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됐다. 가계대출 등 금융안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남아 있지만 금리 인하 여력이 마련된 데다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한국은행은 통화긴축 기조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기준금리가 중립금리보다 위에 있는 만큼 당분간 금리를 추가 인하할 여력이 있다고도 언급했다.
“불필요하게 오랜 긴축 필요 없어"…3년2개월만 종료
한국은행은 11일 서울 중구 한은에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3.5%에서 연 3.25%로 0.25%포인트(p) 내렸다. 2021년 8월부터 시작된 긴축 기조가 3년 2개월 만에 마무리된 셈이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낮춘 것은 2020년 5월 이후 4년 5개월 만이다. 이날 금리인하 결정과 관련해 장용성 금통위원만 기준금리를 기존 연 3.5%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이 총재는 금통위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금리 인하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률이 떨어졌는데 불필요하게 기준금리를 너무 오래 긴축적인 수준으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고 말했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6% 상승했다. 2021년 3월(1.9%) 이후 3년 6개월 만의 1%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며 실질금리 측면의 통화긴축 정도가 강화됐다"며 “성장 전망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금리를 인하해 긴축 정도를 완화할 필요가 커졌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10월 경제상황 평가 자료에서 한은은 “국내 경제는 수출과 내수 격차가 줄어들고 체감 경기도 점차 나아질 전망"이라면서도 “대외 리스크 증대 등으로 성장 경로의 불확실성은 당초 예상보다 높아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8월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올해 2.4%, 내년 2.1%인데, 이보다 불확실성이 더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가계대출 또한 유의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9월 가계대출 증가 폭이 줄어들긴 했지만 금융안정이 확인된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단 이 총재는 “정부가 거시건전성 정책을 강화한 이후 의미 있는 진전이 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신규 주택담보대출은 2∼3개월 전 주택 거래량에 따라 결정돼 후행하는 면이 있다"며 “아파트 거래량을 보면 9월이 7월의 2분의 1 수준,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률이 8월의 3분의 1 수준이다. 신규 주담대는 다음 달까지 7∼8월 거래량 영향으로 올라갔다가 10~11월엔 내려갈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금리 인하가 주택 거래량, 가격 상승 기대 심리에 어떤 영향을 줄지 지켜봐야 한다"며 “정부가 가계부채 안정에 의지를 갖고 있고, 필요시 관련 정책을 더 강화하겠다고 했다. 저희도 금리 인하 속도를 조정해 금융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계대출 증가세를 금리만으로 잡을 수 없다는 의견도 밝혔다. 이 총재는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는 금리 인하 기대뿐 아니라 수도권 부동산 공급, 건설 경기, 교육 문제 등 복합적으로 관계됐다"며 “금리 인하가 주택 가격 상승이나 가계부채를 증가시킬 가능성이 있지만, 정책 공조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금리 인하가 민간 소비 부진을 회복시키기에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이에 이 총재는 “소비만 보면 기존 예상대로 상반기 1%에서 하반기 1.8% 정도로, 낮지만 회복 추세"라며 “설비투자는 반도체 관련 장비 투자가 늘어 예상보다 오를 가능성이 있고, 건설투자는 여러 문제로 좀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어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보다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달 말 3분기 경제성장률이 나오고 11월에 여러 불확실성을 점검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금통위 5명 “3개월 후 3.25% 유지 바람직"
3개월 후 금리 전망에 대해서는 이창용 총재를 제외한 6명의 금통위원 중 5명이 연 3.25%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달 금리 인하가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야 하고, 미국 대선 결과와 지정학적 리스크 전개 상황을 살피며 향후 통화정책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야 한다는 1명의 금통위원은 거시건전성 정책이 작동하기 시작한 데다 정부가 필요시 추가 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만큼 내수 하방 압력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금리 인하 속도가 빠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 총재는 추가 금리 인하를 시사했다. 그는 “지금 수준에서는 어떤 계량 모델로도 기준금리가 중립금리 수준보다 위에 있어 당분간 금리 인하 여력이 있다"며 “인하 속도는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관련해서는 “외환시장 구조를 개선해 외국인 투자자 접근성을 높이고 원화 시장을 더 개방한 덕분"이라며 “구조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WGBI 편입으로 통화정책에서 변동환율제를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등 장점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