다. 이제 멕시코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것이었지만 용도별 인상은 농사용을 가장 높게, 다음으로 주택용, 산업용 순으로 인상폭을 가져가는 것이 장기적인 요금조정 방향과 맞았다. 원가에 적합한 요금 조정에 얼마나 긴 시간이 소요될지 짐작도 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