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9월 08일(일)
에너지경제 포토

정훈식

poongnue@ekn.kr

정훈식기자 기사모음




[EE칼럼] 에너지공기업 정상화,정부 순환출자 해소부터

에너지경제신문   | 입력 2023.09.10 07:08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2023091001000403600019121

▲유종민 홍익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일반적으로 순환출자라고 하면 재벌기업들이 경영권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쓴다. A기업이 B기업, B기업이 C기업, C기업이 A기업의 지분율을 확보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적은 자금을 이용해 편법적으로 계열사 간에 꼬리물기 식으로 지분을 확보해 결과적으로 개별 기업 단위로는 실제 투자규모를 뛰어넘는 지분율을 변칙적으로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대다수 재벌기업들은 이런 식으로 계열사들을 통제해왔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정부와 에너지공기업간에 순환출자라는 해괴한 일이 존재한다. 정부가 대기업들처럼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도 아니고. 정부는 누구의 소유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순환출자 방식을 활용할 수 없는 구조인데도 말이다. 최근 결산 기준으로, 대한민국 정부(기획재정부)는 산업은행의 지분 91.2%를 보유하며 독보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다. 이 산업은행은 한국전력 주식 32.9%을 보유하고,여기에 기획재정부가 18.2%를 추가보유해 과반수(51%) 지분을 갖고 한국전력을 좌지우지한다. 더 나아가 한국전력은 한국가스공사 지분을 20.47% 나 보유하며 계열사와 같은 지배구조를 형성하고있다. 한국가스공사도 여기에다 기획재정부(26.15%), 국민연금공단(7.56%) 지분을 포함해 정부 지분이 54.18%로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다.

피라미드식 지주회사 소유구조가 기획재정부-산업은행-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순으로 사실상의 순환출자 구조로 형성돼 있는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전기와 가스요금으로 정권을 교체할 만한 강력한 표심을 얻을 수 있다는 데 주목해봐야 한다. 전기와 가스요금 통제 혹은 하락은 정부의 정권 유지와 재창출을 이끄는 데 기여하고, 전기와 가스 요금 인상은 정권 교체 위기를 일으킬 만한 위력을 가졌다.

정권의 지지율을 뒷받침하는 게 한전과 가스공사의 요금 통제와 적자 재무구조라고 생각해보면 된다. 즉 정부가 한전과 가스공사의 지분을 일부 소유하고 한전과 가스공사는 정부의 정치적 지분을 일부 소유하는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낸다. 원가에 못 미치는 전기와 가스요금으로 포퓰리즘 정책을 펴 정권을 창출, 즉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정부를 장악할 수 있다면 순환출자나 다름없다.

정부는 순환출자를 규제할 공정거래위원장 임면권도 갖고 있으니 매우 강력한 순환출자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리를 지나친 비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튀르키에 대선에서 당선된 에르도안 대통령이 가스 가격 전면 무료를 선언한 사례나, 볼리비아의 우고 차베스가 휘발유와 생필품, 무상교육, 무상의료, 저가주택 공급을 제공한 사례는 모두 지지율 향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정치인들이 감히 전기와 가스요금 인상을 입에 올릴 수 없는 이유다. 굳이 여당의 역할을 하는 기간 내에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필요가 없다. 더구나 그런 총대를 멜 필요성이 이전 정권에서 왔다고 하면 더 억울할 것이다. 이전 정부 귀책사유로 비난받는 한전공대 출자 혹은 경직된 전기료로 대규모 적자 논란을 겪는 한국전력을 두고, 현 정부가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이유다.

한국전력의 막대한 누적적자로 인해 주주들의 인내심은 한계에 달한 지 오래다. 최근에는 아예 나머지 49%에 해당하는 지분을 정부가 인수해 완전 국영화시켜 달라며 상장폐지 운동까지 벌어진다. 어차피 지분구조 상 정부가 경영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므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일하는 리더십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한국가스공사는 외국에서 액화천연가스(LNG)를 구매해 국내 도시가스 사업자와 발전회사에 공급한다. 그런데 국제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공공요금 인상 제약 등으로 한전과 마찬가지로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순환출자는 소유 구조와 경영권에 차이가 생기므로 시장경제의 대원칙인 투명경영과 자기책임성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투자자금이 적어도 되는 만큼 당연히 오너 입장에서 가장 선호하는 지분 맞물림 구조이겠으나, 민간부문에선 이미 IMF 이후 총수 일가가 일부 지분만으로 대기업 전체 집단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는 ‘지분 1% 마법’으로 비판받으며 금지된 지 오래다. 정부와 에너지공기업이 이 같은 경영 원칙을 어기면서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에너지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봐야 한다.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