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등 주요국, 원전 녹색에너지 인정 위해 2050년까지 방폐물 처분장 운영 목표
“한국, 자타공인 원전 강국…하지만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많이 늦은 상황"
고준위특별법 20·21대 국회 못넘어…22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기약 없어
“탈원전과 무관하게 국가가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 미래세대 부담 전가 안돼"
“한국이 세계 시장에서 원전 수출 성과를 내고 있는 가운데 원자력발전 강국의 지위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국내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한 방안을 조속히 확정해야 합니다. 여야는 22대 국회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합니다."
노동석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원전소통지원센터장은 지난 1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국민과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광주상공회의소에서 개최환 '제5차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지역 순회설명회'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26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4기를 신규로 건설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4기의 원전을 수출해 성공적으로 가동 중이고, 체코 원전 프로젝트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선정되는 등 말 그대로 세계 원전 강국"이라며 “또 3기의 신규원전과 혁신형 소형원전 1기(4개 모듈) 건설 계획이 반영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공청회도 지난달 무사히 마무리 됐다. 국회 보고와 전력정책심의위원회의 의결과정이 남아 있지만 신규 원전의 추진도 곧 본격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원자력발전에서 발생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관리에 대한 대비는 아직 시작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대한 방안이 확정돼야 비로소 원자력발전의 생애주기가 완성된다고 볼 수 있다"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위한 특별법이 이번 국회에서 재발의됐다. 방폐물법이 여러 차례 발의되는 이유는 이 법안이 꼭 필요한 법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는 아직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고준위 특별법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관리를 위한 법률로, 방폐장 건설 및 운영을 세부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준위 방폐장이 없어 현재 원전 내 수조에 임시저장하거나 수조용량이 초과된 경우 기타 저장시설에 보관하고 있다. 2030년부터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고준위 방폐물 포화시점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대, 21대 국회에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건설 시점 등을 고려하면 이번 22대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원전업계는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다른 나라들은 방폐물 처분장 건설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핀란드가 심층처분시설 '온칼로'를 건설해 내년 운영을 앞두고 있고, 스웨덴은 포스마크 원전 인근에 영구처분시설을 건설하는 계획을 2022년 승인했다. 프랑스와 스위스도 처분장 입지를 결정했다.
우리나라가 원전 수출을 추진 중인 체코도 2020년 선정된 4개 후보지 중 하나를 내년에 최종 후보지로 결정할 예정이다.
캐나다 이그네이스시는 올해 7월 지역주민 찬성율 77%로 방폐물 처분장 유치 의사를 전달했으며 일본도 홋카이도의 두 곳 등 지자체 세 곳의 수락을 받아 1단계 조사에 착수했다.
노 센터장은 “유럽연합(EU) 등 여러 국가들이 발빠르게 움직이는 이유가 있다. 신규 원전이 녹색에너지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2050년까지 방폐물 처분장이 운영돼야 하기 때문"이라며 “자타가 인정하는 원전 강국인 한국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있어서는 많이 늦은 상황이다. 더 이상 미루기 어렵다"고 국회에 조속한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방폐물 관리, '원전 확대', '탈원전'과 무관하게 국가가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
이재학 원자력환경공단 고준위사업본부장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현황 및 특별법 주요내용' 주제발표를 통해 “고준위 특별법은 '원전 확대', '탈원전' 등 정책 영역과는 무관하게 국가가 해결해야 할 필수 과제"라며 “특히 사용후핵연료 1만8900톤이 쌓인 상황에서 고준위 방폐장 확보는 원자력의 혜택을 누린 현세대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약 10년의 공론화를 통해 법제화를 통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확보가 권고됐다"며 “앞선 부지실패 사례를 감안할 때 △부지선정절차 △유치지역 지원방안을 담은 특별법은 고준위 처분시설확보의 선결조건"이라며 법안 통과 없이는 폐기물 관리를 시작조차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고준위 방폐물특별법은 22대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석기, 이인선, 김성원, 정동만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김성환 의원이 발의한 상태다. 세부 내용은 다르지만 △중간저장시설은 2050년 이전 △처분시설은 2060년 이전 운영개시 노력에는 합의한 상태다.
여야가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현재 원전 부지내 방폐물 저장시설 규모다. 야당에서는 '원자로 설계수명 기간 동안 발생예측량'으로 한정하는 반면 여당은 수명연장 등을 고려해 이를 늘릴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이다.
이 본부장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부담에 따른 원전 지역 갈등과 세대 간 갈등을 막기 위해서도 조속한 법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원전 부지 내 저장시설 영구화 우려와 조속한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요구하는 원전 지역과의 갈등이 초래되고 있다"며 “고준위 방폐물 관리는 원자력의 혜택을 누린 현 세대가 해결할 책무로 미래세대에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정재학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장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원칙 및 해외사례' 발표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요 안전원칙은 △현재와 미래 세대를 방사선 위험으로부터 동등한 수준으로 보호해야 하며 미래세대에 부당한 부담 전가 금지 △방폐물 발생 세대가 장기관리 해결방안을 찾아 적용할 책임 △방폐물 발생 최소화"라며 “UN도 지속가능한 방폐물관리를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발젂을 위한 전 세계적 이행과제의 하나로 규정하고 있으며 주요국들은 고준위 방폐물 최종처분을 위한 구체적 계획수립 또는 장기 안전성에 대한 신뢰를 규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학회장은 “사용후핵연료는 직접 처분 또는 재활용이 모두 가능하나, 재활용을 해도 부수적으로 발생하는 고준위 방폐물의 심층처분이 필요하다"며 “심층처분은 국제사회에서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고준위 방폐물 최종관리 방안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도 공론화를 통해 정부정책(기본계획)으로 결정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도국은 원전 도입 직후부터 고준위 방폐물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30~40년 간 노력으로 하나 둘 가시적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법률제정 등 입법부(국회)의 적극적인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며 “우리나라는 선도국들의 경험을 통해 소요기간 단축이 가능하다. 지속가능한 방폐물 관리는 인류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전세계적 이행 과제이자 원전 운영국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김경수 사용후핵연료 관리핵심기술 개발사업단장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기술 개발 현황과 계획'을 통해 “영구 심층처분시설의 안전성을 바탕으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을 적기에 이행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영구 심층처분시설은 땅 속에 있는 우라늄 광석을 인간이 잘 사용하고 다시 원래 있던 조건과 비슷한 장소를 찾아 땅속 깊이 묻는 방법이다. 고준위 방폐물을 지하 깊은 암반에 처분해 인간생활권으로부터 격리, 지하암반 고유의 천연적인 방벽으로 방사성 물질을 가두는 개념이다.
김 단장에 따르면 사업단은 △부지 기본조사 및 심층조사 △운반·저장용기 국산화, 부지 확보 후 중간저장시설 설계·건설인허가 추진 △2030년대 지하연구시설(URL)에서 한국형 처분시스템 성능과 안전성 실증 △URL 검증 후 영구처분시설 설계·건설인허가를 추진할 방침이다.
한편 이번 제5차 설명회는 한국방사성폐기물학회와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이 공동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후원, 재단이 주관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주부, 학생 등 200여명의 광주 시민들이 참석, 질의응답을 통해 시민들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관한 의문점들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1차 대전(9월 26일)을 시작으로 부산(10월 11일), 대구(10월 17일), 서울(10월 24일) 에 이어 광주(11월 1일)를 마지막으로 한 달간의 설명회 일정은 종료됐다.
노동석 센터장은 “이번 설명회가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에 대해 국민 모두와 함께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첫 걸음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 에너지와 관련해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항들을 해결하는, 찾아가는 형식의 설명회 자리를 자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