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생률 등을 높여 인구를 늘리기 위한 총력 노력을 하되 돌이킬 수 없는 인구 감소 시대에 대비해 경제구조를 바꾸고 결혼-출산-교육-취업-은퇴-노후 등 생애주기 생활패턴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다."
경제·인구·정책 등 전문가들은 23일 이같은 취지로 인구 감소시대를 살아가기 위한 패러다임 전환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2023년 합계출산율 0.72명이라는 급속도로 빠르게 추락하는 숫자 앞에서 대한민국의 인구 위기는 우리 사회에 가장 큰 현안으로 꼽히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이미 시작된 축소사회에 야기될 경제·사회적 문제에 대해 우려했다.
□ 합계출산율과 출생아 수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전략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심지어 국방까지 기본적인 전제는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대표적으로는 연금이 그런 케이스인데, 이런 전제로는 인구 감소 사회에 절대로 적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전영수 한양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지방에서 태어나는 젊은 친구들이 양적으로 줄면서 지방 소멸이라는 문제에 직결될 것"이라면서 “정년 연장도 신중해야 한다. 고령자만을 챙기는 게 아닌 후속 세대들도 얼마든지 수혜를 받을 수 있어야 불필요한 갈등이 없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 연금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빠른 개혁이 있어야 후속 세대들과의 갈등을 피하고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저출생·고령화 사회의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대책 마련에 몰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새롭게 변화하는 축소사회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고 대비해야 할지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서 교수는 “저출산과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기 때문에 출산율 회복 노력보다는 앞으로의 축소 사회에 빨리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며 “가급적이면 저출산 고령화 속도를 완화시키면서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도 “인구 오너스시대(생산가능인구의 비중이 감소해 경제성장이 지체되는 현상)를 살아가는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저출산 문제가 아니라,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작동 방식에 대한 제안"이라고 설명했다.
□ '축소시대' 대비 방안
다만 인구 감소가 경제학적 측면에서 무조건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 구조 탓에 힘들어진 노동과 자본의 전통적인 투입 요소 없이도 부가가치를 높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경제활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노동력 부족은 크게 우려되지 않는다"며 “생산가능인구의 축소는 1인당 생산성 향상, 여성 인력이나 전기 고령자(65~75세)들의 경제사회활동 참여 증진과 기술의 활용으로 일정 부분 만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소비할 수 있는 인구가 줄어들고 경제가 정체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우리 산업이 이동을 해야 한다. 제약산업, 기계공업 산업 등을 우리가 발전시킨다면 사람은 줄어도 경제 규모는 더 커져 윤택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 교수도 “유아, 청소년 등 출생 감소와 직결된 인구와 소비 감소는 관련고객 총량이 줄어도 1인당 소비 지출이 늘어나면 총액 변화는 없는 데다 달라진 욕구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출 의존에서 내수 강화로의 무게 이동을 통한 혁신적인 성장을 전제로 해야 한다"며 “고령화로 인해 의료와 간병, 복지 부분이 커지면 시장이 확장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저출생과 고령화를 먼저 겪으며 성장 전략을 수정한 선진국처럼 서비스업의 부가 가치를 60~70%까지는 올리자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전문가들은 축소사회에서 미래 세대와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기성 세대들의 많은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세대 간, 사회 간의 소통과 협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 교수는 “기성 세대가 장악한 양질의 일자리들을 내수의 진작이라던가 새로운 혁신 산업을 통해 후속 세대들도 골라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해 경제 정책을 완화해야 한다"며 “주거정책을 통해서도 (서울 수도권에 거주할 수 있도록) 활로를 열어줄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21세기형 소위 커뮤니티 공동체가 발달해 노인과 아이들 돌봄의 기능을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미정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노년기에 관계의 빈곤을 경험하지 않으려면 가족이나 친구, 지인 등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피가 섞인 가족은 아니더라도 가족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느슨한 관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