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이 과거 '파이낸셜스토리'를 통해 추진했던 공격적 투자와 사업 확장에서 벗어나 대대적인 자산 매각과 구조조정에 나섰다. 배터리 사업 부진과 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재무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 알짜 계열사까지 매각하며 몸집 줄이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1년 최태원 회장이 선언했던 파이낸셜스토리의 핵심이었던 대규모 투자 계획은 글로벌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이라는 악재를 만나 사업상 '유턴'이 불가피해졌다.
알짜 사업도 판다…SK넥실리스 매각 진행
30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SK넥실리스의 박막 제조 사업부를 사모펀드 어펄마캐피탈에 매각하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매각가는 1000억원대로 예상되며, 이르면 다음 달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이 이뤄질 전망이다.
SK넥실리스 박막사업부의 연 매출은 500억~600억원,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100억원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박막으로 불리는 연성동박적층필름(FCCL)은 스마트폰과 TV 등 디스플레이에 들어가는 핵심 전자 소재다. 어펄마캐피탈은 자동차와 냉장고 등에 초고화질 디스플레이가 확대 적용됨에 따라 박막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해 이번 인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짜 계열사도 속속 매각…그룹 몸집 줄이기 본격화
최근 SK그룹은 이번 SK넥실러스 외에도 동시다발적인 구조개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특히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부임한 뒤 자산을 매각하는데 집중하는 모양새다. SK㈜의 매각예정자산은 지난해 1조3000억원에서 지난 반기 기준 4조6000억원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이런 전략 변화는 매우 극적이라는 평가다.
지난 2021년 SK는 “2025년까지 주가 200만원, 시가총액 140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내용의 '파이낸셜스토리'를 발표한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낸셜스토리는 결과적으로 완수하지 못했다. 자회사의 상장 작업이 더뎌지고, 특히 차기 먹거리로 지목됐던 SK온의 부진이 그룹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 결과 최근 SK는 돈이 될 만한 자회사를 매각하는 작업을 잇따라 진행 중이다.
SK네트웍스는 지난 8월 영업이익의 51%를 차지하던 SK렌터카를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8200억원에 매각했다. 그룹 차원에서는 베트남 마산그룹에 자회사 원커머스 지분 7.1%도 2700억원에 처분했다.
또 SK㈜는 삼불화질소(NF3)와 육불화텅스텐(WF6) 제조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인 SK스페셜티의 매각을 위해 한앤컴퍼니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기도 했다. SK스페셜티는 지난해 매출 6817억원, 영업이익 1471억원을 기록한 알짜 회사다.
SK이노베이션은 보유 중인 SKIET 지분 61.2%의 일부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재 SKIET의 시가총액은 약 2조3000억원 수준으로, SK이노베이션 보유 지분의 시장가치는 약 1조4000억원이다.
SK엔펄스도 매각 대상에 포함됐다. SK엔펄스는 이미 파인세라믹스사업부를 한앤컴퍼니에 약 4000억원에 매각했으며, 현재 CMP사업부와 블랭크마스크사업부의 매각을 위해 복수의 사모펀드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일련의 작업 중에 연초 716개였던 SK그룹의 종속회사는 현재 667개로 감소했으며, 임원 수도 대폭 축소하는 등 전방위적인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임원 퇴진도 도입하는 등 인적 구조조정도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SK그룹의 리밸런싱이 내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0분기 연속 적자 SK온…그룹 차원 지원 불가피
SK그룹의 이러한 구조조정은 SK온 지원이 핵심 목적이다. SK온은 올해 1분기 331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10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SK온의 올해 시설투자 자금조달 규모는 7조5000억원에 달하며, 이를 위해 프리IPO와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SK온의 누적 영업손실은 2조원을 넘어섰으며, 당분간 대규모 투자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어 그룹 차원의 지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SK그룹의 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로는 재무구조 개선이 목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미래 성장산업 중심으로 재편하는 의미도 있다"며 “다만 핵심 계열사의 매각이 잇따르면서 그룹의 성장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