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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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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전기료 문제 근본해법은 소매전력시장 개방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13 09:22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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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소매 전력 가격 결정에 있어 본질인 경쟁시장체제 도입은 뒤로한 채 정부주도의 요금 조정만 계속 반복하는 것은 언 발의 오줌 누기에 다를 바 아니다. 전기요금을 포함한 공공요금은 언제까지 국민 눈치를 봐가면서 이렇게 경직적으로 결정할 것인가. 해당 기업이 아닌 당정대에서 결정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죄를 지은 거 마냥 매번 국민들에게 호소하듯 전기료 인상에 따른 이해를 구하는 것을 더 이상 보기 싫다. 경제학자로 강단에서 평생 경제학을 가르친 이창양 산업부장관이 이런 비 시장적인 모습을 보이며 얼마나 자괴감이 들겠나.

전기요금 논쟁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전기료를 인상할 때는 국민적 저항이 거세고, 반대로 인하 때는 주주들의 반발에 직면한다. 자유경제시장에서는 정부가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값싸고 질좋은 원자재 확보와 경영효율성 제고 등은 궁극적으로 자유경쟁을 통해 해결하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이를 모두 정부가 책임지려하니 일처리만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덮어지며 상처만 곪는다. 처음부터 무리였던 한전공대 설립안도 경쟁체제 하에서라면 감히 꺼내지 못할 포퓰리즘 정책이다.

하지만 이런 화두를 꺼내면 ‘민영화’라는 프레임을 씌우며 갑자기 좌우 양 진영에서 뜨거운 감자로 취급해 버린다. 피해야 할 대상이나 더러운 오물이라고 비유하는 것이 낫겠다. 경제학적으로 ‘민영화’와 ‘경쟁체제’는 서로 필요충분 조건도 안된다. 한국전력은 코스피에 상장돼 민영화된 지 오래지만 근본적인 시장원리에 기반한 경쟁체제와는 여전히 거리가 멀다. 송배전은 국가기간망 관리차원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전기 도소매는 충분히 경쟁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 전기요금 현실화보다 전기 경쟁체제 도입이 더 근본적이고 시급하다. 지금처럼 한전이 소매시장에도 발 담그며 다른 업체에 PPA(직접 전력거래계약)도 ‘윤허’하는 식으로 해봤자, 들러리 구색 맞추기만 될 뿐 한전의 소매독점은 그대로 유지되고 경쟁 구도 도입도 절대 불가능하다. 전력 소매시장에서 한전이 손 떼게 해야 한다. 전기요금을 시급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피상적이다. 누적된 적자로 인한 에너지공기업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라는 주장도 현 시스템을 연명하려는 기득권(민·관·학)의 구실로 밖에 안 보인다. 어차피 대주주인 정부 결정에 따를 수밖에 없는 에너지 공기업들은 어차피 스스로 제 머리를 깎을 수 없기에 요금을 올리라는 전문가들의 열띤 목소리에 대해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전문가들 의견에 못이기는 척 동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아가 전기 소비자인 대다수의 국민들도 이런 정부의 한 발짝 느린 에너지 가격 조정의 수혜자이므로, 서로의 눈치를 봐가면서 점진적 인상에 눈감는 모양새다. 그러니 정책당국으로서는 욕먹을 일 없고 인심(표)도 잃을 일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향후 에너지 생산 원가가 급락할 때는 과연 에너지 공기업들이 전기 소매가격을 내릴까? 소시민인 필자 입장에선 어렵다고 본다. 실제로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인 지난해 8월 천연가스 가격이 연초대비 276%나 치솟았다가 올해는 지난해 고점 기준으로 71%나 급락했다. 이에 따라 올해 8월 초 독일의 전기 소매가는 1년 전 8월 고점 기준으로 97%나 내렸다. 이에 비해 한국은 애초부터 전기 등 에너지 가격을 통제했기 때문에 연초 소매가격이 kwh 당 1분기 11.4원, 2분기엔 8원 등으로 꾸준히 오르고 있다. 여전히 적자인 에너지 공기업들의 곳간을 걱정한 많은 관계자들은 소매가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시장흐름에 기반한 국제 시세와는 완전히 동떨어진 움직임이다.

문제는 언제까지 이렇게 에너지 가격 통제를 계속할 것 인가다. 최종 소매가는 단순히 통제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 부담을 골고루 나눠 지기 위해 발전사를 비롯한 많은 이해관계자들도 거의 통제되다시피 한 정산가격을 받아들이며 희생을 감수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비효율이 발생한다. 해외에서 천연가스 등의 원자재를 구입하는 과정에서는 정치적 개입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도입한 원자재를 유통·가공하는 단계에서 국내 발전사의 마진 폭을 연쇄적으로 줄일 수밖에 없다. 해당 사업자라면 참을 수 없을 정도의 정부 개입이라고 발끈 할 법 한데도, ‘을’의 입장이다 보니 순응한다. 더 나아가 최종에너지 소매가격이 가격국제 시세와 거꾸로 가는데도 국민들에게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소비행태를 기대하는 것은, 길거리에서 장애인 유도 점자블록도 설치하지 않고 시각 장애인에게 무사히 목적지를 찾아가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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