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8일(일)
에너지경제 포토

곽인찬

paulpaoro@ek.kr

곽인찬기자 기사모음




국제유가를 좌우하는 변수들 [곽인찬의 뉴스가 궁금해?]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8.24 12:38
2023082401001297700062612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 건물. 사진=AP/연합뉴스


국제유가가 강세다. 올 상반기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은 배럴당 60~70달러 선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지금은 80달러 안팎이다. 그나마 요 며칠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 다행이다. 중국 불황에 대한 우려가 기름값을 끌어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는 상장사 한국전력의 실적에 영향을 미친다. 전기료 인상 여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이기도 하다. 최근 국제유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뭔지, 앞으로 기름값이 어떻게 될지 등을 살펴보자.

◇ OPEC 감산 작전

지난해 10월 OPEC 플러스(OPEC+)는 하루 200만배럴 감산을 발표했다. 하루 세계 원유 공급량의 2%에 해당하는 규모다. OPEC+는 원유를 수출하는 23개국 연합체다. 주도국은 세계 1위 원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다.

작년 가을이면 세계 경제에 인플레이션 먹구름이 짙게 끼었을 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경쟁하듯 금리를 올렸다. 이 마당에 OPEC+의 원유 감산은 인플레이션에 불을 지른 격이다. 공급이 줄면 자연 값이 뛰기 때문이다.

미국은 발끈했다. 심지어 사우디가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기름값이 올라야 전비를 충당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우디는 끄덕하지 않았다. 감산 결정은 수요·공급을 조절하기 위한 경제적인 이유에서 나온 것이라고 반박했다.

나아가 OPEC+는 올 4월에 하루 166만배럴 추가 감산을 발표했다. 작년 10월 감산과 별도다. 역시 사우디가 주도했다.

이뿐 아니다. 사우디는 OPEC+와 상관없이 7월부터 독자적으로 자발적인 감산(100만배럴)에 들어갔다. 독자 감산은 9월까지 연장된 상태다. 러시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가 사우디에 동조해 자발적인 감산에 착수했다.

◇수요·공급이 최대 변수

국제유가를 결정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든 결국은 수요와 공급으로 귀착된다.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면 기름값이 뛴다. 공급 불안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원유 수출국들이 감산을 발표할 때마다 국제유가는 들썩일 수밖에 없다.

사우디는 왜 오랜 우방 미국과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감산을 주도하는 걸까? AP 통신이 흥미로운 분석을 내놨다. 바로 ‘비전 2030 프로젝트’에 들어갈 자금 마련을 위해서라는 것이다. 비전 2030은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대대적인 개혁 프로그램이다. 장차 석유산업에 대한 의존을 낮추고, 민간 부문을 육성하는 게 핵심이다. 5000억달러를 투입하는 미래도시 ‘네옴(Neom) 시티’ 건설도 프로젝트의 일부다.

러시아는 사우디에 열심히 맞장구를 치는 중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들어갈 전비를 마련하려면 고유가가 절대 유리하기 때문이다. 2021년 기준 러시아는 사우디에 이어 세계 2위 원유 수출국이다.

◇ 차이나 변수 등장

중국은 사우디와 가깝다. 시진핑 국가 주석은 지난해 12월 사우디를 국빈 방문해 환대를 받았다. 중국은 러시아와도 친하다. 시 주석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말이 통하는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면서 묘한 일이 벌어질 참이다. 중국은 원유 수입 시장의 큰손이다. 지난해 중국은 3660억달러(약 485조원)어치의 원유를 수입했다. 압도적인 세계 1위다. 이는 글로벌 원유 수입량의 23%에 해당한다. 사우디-러시아-이라크 순으로 중국에 원유를 많이 수출한다.

요즘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끼었다. 성장률은 예전만 못하고, 수출도 쪼그라들었다. 물가가 마이너스로 진입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도 나온다. 비구이위안 등 대형 부동산 개발업체들은 디폴트(채무불이행) 리스크에 시달리고 있다. 부동산은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25%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산업이다. 전세계가 지금 중국 경제에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질지 잔뜩 긴장해서 지켜보는 중이다.

차이나 변수는 이미 유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8월15일자 기사에서 ‘부진한 중국 경제 데이터에 유가 1% 넘게 하락’이란 제목을 달았다. 향후 원유시장 판도는 OPEC의 감산과 차이나 변수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힘이 센지에 달렸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유가가 더 떨어지면 결과적으로 중국이 사우디의 고유가 전략에 브레이크를 거는 셈이다.

◇한전도 긴장, 정부도 긴장

최근의 국제유가 오름세는 한국전력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발전원가가 비싸지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이라면 원자재가 상승 요인을 판매가에 슬쩍 얹으면 된다. 그러나 공기업 한전은 그럴 수 없다.

전임 문재인 정부는 전기료 인상을 최대한 억눌렀다. 그 부담이 고스란히 윤석열 정부로 넘어왔다. 윤 정부는 올 2분기까지 전기료를 꾸준히 올렸다. 다만 3분기엔 동결했다. 한전 적자를 고려하면 전기료는 더 올리는 게 맞다. 전임 한전 사장들이 말한 대로 아직은 두부(전기료)가 콩(연료가격)보다 싼 형편이다. 한전채 발행으로 당장 적자를 메울 순 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다. 결국은 한전이 다 갚아야 할 돈이다.

정부도 고심이 크다. 내년 4월 총선이 실시된다. 전기료를 또 올릴 경우 여론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다시 동결하면 전임 정부처럼 한전 적자를 방치하는 잘못을 되풀이하는 격이다.

◇향후 유가 전망은

한국은 원유 수입국 순위에서 중국-미국-인도에 이어 세계 4위다. 세계 원유 수입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6.7%로 5위 일본을 약간 웃돈다. 그만큼 국제유가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넓고 깊다.

한국 경제에 최상은 하향 안정세다. 그러나 유가는 우리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8월 석유시장 보고서에서 올해 세계 석유 수요가 사상 최고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여름철 항공여행, 발전용 석유 사용, 중국 정유화학 활동 증가 등을 배경으로 꼽았다. 수요가 늘면 가격이 오른다.

한가닥 기대는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9월 9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을 검토중인 것으로 보도됐다. 양국 관계가 예전으로 돌아가면 사우디의 감산 기조에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산유국 이란의 역할도 주목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이란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서 탈퇴한 뒤 이란산 석유는 거래금지 품목이 됐다. 그러나 음성적인 거래는 이뤄진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과 핵협정 복원을 논의 중이다. 최근에 수감자 맞교환에 합의하기도 했다. 이란이 미국의 묵인 아래 원유 생산을 늘린다면 국제유가 하락세에 도움이 된다. 전통적으로 이란은 중동 패권을 놓고 사우디와 앙숙이다.

1960년 설립된 OPEC은 전형적인 이권 카르텔이다. 그러나 석유라는 비장의 무기를 손에 쥔 탓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미국도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 석유, 석탄, 가스 등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지 못하는 한 OPEC의 힘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경제칼럼니스트>

2023082401001297700062611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