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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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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E칼럼] 에너지 중심 시대,국회엔 에너지 전문가가 없다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06 08:14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박주헌교수

▲박주헌 동덕여자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인류문명 발전의 고비마다 에너지전환이 있었다. 최초의 인류는 불의 이용과 함께 문명의 첫발을 내디뎠다. 나무를 태운 불로 추운 밤을 견딜 수 있었고, 음식을 익혀 먹으면서 소화에 필요한 체내 에너지를 줄여 두뇌로 돌릴 수 있게 되었는데, 이것이 문명 발전의 계기가 됐다는 가설도 있다. 인간의 도구 사용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킨 철기시대는 금속을 녹일 정도의 고온을 낼 수 있는 목탄을 사용하면서 시작됐고, 18세기 산업혁명의 불쏘시개는 석탄이었다. 그 뒤로 2차, 3차 산업혁명은 석유의 발견, 전기의 발명과 함께 가능했다.

인류는 또다시 새로운 에너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에너지전환은 과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첫째, 동기가 다르다. 과거 에너지전환은 석유와 천연가스의 발견이나 전기의 발명과 같은 공급 측면의 혁신이 동기가 됐다. 이에 비해 지금의 에너지전환은 인류 최대 위협요인인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한 무탄소 에너지 중심의 에너지믹스를 구성해야 하는 수요 측면의 제약이 동기다.

둘째, 과정이 다르다. 과거의 전환은 신에너지가 기존의 에너지에 비해 경제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초기부터 시장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었다. 석유는 석탄에 비해 저장, 운반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전기는 깨끗하고 사용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조명, 모터 등 응용범위가 넓다. 석유는 석탄을, 전기는 석유와 석탄을 빠르게 대체하며 자연스럽게 확산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에 비해 이번 에너지전환은 기후변화의 심각성과 시급성으로 재생에너지, 수소, 에너지저장,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과 같이 아직 기술적·경제적으로 미성숙한 신기술을 동원해야 하는 것으로, 시장이 아닌 정부가 인위적으로 확산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셋째, 경로가 다르다. 과거 에너지전환은 기존의 에너지시스템을 유지하면서 화석에너지의 구성을 점진적으로 바꾸는 경로의존적 전환이어서 석탄 중심에서 석유, 가스 중심으로 변경돼도 공통분모는 여전히 화석에너지였다. 하지만 이번 에너지전환은 기존 화석에너지 시스템을 단기간에 재생에너지, 원전과 같은 무탄소 에너지 중심으로 바꾸는 경로파괴적 전환이다.

정리하면, 이번 에너지전환은 정부 주도로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믹스를 단시간에 만들어내야 하는 특성을 갖는다. 커다란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기후변화 방지 목표는 정치적 과정을 통해 정당화돼야 하고, 정부 주도 에너지전환은 법률과 제도로 구체화된다. 정치와 입법의 중심인 국회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이유다.

에너지전환 관련 입법 활동에는 폭 넓은 전문성이 요구된다. 에너지는 경제의 혈액에 비유될 정도로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광범위하다. 게다가 에너지의 93%를 수입에 의존하고, 무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에너지를 둘러싼 국제정치, 무역질서도 중요 고려 사항이다. 하지만 아무리 국제정세를 감안하고 경제효율이 높은 정책이라도 환경과 기술적 제약을 넘지 못하면 공염불이다. 따라서 경제와 국제정치 뿐만 아니라 환경을 비롯한 에너지기술에 대한 전문성도 함께 요구된다.

그런데 국회의원 가운데 환경운동가는 있어도 에너지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현실과 기술 수준과 동떨어진, 지나치게 이상적인 에너지전환 정책이 여과 없이 수립된 배경이다.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은 인류 공동의 과제로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의욕만 앞세워 무작정 밀어붙이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 데이터와 과학에 근거한 주도면밀한 입법과 제도 설계를 통해 체계적으로 성취해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입법의 최전선에 있는 국회부터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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