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석 서울대학교 원자력정책센터 연구위원 |
2023년 4월16일 0시를 기해 독일은 원전 선진국 중 유일한 원전 제로(0) 국가가 됐다. 자축하는 국민들도 있지만 우려도 작지 않다. 독일의 기민당 등은 52%의 계속운전 지지 여론을 등에 업고 탈 원전 정책이 기후변화 대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원전의 계속운전을 주장했지만 집권 여당인 녹색당과 사민당의 완고한 반대로 일축됐다. 독일의 원전 제로에는 불가피한 측면이 여럿 있다. 다음은 필자가 생각하는 몇 가지 이유다.
첫째, 에너지정책을 정치인들이 좌우하고 있는 점이다. 2011년 후쿠시마 사고 이후 독일은 탈 원전을 법으로 못 박았다. 게다가 탈 원전을 주장하는 사민·녹색당이 현재 집권하고 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독일 에너지정책 정보를 제공하는 CLEW(clean energy wire)는 ‘원자력은 역사적으로 독일 사회에서 강력한 기반을 갖지 못한 새로운 에너지이고 석탄은 200년 동안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영향력이 훨씬 크기 때문에 탈 원전이 탈 석탄에 비해 쉬웠다고 설명한다. 1960년대 초반부터 지리하게 이어져 온 원자력 논쟁을 다시 시작할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는 것도 한 이유다.
둘째, 1980년대 이후 신규원전이 없어 원전 생태계가 완전히 없어진 이유도 있다. 독일에는 보호해야 할 원전산업이 없어졌다. 공급망이 소멸된 국가에서 원전을 다시 추진하려면 생태계 구축 등에 훨씬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EU의 신규원전 건설비용 집행실적은 독일 원전 지지자들을 실망시키기에 충분했다. 원전의 경제성이 없어진 것이다. 프랑스 Flamanville의 새로운 원전(EPR) 건설비용은 190억 유로 이상으로 당초 예정된 34억 유로보다 6배 가까이 늘었다. 영국의 Hinkley Point C의 전력 판매 예정가격은 92.5파운드/MWh(kWh당 155원)으로 우리나라 원전 정산단가의 2.5배가 넘는다.
셋째, 독일 국민의 원전 안전성에 대한 걱정이 생각 이상이라는 점이다. TMI 사고는 의회 밖에서 논의되던 원전 안전성 주제를 의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고, 체르노빌 사고는 독일 사회의 원전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국민들은 원전사고를 공포로 받아들였고, 원전운영사인 전력회사 마저도 스스로 탈 원전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어쩌면 독일의 원전제로는 예정된 수순이라고 봐야 할 듯 하다.
그러면 앞으로 독일의 에너지 수급에는 어떤 상황이 전개될 것인가. 첫째, 독일의 에너지주권이 매우 취약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원전제로 상태에서 탄소중립, 에너지안보 증진을 위한 선택은 재생에너지 밖에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바람이 유럽대륙을 가로질러 이동할 때 바람이 많이 부는 국가가 다음 국가에 전기를 융통해 주고 다음 국가에 바람이 많이 불면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렇게하기 위해서는 다른 국가와의 전력망 연계를 더 강화해야 한다. 이것은 에너지 안보(수급안정)를 기상조건에, 그리고 다른 국가에 의존하는 정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둘째, 전기요금은 수용가능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을까. 잘 아는 바와 같이 독일의 전기요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에너지위기가 발생했던 지난해 우리나라 전기요금의 6배까지 오른 때도 있었다. 독일 전기요금은 도매가격, 재생에너지 보조금, 망 비용, 세금으로 구성되며 각 4분의 1의 비중으로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2000년 OECD 평균 수준이던 전기요금이 최고 수준이 된 이유는 탈 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가 결정적이다. 당시 7% 수준이던 재생에너지 비중이 45% 안팎으로 확대되면서 재생에너지 보조금은 6배 넘게 증가했다. 독일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2030년까지 80%로 늘린다는 계획인데 보조금과 망 비용이 어느 정도 증가할 것인지가 전기요금 수준을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전기요금이 현재의 두 배로 올라도 전기소비자가 수용할 지는 의문이다.
셋째,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은 가능할까? 2022년 독일 재생에너지 발전 용량은 태양광이 60GW, 풍력 64GW 수준이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80%를 달성하려면 2030년까지 매년 29GW씩 늘려야 한다. 지난 21년 동안의 재생에너지 용량이 연간 5GW 정도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는 이 보다 5∼6배의 가속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5년 동안 전력망 연계도 없이 독일의 에너지정책을 그대로 복사, 추진했다. 이제 정권이 바뀌어 우리나라는 탈 원전 폐기, 독일은 탈 원전 고수로 원전제로 국가가 됐다.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는 약 7년 후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